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조선


노인
17.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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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북에 돌아가는 탈북민이 한두명씩 생기고, 북한은 이들을 내세워 남조선은 지옥이라 선전하고 있습니다. 많은 북한 사람들은 “그 잘사는 남조선에 어렵게 가선 왜 다시 돌아왔냐”고 궁금해 할 것입니다.

 

남쪽에 온 탈북민들은 재산도, 인맥도 없고 북에 남겨 두고 온 혈육에 대한 그리움과도 싸우며 적응해야 합니다. 돌아간 사람들은 대개 돈을 마구 끌어다 빚을 많이 져서 쫓겨 다니다 부모형제가 있는 북한을 마지막 도망지로 선택하더군요.

 

여러분들은 “목숨 걸고 남조선까지 간 정신으로 무엇을 못하겠냐”고 반문하고 싶겠죠. 맞습니다. 한국에 온 탈북민 3만 명 대다수는 그 정신으로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욕심을 내다가 빚더미에 앉는 사람도 분명히 있습니다. 북에서도 적응 못하고, 한국에서도 적응 못하는 사람이 왜 없겠습니까.

 

여기는 물질적으로 풍요하지만, 속내를 뜯어보면 살기 만만한 사회는 아닙니다. 시장경제는 치열하게 경쟁하면서 사회가 빠르게 발전합니다. 반면 모두가 국가의 주인이라는 북한은 경쟁이 없다보니 지금처럼 가난해지는 것이죠.

 

지금 남쪽에서 젊은이들이 현 상황을 ‘헬조선’이라 부르며 자조한다는 이야기는 노동신문이 남쪽을 비난할 때 단골로 나오는 말입니다. 헬은 지옥이란 뜻인데, 결국은 지옥조선이라고 부른다 이 말이죠.

 

실제 헬조선이란 단어는 분명히 있고 지난달에도 두 명의 교수들이 이를 두고 공개 논쟁을 하기도 했습니다.

 

먼저 북한 리과대학쯤 되는 카이스트라는 대학의 58세 교수가 글을 썼습니다.

 

요약하면 젊은이들은 지금 얼마나 행복한지 깨달아라. 나는 초등학교 때 밭에서 김을 매고, 겨울이면 땔감을 마련하려 산으로 갔다. 커가면서도 정말 땀을 비 오듯 흘리며 일하며 살았다. 

 

너희들의 할아버지 할머니는 외국 가서 제일 힘든 곳에서 고생했고 아버지는 중동의 뙤약볕에서 하루 종일 일했다. 

 

그래서 나라를 이만큼 발전시켰는데, 너희들은 그 덕분에 해외에 배낭여행을 다니고, 비싼 커피를 마시면서 왜 불평을 하냐. 나약하게 우는 소리 하지 말라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실제로 1960~70년대는 남조선 사람도 정말 고생을 많이 했고, 정말 열심히 일해서 이만큼의 부를 일구었습니다. 

 

그리고 그때는 대학가는 사람은 10% 밖에 안됐지만, 지금은 80% 넘는 젊은이들이 대학을 졸업해 단군 이래 최대 고학력 사회가 됐습니다. 

 

이 교수의 일갈에 동시대를 살아온 대다수 고령 세대는 물론 북에서 고생하다 온 탈북민 대다수도 아마 공감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하지만 저는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고통도 구분 못하는 이 글에 공감보다는 화가 났습니다. 

 

마침 카이스트 교수와 나이가 비슷한 50대 후반 한양대 교수가 이 글을 ‘5000년 역사 최고 행복 세대의 오만’이라고 비판했습니다. 

 

70~80년대 매년 10% 가까운 고도 경제성장기의 대가를 톡톡히 받고 산 사람들이 후세대의 아픔을 함께 못하고 징징댄다고 타박하는 것은 오만 중의 오만이라는 것입니다.

 

1970년대는 대학만 나오면 지금은 수백 대 일의 입사 경쟁률인 공기업도 거들떠 안볼 정도로 직업이 풍부했습니다. 

 

그런 이들이 지금 은퇴하는 지금쯤 자기 집값은 이미 백만 달러 넘게 불어났고 연금은 혼자 쓰기 어려울 정도라는 것입니다. 저는 이 말도 공감이 됩니다. 

 

지금 한국 사회의 부는 고생 속에서 살아왔다는 고령 세대가 거의 다 갖고 있습니다. 젊은이들은 아버지 세대보다 훨씬 더 많이 공부했고, 지식도 비할 바 없이 높지만 돈도 일자리도 얻기 힘듭니다.

