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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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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조선에서 디자이너 브랜드로 살아남기 by 이강일

 

이제부터 '패션 산업'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중략)

패션은, 다른 문화 산업과는 조금 다른 특수성을 갖는다. (중략) 패션은 가격이 천차만별이다. 사용되는 소재의 가격이 다르고 만드는 공법의 정교함 등에서 차이가 발생하기 때문인데, 이를 바탕으로 다른 문화 시장과는 다르게 세분화된 차별적인 시장이 존재하게 된다. 우리가 흔히 사 입게 되는 저가의 SPA 브랜드가 있는 반면 고급스러운 소재와 화려한 마케팅으로 선망의 대상이 되는 럭셔리 브랜드, 이른바 '명품' 브랜드가 있다. 물론 그 사이의 가격대와 퀄리티를 갖는 브랜드도 있다. 하지만 이런 브랜드만이 다는 아니다. 패션에 크게 관심 없는 사람들은 잘 모르는 매우 생소한 이름들이 존재한다. 이들 중 어떤 이는 매우 실험적이고 파격적이어서 이게 과연 입으라고 만든 옷인가를 의심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또 어떤 이는 어이없을 정도로 심심한 디자인을 선보이기도 한다. 하나의 범주로 묶기에도 애매할 정도로 다양한 개성이 공존하지만 공통적인 건 현존하는 트렌드와는 다른 이야기를 한다는 점. 때문에 현 트렌드에 신선함과 충격파를 던져주며 다가올 시대의 비전을 제시한다. 이들이 바로 패션 산업의 심장이라고 하는 '디자이너 브랜드'이다. 그리고 '패션'이 다른 문화 장르보다 훨씬 더 빠르게 트렌드를 선도하는 위치에 서있을 수 있는 이유는, 이리 치고 저리 박는 '똘끼'로 무장한 이 '디자이너 브랜드'가 온갖 시도를 먼저 해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도 '디자이너 브랜드'라고 불리는 브랜드가 얼마든지 있고 전성시대라 불릴 만큼 흥하고 있으니까. 그런데 한국의 '디자이너 브랜드'는 어딘가 조금 이상하다. 일단 가격이 저렴하다. '합리적'인 유통 구조를 가져서 그렇다고 하니 그건 칭찬받아 마땅하다. 그런데 트렌드에는 무심한 듯한 그런 쿨한 모습은 아닌 것 같다. 오히려 어떤 스타일이 '떴다'라고 판단되면 얼마 지나지 않아 거의 비슷한 디자인이 쏟아져 나온다. 룩북 사진도 화려하고 이름도 멋들어지긴 한데 어쩐지 예전 동대문 패션 타운에 있었던 브랜드들과 별반 다를 게 없어 보인다. '디자이너 브랜드'라는 명칭은 같은데 하는 역할은 다른 것 같다.

자 이제부터 한국에 존재하는 '디자이너'들의 못난 창의성과 지나친 상업주의에 대해서 비판을 할 때가 된 것 같다. 나아가서는 하이 패션에 무지한 한국의 낮은 문화 수준까지도 비판해야만 할 것 같다. 바로 이런 생각이 드는 사람들을 위해 서론에서 나는 '선종외시'라는 고사와 웹툰의 예를 들어가며 내 생각을 먼저 말한 것이다. 즉, 원인은 역량 낮은 디자이너도, 사람들의 무관심도 아니다. 판이 잘못 깔린 것뿐이다.

 

