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조선















 

어제 날이 시원해서 오랜만에 티브이를 켰는데 볼 만 한 게 전혀 없어서

케이블티브이 무료영화가 있다길래 보니 와..70-80년대 한국영화 수백편이 무료영화로 떠있더라.

그래서 그냥 이두용의 '업'을 보기로 함. 약간 스릴러 삘도 있고 강수연이라는 여배우가 주인공이어서..

(이두용 감독은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꽤 예술성있는 영화를 만들었다고 평가되는 감독임..깐느에서 무슨 상인가도 받았다)

이 영화가 무려 88년 영화인데 그 당시 티브이 드라마는 요즘 나오는 좋은 티브이로 보면 엄청 뭉개져서 보기 힘든데

(개인적으로 94년에 나왔던 '서울의 달'이라는 드라마를 무척 좋아했다. 내가 한국드라마 중에서 아마 유일하게 끝까지 봤던 드라마. 채시라 최민식 한석규 백윤식 등이 주연. 연기력이 진짜 장난들이 아니고 소재 역시 일반 드라마와 다름. 한 번 볼만함.)

영화는 그래도 볼 만하더라.(드라마보다는 도트가 좀 많은 듯)

 

대략적인 스토리는 다음과 같음.

대략 조선 후기 쯤으로 보이는데 역질이 돌고 있음. 주민들은 역질을 막는다는 이유로 나무로 남근을 깎아서 집앞에 걸어놓는데

(대략 사내아이 낳았을 때 고추를 새끼에 묶어놓은 것과 같은 의미)

이를 본 사또가 크게 노함. 저런 건 미신이라면서 모두 뜯어버려야 한다고 함.(참지식인?)

이런 남근을 깎아파는 사람이 있는데 그에게는 대단한 미녀아내(강수연)가 있었음. 참 남편 역할은 예전에 궁예로 히트쳤던 김영철이 나옴. 사또역할은 남궁원이라고 요즘에는 안 나오지만 7막7장의 저자인 홍정욱의 아버지임.

어느 날 사또가 자기 집에 갔는데 자기 집에도 남근형상들이 문앞에 주렁주렁 걸려있음. 노한 사또는 남근형상을 모조리 뜯어내버리면서 누가 이걸 만들었는지 당장에 잡아오라고 함.

잡혀온 조각가와 아내를 본 사또는 첫눈에 아내가 맘에 듦..사실은 맘에 들기보다는 일종의 업(karma)의 장난으로 매력을 느낌. 물론 사또는 이성으로 억제하며 그런 망측한 물건을 만들지 말라고 하고 조각가에게 볼기 열 때를 때려서 돌려보냄.

볼기를 맞을 때쯤 사또의 가족들이 동헌에 들어오는데 사또에게는 처첩이 있음. 처에게는 십대 초반 정도의 두 딸이 있고 첩은 강보에 애기를 안고 오는데 역시 딸임. (당대에는 처에게서 아들을 얻지 못하면 첩을 얻는 것을 일종의 필수였음. 근데 첩도 딸을 낳음.)

다음날 사또가 나무다리를 건너는데 마침 나무다리에서 조각가와 딱 만남. 길을 비키려다가 그만 물에 빠지고 맘. 당시 조각가가 아내를 업고 있었는데 둘 다 빠짐. 이 때 사또는 조각가의 아내를 어떻게 해보겠다는 결심을 함.

다음날 조각가의 아내를 보쌈해옴. 그러면서 사또는 너를 분명히 어디서 본 적이 있다는 기시감(데자뷰)을 들먹이며 몸을 요구함. 조각가의 아내는 남편을 해치지 않는다는 조건 하에 응함.

(이게 요즘으로 따지면 납치강간인데..모르긴 해도 징역 10년은 더 받을 범죄인데 말이야)

이 부분에서 내가 깜빡 졸기는 한 거 같은데 볼기를 맞고 생업도 할 수 없는 조각가가 몹쓸 병(문둥병)에 걸려서 남들 눈에 띌 수도 없는 상태가 된 듯함. 처음부터 조각가의 집은 마을에서 외떨어진 곳에 있는데 이미 병에 걸려있었는지도 모름.

결국 조각가의 아내는 사또의 두번째 첩이 됨..(분명히 남편이 있는데도..)

이 두 번째 첩은 예쁜 짓을 해서 처첩의 신뢰를 얻으나 처는 병을 앓게 됨.(가슴을 찌르는 것 같다고 함)

처는 약을 먹어봐도 효과가 없자 이제는 무당을 부르는데 무당이 굿을 하다가 누군가가 방자질(사람에게 원한을 품고 저주하도록 하는 행위)을 했다고 하고 나뭇가지가 부르는대로 따라가는데 그게 바로 첫번째 첩의 베개임. 그곳에서 저주하는 문서가 등장함.(조잡한 그림으로 사람의 가슴을 찌르는 형태)

노한 처는 첩을 매질하는데 마침 사또가 들어오고 열받은 사또의 분노의 주먹에 첩은 그냥 죽고 맘..