 

이 논쟁을 저는 약간 다른 시각에서 생각했습니다. 물론 사람마다 자기 고생이 제일 크다고 생각하지만, 저는 객관적으로도 저 교수들보다 어려서 더 고생을 많이 했고 감옥도 여섯 개나 경험했고, 더 나은 삶을 위해 목숨도 여러 번 걸었습니다.

 

그리고 사회주의를 자처하는 북한에서도, 자본주의 남한에서도, 그리고 두 제도가 공존하는 중국에서도 살았습니다. 이 정도면 저도 논쟁에 끼어들 체험은 좀 있습니다.

 

저는 카이스트 교수의 글을 보고 “저분의 자녀는 무엇을 물려받을까”라는 생각부터 들었습니다. 제가 볼 때 지금 한국은 부와 신분의 세습이 점점 고착화됩니다.

 

잘 사는 부모를 둔 자식들은 재산을 물려받아 잘 살 확률이 크지만, 가난한 부모를 둔 자식들은 가난에서 벗어날 확률이 점점 적어집니다. 

 

부모가 좋은 직업이면 자식도 좋은 직업을 갖지만, 가난한 부모면 좋은 직업 갖기도 어렵습니다. 

 

1960년대엔 모두가 가난했고, 모두가 열심히 하면 잘 살 확률이 컸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부모라는 배경을 젊은 세대가 혼자의 힘으로 넘기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저는 이런 부와 신분의 대물림을 북에서 뼈저리게 경험했습니다. 북한은 철저한 신분제 사회였습니다. 

 

출신성분이 나쁘면 평생 농민에서 벗어날 수 없는 신분 세습에 분노했는데, 여기도 와보니 점점 부익부빈익빈이 고착되고 있더군요. 물론 북한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적어도 점점 심해지는 방향으로 갑니다.

 

숟가락 하나 없이 온 탈북민은 남쪽에서 이런 상황을 바꾸기 어렵습니다. 임대아파트는 받지만 아파트가 50만 달러 이상씩 하는 서울에서 자기 집 장만하긴 어렵습니다. 

 

물론 그래도 북한보다는 훨씬 더 풍요롭고 굶주림과 거리가 멀게 사는 것은 분명하지만 말입니다.

 

남쪽은 분명히 천국은 아닙니다. 여기 와서 치열하게 경쟁해도 여기서 태어나 뭔가 물려받을게 있는 사람보다 잘 살 가능성은 높지 않습니다. 이 점은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그렇지만 왕의 아들이면 왕이 되고, 중앙당 간부의 자식이면 중앙당 간부가 되는 봉건식 신분 세습제도가 버젓이 존재하는 북한보다는 훨씬 기회가 많은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서 노동신문이 한국이 망한다고 떠들면, 북한은 그것보다 더 빨리 망해야 하는 것이 역사의 순리일 것입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

 

(※이 글은 자유아시아방송을 통해 북한 주민들에게 전해지는 내용으로 2017년 8월 18일 방송분입니다.

남한 독자들이 아닌 북한 청취자들을 대상으로 한 글임을 감안하시고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

 

(아래는 이 원고를 쓰기 전에 11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다)

 

대북방송 소재를 뭘 할까 고민하다가 지난달 말에 ‘감명깊게’ 읽었던 이병태 카이스트대 교수의 글을 소재로 했다. 

 

이 교수는 말했다.

 

“너네 헬조선이라 징징대지 마. 너네 호롱불 아래서 공부해봤어? 밭에서 김매고, 겨울에 땔감 하려 산에 가봤어? 팬티만 입고 일해 봤어? 너희들 빈정거림과 무지에 무지 화가 나니까 입 닥쳐.”

 

난 이런 질문에 당당히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다.

 

“난 다 해봤으니 입 안 닥쳐도 됨? 집안도, 가난도 내가 훨씬 더하면 했지 못하지 않을 것임. 참, 팬티만 입고도 정말 많이 일해 봤음. 남에서도 북에서도…나하고 가난 체험 배틀해서 이길 자신 있음?”

 

나는 여기에 더해 그와 비교 우위의 꼰대짓하려면 할 게 많다.

 

“이 교수는 목숨 몇 번이나 걸어봤음? 나처럼 감옥과 수용소 여섯 개 가봤음? 생니가 부셔질 정도로 고문 받아봤음? 

 

더 중요한 거-사회주의 시스템에서 살아봤음? 자본주의 사회주의 짬뽕된 체제에서 살아봤음? 태어나 간부 자식이면 간부가 되고, 농민 자식이면 농민이 돼야 하는 신분제 사회 살아봤음? 난 지금 사는 자본주의 체제까지 무려 네 개 사회에서 살아봤음.”

 

이 교수가 “고생 못해 본 젊은이들 입 닥쳐”라고 말할 수 있다면 나 역시 “난 더 심한 고생했고 체험도 많으니 이 교수는 내 앞에서 입 닥쳐”라고 말할 자격이 있을 수도.