쉬운 이해를 위해 이제부터 당신이 런던 출신의 재능 있는 디자이너라고 생각해보자. 젊은 패기로 '디자이너 브랜드'를 만들고 싶은 당신은 일단 판매할 시즌을 위한 디자인을 하고 '샘플'을 만들어야 한다. '샘플'이란 직접 고객에게 파는 상품이 아닌, 바이어들과 프레스들에게 보여주는 용도의 제품이다. 한 시즌 샘플 비용은 적게 잡으면 천만원에서 많으면 3천만원이 들어간다. 꽤 큰 돈임에는 분명하지만 미래의 성공을 위한 투자로 이정도 리스크 쯤은 감수 가능한 범위이다. 이 샘플을 이용해 룩북만을 찍을 것인지, 패션쇼에 참가해 좀 더 화려한 인상을 남길 것인지는 당신의 선택이다. 일단 중요한 것은 바이어에게 브랜드의 존재를 알리고 샘플들을 구입하게끔 유도하는 것이다. '바이어'란 백화점, 편집샵 등에서 제품의 '사입'을 진행하는 사람들이다. '사입'이란 디자이너가 본 제품을 생산하기 전 미리 주문을 하는 것이다. 한 명의 바이어가 구입하는 양은 얼마 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몇 십 명의 바이어가 모이면 주문하는 양도 제법 많아진다. 성공적인 '사입'이 이루어졌다면 당신은 다음 시즌을 준비할 자금을 얻을 수 있고, 이름 있는 백화점이나 편집샵에 들어가는 것만으로도 좋은 홍보 효과를 누릴 수 있다. 만약 혹평을 받아 바이어가 한 벌도 '사입'하지 않는 최악의 사태가 일어난다 해도 당신이 감수하는 리스크는 샘플을 만드는 데 들인 돈과 시간뿐이다. 적은 돈은 아니지만 다른 일을 하면서 다시금 재기를 노려볼 만한 액수이다.

그렇다면 당신이 한국의 디자이너라면 어떨까? 일단 해외 판매가 아닌 국내 판매를 우선 시작하고자 한다면 당신은 처음부터 난감한 상황에 빠진다. 힘들게 샘플을 만들고 룩북을 만들어도 '사입'을 진행하는 바이어가 거의 없다. 로컬 디자이너 브랜드의 옷을 판매하는 숍 자체가 많지 않은데다 거의 대부분 '대행판매'라는 형태로 입점을 권유한다. '대행'이란 '사입'처럼 생산 전에 미리 주문을 하는 것이 아닌 생산이 완료된 제품을 대신 판매해주는 것이다. 결정적인 차이점은 팔리지 않는 재고에 대해서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입'을 하게 되면 그때부터 제품의 판매권 및 책임이 모두 판매 업체로 넘어가게 된다. 때문에 그 리스크를 높은 수수료를 받는 것으로 대체하고 홍보와 세일 등의 이벤트를 통해 재고를 처리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대행 판매는 잘 팔리면 일정 수수료를 받고 안 팔려도 브랜드에게 반품하면 그만이다.

난감한 상황이긴 하지만 대신 수수료가 낮으니 디자인에 자신 있다면 더 좋은 상황 아닐까? 하지만 문제가 그리 간단치는 않다. 샘플 제작 비용이 몇천만원에서 끝나는 수준이라면, 한 시즌 상품을 '생산'하는 비용은 그보다 훨씬 많다. 비싼 소재를 쓰고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선 몇억쯤은 우습게 넘어가기도 한다. 이런 금액은 개인이 감당할 수 있는 비용을 넘어서기 때문에 대출이나 투자를 받아야만 한다. 이런 상황에서 '디자이너 브랜드' 특유의 실험성이나 거침없는 자유분방함을 기대한다는 것은 '잔인'하다. 생산에 들어가는 비용이 회수가 되지 않는 순간 한 인간으로서 재기가 불가능할 빚더미에 앉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트렌드를 쫓아야 한다. 팔린다는 소문이 난 디자인은 과감하고 신속하게 '참고'해야 한다. 그리고 가격 경쟁력도 무시할 수 없으니 퀄리티를 높이는 건 '쓸데없는 고집'일 뿐이다.

하지만 오해가 없길 바란다. 나는 '사입'을 진행하지 않는 한국의 소매 업체만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 역시 보장되지 않는 리스크를 떠안는 것은 쉽지 않은 선택이다. 특히 '상품성'도, '독창성'도 없는 한국 브랜드를 '사입'까지 한다는 것은 달갑지 않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식의 쓸데없는 논쟁만 가중될 뿐이다. 게다가 '위탁 판매' 위주로 진행된 현재의 시스템에 잘 적응한 수많은 브랜드들이 화려한 성공 신화를 쓰고 있지 않은가. 이걸로 만족한다면 상관없다.