(사실은 조금 이따가 밝혀지는데 사또에게 생업을 빼앗기고 매질로 병까지 얻고 분노한 조각가의 아내가 사또의 집안을 망하게 하려는 생각으로 이 짓을 한 거임..처첩간의 갈등 구조를 폭발시킴)

이렇게 해서 첩1명 death!

조각가의 아내(이제 first 첩으로 승진)는 조신한 척하면서 사또를 위로하는데 사실 몰래 여전히 남편을 만나면서 음식을 대주고 있음.

사또의 아내는 병이 더욱 악화되어 생사의 기로를 걷고 있고

인생이 안 풀리는 사또는 전에는 미신이라고 불리던 무속인에게 다가가 묻게 되는데

소경 무속인(이 사람은 눈이 안 보여서 그 사람의 현세를 알 수 없고 전생만 본다고 함)에게 찾아가 문의한 결과 이런 대답을 얻게 됨.

 

고조 할아버지가 문둥병에 걸려서 은폐된 시설에서 살고 있었는데

고조 할머니가 사람의 간이 문둥병에 좋다는 속설을 믿고 파평 윤가 한 사람을 죽여서 그 사람의 간을 빼서 남편에게 먹임.

남편은 그게 영험했는지 병이 낫고 열심히 공부해서 과거급제함. 이후 명문가가 된 것. 한마디로 피의 댓가임.

그래서 자손들에게 파평 윤가를 만나면 반드시 은혜를 갚을 것..보다는 원한을 갚으려 하지 않도록 잘 해줄 것을 신신당부.

그런데 바로 그 조각가가 파평 윤가였음!!(여기서 조금 소름..사실 예상했던 스토리이긴 하지만)

그러니까 그 파평 윤가에게 잘 해줘야 조상이 만들었던 부정적인 카르마를 해소할 수 있는데

오히려 매를 때리고 그 아내를 취해서 자신의 첩으로 만들어버렸으니..사실 이것보다 더 큰 모욕이 어디 있겠나?

결국 부정적인 카르마에 부정적인 카르마가 쌓여서 이제는 해소할 수 없는 수준의 악업으로 변한 것.

이 때 사또 부인이 결국 죽고 마는데..

결과적으로 사또의 처첩이 모두 희생된 것. 사또는 이제서야 조각가의 아내가 개입되었을 것이라는 확신을 하고

조각가의 아내를 찾아나섬. 이곳이 바로 문둥병에 걸린 조각가가 숨어있느 곳인데 역시 그곳에 조각가의 아내 또한 있었고

다툼 끝에 결국 조각가를 찔러죽이고 만다.

조각가의 아내에게 왜 이런 일을 했냐고 묻자 자신은 남편에게 모욕을 주고 자신을 욕보인(사실상 강간) 사또에게 보복하겠다는 마음 뿐이었고

남편이 죽었고 사또의 처첩 또한 죽었으니 나 또한 생을 마감하려 한다면서 우물 속으로 뛰어내려 자살한다.

결국 사또의 1처2첩은 모두 허망하게 죽고 말며

이제는 미쳐버린 사또가 처절하게 고함을 지르며 밖으로 뛰어나오는 장면으로 영화가 끝맺는다..

(솔직히 영화는 지루하다..명작영화도 아니고)

 

일단 느낀 점

사또는 권력을 빙자해서 백성의 아내를 강탈함..이게 도미설화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나오지? 개로왕인가?가 첫눈에 반한 도미의 아내를 얻으려고 도미를 죽였던 거 같은데..

암튼 요런 일이 벌어지는데..

사또 밑에 있던 육방들은 바로 이 일에 동원된다. 육방들은 어차피 너의 남편은 생계도 이을 수 없고 인생 끝났는데 사또가 너를 좋아하니 따라라..이런 식으로 조각가의 아내를 설득함. 

지금 생각해보면 이건 뭐 권력형 범죄지..그런데 향리들은 세상이 그런 거야 하면서 여성을 설득. (물론 여성은 설득된 게 아니고 복수의 일념으로 사또에게 몸을 바침)

 

둘째, 존나 가난한 시골같은데 사또는 항상 수행원 20명 이상 데리고 다님. 혼자서 항상 가마를 타고 다니는데 가마꾼 4명에다가 아마 이 가마꾼을 대체할 애들이겠지. 대략 한 10여명 정도 가마꾼이 있고 여기에 경호원으로 보이는 포졸에다가 육방까지 20명이 뭐냐 30명은 데리고 다니는 듯.

