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조선


KasaharaHiroko
16.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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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및 발췌:

책 제목: 한민족이야말로 역사의 가해자다

 

내부항쟁을 반복하며, 주변국을 전쟁에 끌어 들여온 한민족의 특이한 역사

 

 

                                  2016/06/05   文責:伊勢雅臣  번역 오마니나

 

 

■ 1. "한민족이야말로 역사의 가해자다"

 

 이시하라 씨의 최근 "한민족이야말로 역사의 가해자다"가 흥미롭다. 제목은 그야말로 감각적이지만, 냉정한 필치로 사실을 끝가지 추적해, 그런 다음, 그 제목대로의 결론을 이끌어내고 있다.

 

 " 눈에서 비늘이 벗겨진다(세상이 다시 보인다)"라는 진부한 표현이 있는데, 이 책은 바로 지금까지 우리의 눈을 덮고있던 "한민족은 일본 제국주의의 피해자였다"는 비늘을 제거하고 한민족의 진정한 모습을 분명히 보여준다. 앞으로 이 책을 읽지않고, 북한과 한국에 대한 역사도 외교도 논의할 수없게 될 것이다.

 

 서 론이 길어졌지만, 이 책은, 한민족이 내부항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주변 국가를 전쟁에 끌어들였다는 패턴이, 7세기초의 고구려 · 백제 · 신라의 삼국 통일전쟁에서, 20세기 조선전쟁까지 반복되었다는 사실을 극명하게 묘사하고 있다.

 

 그 중에서, 일본이 관련된 것이, 서기 661년의 백촌강 전투 [a] 1274년(文永 11) 년, 1281(弘安4)년의 원구(元寇) [b], 그리고 현대의 청일전쟁, 러일전쟁이다. 특히 원구에서는, 고려국왕이 자신의 생존을 위해, 일본정벌을 쿠빌라이에게 제안한 경위가 생생하게 그려져 있어, "그랬구나"라고 생각하게 만든다.

 

 본 고에서는, 이 중에서 현대의 청일, 러일,조선 전쟁 부분을 소개해, 본 책에 대한 흥미를 유도하고자 한다.

 

■ 2. 정부 측과 쿠데타 측이 각각 외국군을 끌어들였다

 

청일전쟁의 발단은, 조선왕조 제 26대 국왕인 고종의 아버지 · 대원군과 왕비 민비일파의 항쟁이었다. 민비 일파는, 1873년에 대원군을 실각시키고, 일본과 조일 수교조약을 맺고 근대화 노선을 취했다. 그 일환으로, 일본에서 군사교관을 불러 군의 현대화를 도모했다.

 

 이 에 불만을 품은 구 조선 군대의 군인들이, 1882년, 민비 일족인 고관의 저택을 습격한 후, 대원군 측으로 도망쳐 도움을 요청했다. 대원군은, 이것을 권력탈환의 기회로 보고, 민비 일족의 살해, 일본 공사관과 일본인 교관의 습격을 명했다. 그들은 그 지시대로, 일본인 13명을 학살했다.

 

 민 비는 왕궁에서 도망갔는데, 고종에게 밀서를 보내, 기사회생의 비책을 전했다. 그것은 밀사를 청나라에 보내, 군대를 파견해 줄 것을 요청하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청나라는 3천명을 한반도에 들여보내, 반란을 일으킨 한국군 병사들을 진압했다.

 

 이를 계기로, 청나라는 3천명의 군대를 그대로 반도에 주둔시키고, 조선을 완전한 속국으로 삼았다. 대원군은 체포되어, 청나라로 납치되었다.

 

 이 상황에 반발한 것이, 김옥균이 이끄는 젊은 관료 그룹이었다. 김옥균은 일본과의 연결라인을 통해, 한성(지금의 서울)에 주둔하고 있던 일본군의 힘을 빌려, 민씨 일족을 일소하고, 고종을 앞세워 정권을 장악하려고 했다. 당시, 다수의 자국민이 살해당한 일본은, 자국민 보호를 위해, 조선정부의 허가를 얻어, 수백 명 규모의 병력을 한성에 두고 있었던 것이다.

 

 김옥균이, 일본의 메이지 유신을 표본으로 조선의 근대화를 목표로 삼아, 일 중 조선의 3국동맹으로 아시아의 쇠퇴를 회복해야 한다는 "삼화주의(三和主義)"는 후쿠자와 유키치 등, 일본 조야의 지지를 받고 있었다.