 

결론을 말하면 내가 이런 저런 체제에서 별 고생도 다 해보고 살아보니 “가난해도 희망이 있는 사회, 내가 노력한 것만큼 돈을 벌 수 있는 사회, 이 교수처럼 소작농 아들이 교수가 되는 사회”가 제일 행복한 사회인 것이다.

 

제일 엿 같은 사회는 신분이 태어나서 결정되는 사회, 즉 “태어나니 내 부모가 뭐더라”에 내 인생도 결정되는 사회였다. 지금 북한이 그렇다.

 

그렇다고 지금의 남쪽은 안 그렇다고 할 수 있을까. 안 그런 사회 어디 있냐고? 그래 없다. 그래서 천국도 없는 것 맞다.

 

하지만 지금 청년들 고생 안 해서 불평 늘여놓는 듯 인식하는 것은 진짜 세상 보는 눈이 잘못 된 것이다. 본인은 제일 행복한 시대에 성취감 만땅으로 느끼며 살아놓고 그것도 모르면서 웬 훈계?

 

원래 노력한 것만큼 돈이 막 벌릴 때는 사람이 힘들 줄 모르고 죽을 둥 살둥 모름. 그건 고생도 아닌거임. 그런 상식쯤 누구나 다 알고 있음.

 

성취감이 뭔지도 모르고, 미래조차 암울한 좌절 그거 뭔 느낌인지 알까.

 

누구나 자기의 고생이 제일 크게 느껴지는 법. 그런 사소한 이치만 알아도 입 닥쳐 라고 말 못한다.

 

그리고 수천 년 역사 돌아봐도 원래 청년은 사회에 대한 불만이 많은 법. 그게 있으니 사회가 진보하는 것임. 

 

그리 노력해서 그 세대가 부를 독차지하고 있음 충분한 보상이 된 거 아님?  연령대별 부동산 보유율은 70대 이상이 가장 높다. 아무리 노력해도 뭐가 안되는 사람들의 절망을 헤아릴 줄 왜 모를까.

 

이 교수는 징징대지 말란 말을 청년들이 아니라 자신의 자녀들에게 하면 된다.

 

“니들 카이스트 교수 자식으로 태어난 게 얼마나 다행인지 아냐? 부모가 자식 발목 잡는 웬수인 가정이 얼마나 많은데, 넌 참 괜찮은 상황에서 시작한거야. 내가 죽음 물려받을 재산이라도 있잖냐” 이렇게 말이다.

 

물론 이런 내용 대북방송을 하는 것은 아니고, 한국도 천국이 아니라는 점을 북한 주민에게 전하는 샘플로 이 사회도 이런 논쟁이 있다는 것을 소개할 생각이다.

 

————————————-

 

※이 교수가 강남에, 그것도 대치동에 아파트를 사놓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내가 고작 1980년대 학번에, 매년 몇 억씩 블로소득이 생기는 강남아파트를 갖고 있다면, 10년 모아도 내 집 마련 못하는 청년들에게 헬조선 타령 말고 땀 흘려 노력하라는 소리를 절대 못하겠다. 내 양심으론.

 

그건 권력과 돈을 다 가진 북한 중앙당 간부가 가난한 청년들보고 “살기 좋은 사회주의 우리 체제를 헐뜯지 말고 견결히 고수, 발전시켜야 한다”고 하는 것과 별 다르지 않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http://blog.donga.com/nambukstory/archives/198564






  • 이 글... 나이 불문하고 모든 헬꼰대들이 봤으면 좋겠다
  • 블레이징
    17.10.06

    난 꼰대 킬러라고 불리지. 솔직히 내 인생에 대해 들어보고 반문 한마디 할 수 있을 정도로 병신 새끼들은 아직까지 만나보지 못했다. 지들이 외국나가서 고생한 거, 이런 저런 무용담을 늘어놓는데, 그때마다 그러거든, 채권회수 하러 다녀봤냐? 땅 빼앗으러 다녀봤냐? 주차장 안내, 청원경찰, 마트경비, 아파트 경비, 공장 노가다, 조선소 노가다, 택배 상/하차, 운전기사, 택배기사, 렌트카 팔이, 야간 편돌이, 야간 피돌이, 햄버거집, 팬시점, 스크린 골프 매니저, 베트남 공사감독 해봤냐고.


    내 면전에서 중동이니 동남아니 그딴 알량한 곳 가서 돈 두둑하게 받으면서 일한 걸 보고 고생이라고 하면 양심없는거 아니냐? 적어도 그 고생엔 비전이라도 있었지, 나 같은 사람들의 고생에는 비전조차 없다고 욕한다.


    그러면 아무 말 못하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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