단지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우리나라는 참신한 오리지널리티와 높은 퀄리티로 무장한 '디자이너 브랜드'가 살아남는 것이 매우 힘든 구조라는 것이다. 한두 시즌 운이 좋아 돈을 벌 수는 있어도 한 시즌만 삐끗해도 모든 재고를 떠안는 구조 속에서 원래 갖고 있던 퀄리티에 대한 고집을 유지하고 창의성을 발휘한다는 것은 '새우잡이배' 혹은 '밀항'을 각오해야 하는 일이다. 가격은 내려야 하고 트렌드에 영합하는 '기성 브랜드'가 되어야만 한다. '세컨 브랜드'라도 만들어서 현재 잘 팔린다는 디자인들을 내야만 한다. 그러나 그러한 중저가 시장은 거대 자본이 쉽게 지배할 수 있는 곳이다. 지금의 상황은 아직 간만 보고 있는 거대 자본이 본격적으로 움직이지 않아 발생한 '빈틈'일 뿐 오래갈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디자이너 브랜드 특유의 민첩함과 영민함이 효과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시장이 형성되지 않는 한 그나마 있던 개인 디자이너들의 밥줄이 끊기는 것은 시간 문제다.

외국의 디자이너 브랜드 역시 디자이너의 창조성과 상업성 간의 고민이 끊이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다. 하지만 앞에서도 말했듯 디자이너 브랜드가 짊어져야 하는 리스크의 크기가 너무 다르다. 리스크가 적은 만큼 적정한 균형 안에서 창조성이 발휘될 여지가 크다. 물론 외국의 모든 디자이너 브랜드가 훌륭하지는 않다. 오히려 대부분 어이없이 미숙한 아마추어들 투성이고 기존의 것을 그대로 답습하는 진부한 디자이너들도 많다. 그러나 최고급 퀄리티에 목숨 거는 장인정신을 가진 디자이너, 누구도 생각지 못한 발상을 해내는 혁신적인 천재들이 사장되거나 시작조차 못하는 최악의 불상사가 발생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그런 귀중한 원석들이 몇 시즌 동안 차츰 다듬어져 우리가 알고 있는 명품 브랜드의 수장이 되는 것이다. 그것을 수십년의 경험으로 알고 있는 외국 패션계는 디자이너 브랜드의 리스크를 공동 부담해야 한다는 인식을 갖고 있는 것이다.

 

나는 한국 패션계가 처한 이 난제를 타개할 방법이 단순히 소매업체들의 '사입' 전환에만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디자이너 브랜드에 대한 고객들의 인식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은 상황에서 무리하게 가격을 올릴 수도 없는 노릇인 데다, '사입'은 리스크 비용을 고객에게 돌리는 구시대적인 방법론이라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지금처럼 재고에 따른 리스크를 온전히 디자이너들에게만 부담 지우는 구조에 대해서는 공론화 시켜 비판해야 마땅하다. 격렬한 토론을 벌여야 한다.

 

(중략)

보다 많은 아이디어들이 모아지고 시도되어야만 한다. 절대 나를 포함한 현존하는 '디자이너 브랜드'를 위해서가 아니다. 고집과 꿈을 위해 외국행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수많은 재능 있는 디자이너들과 시작조차 못하고 다른 진로를 찾아야만 했던 불운한 천재들을 다시금 이 판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서다. 성공한 이들에 대한 적절한 보상과 실패한 도전자들에 대한 최소한의 안정망이 갖춰질 때 그 '판'은 알아서 성장하고 시스템을 정교하게 만들어 간다. 그리고 그런 판이 갖춰져야만 진정한 의미에서 '한국 패션 문화'가 살아날 수 있다. 고객들이 원하는 니즈와 디자이너들의 제안 사이에서 독특한 스타일이 형성될 것이고 장인 정신에 입각한 혼이 담긴 명품을 지향하는 브랜드가 등장할 것이다. 현재를 화려하게 수놓을 천재들이 등장할 것이고 미래를 책임질 신진들이 쏟아질 것이다. 그리고 그런 건강한 내수 시장이 만들어져야만 세계적인 브랜드가 등장할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진다. 남은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출처

허핑턴 포스트에서 퍼옴

 

 

결론

1.소매 구조의 잘못됨

(기성 브랜드 위주의 패션산업과 대행 판매로 이루어지는 구조)

2.한국인들의 잘못된 인식

3.창의성 존중 안하는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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