 

김 옥균 등 50명은 일본군 150명과 함께, 1884년에 쿠데타를 일으켜, 일시적으로는 신정부 수립을 선언했지만, 청나라군 1500명과 조선 정부군의 반격으로, 중과부적에, 불과 3일 만에 진압되었다. 김옥균은 일본공사 · (竹添進一郎)와 함께 뱃길로 일본으로 탈출했지만, 약 30명의 일본인이 살해되고, 더 많은 조선인이 처형되었다.

 

■ 3. 일본을 청나라와 싸우게하고 독립을 선언

 

 1889 년 "동학당의 난"으로 불리는 농민봉기가 일어나, 1894년에 수만 명 규모가 된 농민군이 한 지방을 점거했다. 조선 정부는, 진압을 위한 출병을 청나라 정부에게 요청했다. 청나라는 2척의 군함을 인천에 파견, 2천 8백명의 병력을 상륙시켰다.

 

 이에 맞서, 일본은 공사관과 거류 일본인 보호라는 명목으로 6,000명을 파병했다. 10년 전의 난 때, 일본은 청국과 "천진조약"을 맺었는데, 그 내용 중의 하나가 청이 조선에 파병할 때 일본에게 통보하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이시하라 씨는 이렇게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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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 대조선이 자립한 독립국가로서,  남하하는 대륙국가와의 완충지대가 되어주지 못하고, 청나라의 대군을 한반도 내로 끌어들여 식민지 지배를 받아들인 것이,일본의 안보에 심각한 위협을 주었던 것 이상으로, 일본은 더 이상 싸우지 않을 수가 없었다. [1, p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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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월 23일, 오토리 공사는, 청국에서 송환되어 근신 중이던 대원군을 옹립해, 그의 명령을 받는 형태로, 일본군은 왕궁을 점거하고, 친청파인 민씨세력을 일소했다. 여기에 청일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기 회를 포착하는데 민첩했던 고종은, 1895년 1월, 아직 일본군이 청나라와 싸우고 있는 동안임에도 불구하고, 세자와 왕족, 각 대신을 거느리고, 청나라와의 주관계를 파기한다고 하는 독립맹세문을 종묘에 붙이고 전국에 선포했다. 계속 전투를 벌이고 있던 일본과 청나라로서는 어이가 없었을 것이다.

 

청 일전쟁에 승리한 일본은, 청국과 청일 강화조약(시모노세키 조약)을 체결했는데, 그 제 1조는 "청국은 조선국이 완전무결한 자주 독립국가임을 확인하고, 독립자주를 훼손하는 형식인 조선국의 청나라에 대한 조공·헌상·전례 등은 영원히 폐지한다"고 되어있다.

 

그야말로 조선은, 일본의 힘에 의해, "자주독립"의 지위를 얻은 것이다. [c]

 

 ■ 4. 이번에는 러시아로 급접근

 

 일 본은 시모노세키 조약으로, 대만과 요동반도를 얻었는데, 이것에 제동을 건 것이 러시아였다. 러시아는 독일, 프랑스와 모의해,요동반도를 청국으로 반환하도록 요구했다. 3국을 적으로 맞설 힘이 없는 일본은, 어쩔 수없이 이 삼국간섭에 따랐다.

 

 이것을 보고, 고종과 민비는 손바닥 뒤집듯, 러시아로 급접근했다. 러시아 공사인 웨버와 공모해, 내각의 친일개혁파를 몰아냈다.

 

 이 대로는 조선반도를 러시아에게 장악당해, 일본에게도 일대위기가 될 것이라고, 미우라 고로 공사와 일본의 낭인들이, 조선의 왕궁에 난입해, 민비를 참살했다. 이 만행으로, 국제사회와 조선국내의 일본의 입장은 나빠져, 친러파가 기세를 더하게 되었다.

 

 1896 년 2월, 친러파는 웨버와 공모해서, 러시아 군함에서 120명의 장병을 한성으로 호출해, 그들에게 호송되는 형태로, 고종과 세자를 러시아 공사관으로 옮겼다. 고종은 친정을 선언하고, 내각의 대신 5명을 역적으로 체포 도살령을 포고했다.

 

 이렇게해서 조선국왕이 러시아 공사관에서 "친정"을 실시한다는, 세계 역사에서 유례가 없는 해괴한 사태가 1년 이상 지속되었다. 친정이라고해도, 러시아인 장교 및 재정고문이 각각 군사와 재정을 장악한 속국정치다.