이른바 '의전'이라는 건데 요런 형식이 예전부터 엄청 중요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사또가 지나가면 모든 백성들은 일을 멈추고 고개를 수그리고 얌전히 있어야 한다.(무릎꿇지는 않더라. 그건 왕에게 하는 듯)

저 20-30명을 좀 더 생산적인 인력으로 군정을 개선하는데 썼으면 얼마나 좋았을까만 그런 거에 대한 생각보다는 사또의 권위가 더 중요하고 백성들에게 겁을 줘서 복종시키는 데 의미가 있는 거 같더라. 당시에는 육체적 힘이 많이 필요했을텐데 20명 장정이 일을 했으면 100명 먹을 식량은 생산하지 않았을까? 

 

처첩의 경우에도 몸종이 기본으로 딸리고 물론 사또의 첩이 된 조각가의 아내 또한 몸종이 생김. 처의 경우에는 몸종이 3명 정도 있던데 아마 딸도 수발하는 거 같더라. 그리고 웃기는게 이 몸종끼리 서로 견제가 장난이 아님. 어차피 몸종인데도 자기 주인과 한몸이 된 듯이 서로 질투하고 눈치싸움함. 

 

그리고 사또의 개인적인 유흥과 선호에 향리들이 동원됨. 납치극에도 참여하고 사실 개인적인 복수극이 되는 마지막 싸움에서도 포졸이 출동..한마디로 공과 사의 구분이 없음.

나는 직원이 3명 있는데 사실 사적인 심부름을 시켜본 일이 없다. 이런 게 당연한 상식이어야 하는데 공사 구분 없이 수하를 대거 동원함.

 

마지막으로 샤머니즘인데 처음에는 미신을 반대한다면서 남근조각을 깎았다고 두들겨패던 놈이 나중에는 결국 샤머니즘으로 가서 무당에게 찾아가 일의 연유를 캐물음. 내 생각에는 한국인들은 저런 샤머니즘에 대한 어떤 지향성이 굉장한 거 같더라. 최순실만 해도 그렇고.. 뭔가 초현실적인 것에 혹하는 측면이 있는데 이건 아래위가 없음.

 

영화를 보는 내내 답답하고 짜증나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는데 아내는 무섭다고 하면서 다 보던데 내 아내는 무슨 '믿는대로 된다' '전생' '타로카드' 이런 거 엄청 좋아한다..아마 그래서 느낌이 팍팍 왔던 모양임. 나는 폰하면서 슬쩍슬쩍 곁눈질하면서 봤었고..

 

암튼 은근 화딱지 나게 만드는 영화였음. 

 

 






  • ㅋㅋ 잘 읽고 가입니더. 

    역시 효율성 떨어지는 민족은 영화에서도 볼 수 있구마요이
  • 힐링다운 영화를 보고싶다면
    픽사의 업을 봐라
    니가잊고지낸 감정을 느낄수있을꺼다
    나이먹을수록 그게 감동이더라
  • 영화는 영화일 뿐이고, 그냥 사람들의 눈길을 끌 만한 요소들을 자극적으로 집어넣은 것에 볼과하니 실제 역사상의 그것과는 별 상관이 없지요. 님의 글에서 느껴지는 해당 영화의 유치한 스토리와 뻔한 연출에 대해 생각해 보면, 그저 여기에서 당시 조선인들의 영화제작기술이 별 볼일 없었다는 것을 알려준 뿐.


    저도 전생, 타로카드, 마법, 요정 이런 거 엄청나게 좋아하는데, 단지 사주가 통계네 하는 개소리라던가 진짜로 이러한 것들을 있는 그대로 믿는 것과는 완전히 담을 쌓고 있지요. 
    이런 건 일반적으로는 그저 고대인들의 개소리, 아무리 잘 봐줘야 직관과 감에 의해 미래의 흐름을 읽는 데 있어 약간의 심리적인 도움을 주는 형식적 도구 이상도 이하도 아닌데, 여기에 무슨 고대인의 통계니 마법이니 그 자체로서 미래를 보여준다고 하는 사람들 보면 그저 웃플 뿐이지요.
  • 니가 뭘 안다고 아는척이냐 어이상실
  • 숨죽이고 쭉 읽었습니다. 평소에도 글에서 연륜과 묵직함이 느껴졌는데 단순한 감상문에서도 느껴지네요. 덕분에 영화한번 꽁짜로 봤습니다 ㅋ 전 읽으면서 조선시대의 부조리함 미개함도 느꼈지만 저 업이라고하는 카르마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네요. 세상일이 복잡한거 같아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저 카르마가 얽혀서 그런거라 그걸 실타래풀듯 집중해서 하나하나 풀어나가면 풀리던 것 같습니다. 물론 애초에 얽히지않게 신중한 편이 낫겠지요.우리 애기같은 리아는 영화일뿐이니 어쩌고 했지만 그 당시에는 더 심한 일들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많았지요. 특히나 여성들에게. 사람사는 현실이 영화보다 심한 것을... 또 글 기다리겠습니다.
  • 점.
    17.09.08

    오, 제가 이두용 감독 영화 좋아하는데 ^^

    최후의 증인, 물레야 물레야 여인 잔혹사, 청송으로 가는 길 정말 잊을 수가 없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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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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