 

이렇게 일본은 청일전쟁을 치루고, 청나라의 패권을 배제한 것도 한 순간, 이번에는 더욱 강력한 러시아가 한반도에 눌러앉아 버린 것이다. 일본의 독립이 다시 위협을 받는 사태가 되어, 이번에는 러일전쟁을 치루지 않을 수 없게되었다.

 

 어 떻게든, 러일전쟁에 이겨서, 러시아와 맺은 포츠머스 조약 제 1조에는, "러시아는 대한제국에서의 일본의 정치적 · 군사적 및 경제적 이익을 인정하고, 일본의 한국에 대한 지도, 보호 및 감독에 대해, 간섭하지 않는다"라고 약속했다. 바로 청나라를 상대로 했던 시모노세키 조약의 반복이었다.

 

■ 5. 한일합방으로의 열렬한 대중운동

 

 러시아 세력을 구축한 후, 일본은 한일합방으로 나가게 되는데, 그 동기를 이시하라 씨는 이렇게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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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국을 내버려두면, 악몽같은 역사가 다시 반복될 지도 모른다. 일본에게, "조선문제"의 완전하고 최종적인 해결은, 한국을 그대로 합병하는 것외에는 없다는 것이, 당시의 제국주의와 식민주의, 약육 강식의 세계질서 속에서, 일본의 안전보장을 쥘 수있는 철칙이었던 것이다. [1, p167]
¯¯¯¯¯¯¯¯¯¯

 그 러나, 기묘하게도, 조선측에도, 한일합방을 열망한 일파가 있었다. 자칭 100 만, 실상은 20여 만명의, 당시로서는 최대규모의 민간단체인 "일진회"다. 일진회는 "외교권을 일본정부에 위탁하여, 일본의 지도보호를 받아, 조선의 독립, 안정을 유지하자"라는 선언문을 발표했다. 더우기 이 모임의 간부는 1909년 2월, 가쓰라 다로 총리에게, 양국의 "합방"을 제안했다.

 

일본정부가 한일합방을 추진하는데, 이러한 한국의 목소리가 큰 도움이 되었다. 일본과의 합방을 결정한 한국의 각의에서도, 한 명을 제외한 모든 각료가 찬성했다.

 

어 느 민족이 그 대중운동에 의해, 자국의 독립을 희생하면서까지 이웃으로 흡수 합병을 원한다는 것은, 세계 역사상의 기묘한 일이다. 미국의 조선 역사가인 그레고리 헨더슨은, 일진회의 움직임을 평가하면서, "사실 그것은, 정치사 상, 자신의 민족에 대해 수행된 반민족주의적 대중운동으로서, 지금까지 없었던 유일한 사례"라고 말했다.

 

 물 론, 일본에게 배워서 자신들의 근대화를 추진하려고 노력한 사람들도 있었지만, 역시 조선의 전통적인 사대주의, 즉 "남에게 의지할 바에는 힘있는 자에게"라는 심정이 일반대중 속에 없었다면, 여렇게 까지 열렬한 대중운동은 일어날 수 없었을 것이다.

 

합병기간 동안, 일본정부는 조선반도 근대화를 위한 방대한 자본투하을 행해, 30여 년간 농업생산도 인구도 2배 이상 증가하는 고성장을 실현했다 [d]. 그러나, 그 평화와 번영도, 일본의 패전에 의해 종지부를 찍는다.


■ 6. 내부항쟁으로 시작된 조선전쟁

 

 일 본의 항복 후, 미소는 38도선을 경계로 해서, 각각 남북을 점령했다.미,소,영국은 5년간의 신탁통치 기간동안, 조선의 독립과 통일정부 수립을 도모하는 "모스크바 협정"을 맺었지만, 정작 한민족 자신이, 또 다시 내부투쟁에 몰두해, 통일정권은 언감생심이었다.

 

결국, 소련을 배경으로 한 김일성과, 미국에서 돌아온 이승만이, 각각 북한과 남한의 정권을 수립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각각 상대국을 타도해서, 스스로가 조선의 통일정권이 될 것을 목표로 하고 있었다.

 

먼 저 시도한 것은 김일성이었다. 당시 일본의 산업시설이 많이 남아있던 북한 쪽이, 농업 중심의 남한보다, 압도적으로 국력은 위였다. 김일성은 소련의 스탈린에게 남침허가를 요청했다. 사악한 정략의 천재인 스탈린은, 만약 미국과의 전쟁이되면, 중국을 내세우려고, 모택동의 지원을 얻도록 지시했다.

 

 중 화인민공화국을 건국한지 얼마안된 모택동은 신중해서,  38선을 넘어 미국이 쳐들어 오면, 자국의 국경을 위협하게 되기 때문에 참전을 하겠다는 소극적인 지지를 표명했다. 이를 바탕으로 북한은 1950년 6월 25일, 38선을 넘어, 남한을 침공했다.

 

■ 7. 3개월에 끝났어야 할 조선전쟁이 ,,,

 

북 조선은 2개월 후인 8월 말에는 남한의 90% 이상의 영토를 점거했지만, 여기에서 미군을 중심으로 한 유엔군이 구원에 들어가, 불과 1개월 만에 서울을 탈환했다. 미군도 유엔군도, 38선까지 탈환하면, 거기서 전투를 중지할 계획이었다. 그대로 일이 진행되면, 조선전쟁은 3개월로 정전을 맞이했을 것이었다.

 

그 러나, 여기에서 이승만은 단번에 북한을 타도해 통일정부를 만들고자, 한국군에게 38선을 돌파시켰다. 이것에 끌려가는 형태로, 유엔군도 38선을 넘어 진격해, 마침내는 중국 국경까지 다가갔다. 여기에서 모택동은 부득이 중국 공산당 군대를 투입하게된 것이다.

 

이 렇게 해서 미중의 격돌이 된 조선전쟁은 그 뒤로 2년 9개월 이상 계속되어, 결국, 38선을 다시 원점으로 해 정전을 맞이했다. 김일성이 없었다면, 원래 조선전쟁은 일어나지 않고 지나갔을 지도 모르고, 이승만이 없었다면 3개월로 끝나, 그 이후의 6백만 피해자의 대부분은 손상되지않고 끝났을 것이다.

 

결국, 한민족의 내부항쟁과 외부세력 끌어들이기라는 전통적인 지병으로, 미국 중국도 모두 아무런 이익도 없는 전쟁에 휘말린 것이다.

 

■ 활용하지 못한 역사의 지적


 이렇게 조선반도의 역사를 통관해보면 청일, 러일, 조선전쟁이라는 3개의 전쟁모두가, 동일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드러난다. 한민족이 내부항쟁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 각각 주변국가를 전쟁으로 끌어들인다는 패턴이다.

 

 보 통의 민족처럼, 한민족이 하나로 결정되어 독립 통일국가를 만들었으면, 중국, 러시아, 일본의 완충지대가 되어, 동아시아의 평화가 유지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그렇게 생각하면, 한민족은 "동아시아의 트러블 메이커"라는 이시하라 씨의 지적은 설득력을 갖는다.

 

 한 민족이 내부항쟁이라는 지병을 스스로 극복할 수 없다면, 지금처럼 남북이 서로 대치하며,  결과적으로 미일중소의 완충지대가 되어있는 편이 좋다, 라는 것은, 냉혹한 지정학적 전략에서 말하면, 합리성이 있다. 미중 모두, 현재는 그 전략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북조선에서 상당수의 아사자가 나오더라도, 각국 도움을 주지 않는 것이다. 이것이 냉엄한 국제사회의 실태다.

 

 "반도와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한민족 내부분쟁에 최대한 관여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길"이라는 논리는 이시하라 씨의 결론이지만,이 책에서 한반도의 역사를 소신껏 더듬어 보면, 수긍할 수밖에 없는 결론이다.

 이 결론은, 청일전쟁 이전에 김옥균이 잔인한 방법으로 처형된 후, 그를 지원했던 후쿠자와 유키치가 "탈아시아론"에서 "우리들은 마음으로 아세아 동방의 나쁜 친구를 사절하는 것이다"라고 한 것과 같다. 이 예리한 지적을 당시부터 활용했다면, 우리나라의 근대사도 또한 다른 형태가 되었을 것이다. 우리는 역사의 예지를 활용하지 못했던 것 같다.






  • '지금처럼 남북이 서로 대치하며,  결과적으로 미일중소의 완충지대가 되어있는 편이 좋다'

     

    아무튼 통일파시즘을 박살내고 대치상태를 넘어 아예 다른 나라로 확고히 갈라서 비자받고 다니면 더할 바 없지만.

  • 그런듯. 아예 통일이라는 건 아무 도움이 안됨. 차라리 갈라져서 찬년만년 사는 게 도움될듯.
    국뽕들은 그래도 한민족 통일 빼애액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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