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조선










이상의 글은 리아트리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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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hellkorea.com/xe/board_MBgX00/2826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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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글의 헬조센에서 명백하게 일어나고 있는 계급화에 대한 글에 대한 덧글로 쓴 것을 한번더 찌끄려본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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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인이 인도에 처음 정착했을 때, 이와 같은 구조를 카스트제도라고 봤었고, 그 것을 인도사회에 고질적으로 자리잡은 악습이라고 봤었다. 그때가 대략 16세기였는데, 이 때까지만해도 리아트리스님이 말한 게르만사회적인 남녀평등이 대세였던 서구사회에서는 그 것들을 동양특유의 전제주의와 결부시키는 설명을 적어도 19세기까지의 독일이나 영국사가들 초기저작들에서는 빈번하게 관찰할 수 있었는데, 20세기중반이후에 인종차별과 타문화존중이라는 기치가 득세하기 시작하면서 19세기의 영국자유주의자들과 같은 관점은 거의 사라지게 되었고, 그나마도 헬조센은 서양학문체계에서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것만 도입하는 더러운 폐쇄적인 구조라서 그러한 것들은 논의되지가 않게 된 것이다.

지금의 한국사회는 산업화와 무관하게 일-한제국시절부터 형성된 근대계급의 카스트화가 존재하는 나라이고, 일-한제국이라는 것은 한일양국의 앙시엥레짐에 의한 구체제로써 조선의 경족과 일본의 유신집권봉건세력에 의해서 두 왕국이 결합된 국가가 바로 일-한제국이 되겄다.
다만 당시에는 일본내 사농공상의 철폐외에도 폐번치현이후에도 막부측에 붙었다가 몰락한 번의 하급사무라이들이 여전히 향촌에서는 기득권을 지니고 있었고, 이는 독일연방의 구공국출신들을을 의미하는 독일자유주의자들과 마찬가지였고, 그러한 일본내 정치적 구도상 감히 일-한제국을 표방할 수는 없었고, 그래서 단지 대일본제국이라고만 한 것임.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천황의 작위귀족인 조선귀족은 보통일본사람에 대해서 지배계급이었다는 점에서 그 것은 일-한제국으로 비정될 수가 있는데, 그와 같은 관점으로 볼 때에 일-한제국이라는 것은 오-헝제국과 마찬가지로 반혁명세력(주.오스트리아는 메테르니히와 왕정복고에 의한 유럽질서의 반동질서의 축이었음)에 의한 구체제적인 봉건제국이고, 그러한 제국이 동아시아에서는 1945년까지 유지되었고, 그와 같이 된 결과 민주주의는 제국의회로써 비스마르크시기의 독일의회와 비슷한 구체제적인 계급사회에 기반한 민주주의였고, 그와 같은 것이 지금도 답습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것은 인도의 카스트와도 결부시켜 볼 수 있는데, 지금의 인도의 카스트로 규정된 사회체계라는 것도 실은 인도의 근대이후에 도시계급사이에서 분화가 일어난 것은 현대의 인도카스트제도이다.

그와는 다르게 인도남부에서는 북부식카스트가 아닌 크샤트리아들과 농부들간의 기사와 농노와 관계와 같은 봉건제를 카스트라고 하면, 두가지는 명백하게 다른 것이다.

전자를 도시인들 사이의 계급분화, 후자를 봉건제라고 본다면, 지금 한국사회는 카스트화되고 있는 것이 맞다.




그러한 배경을 이해할 때에, 몇가지 역사적인 낭설들을 지지하지 않게 되는데,?이승만이 친일파를 중용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그 친일파들은 미군정에서 이미 중용되었고, 이승만은 단지 그러한 인사체계를 물려받았을 뿐이다.
나아가서?그러한 결정은 맥아더가 일본에 천황제를 존치시키기로 한 것과 결부지을 수 있을 뿐이다.
즉, 미국은 천황제를 존치시키기로 결정을 내렸고, 그에 따라서 조선의 구일한제국의 엘리트들을 군정에서 임용해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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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작, 친일파중용의 원흉으로 지목된 이승만은 그러한 주장으로써 원죄를 씌우려한 구기성세대학자들의 주장과는 다르게 적어도 대외적으로는 한국의 독자노선을 지향해서 일본과 수교를 거부하고,?이승만정권하에서 일본과 한국사이에는?공식적으로는 냉전이 일어나게 된다. 그 것을 구일한제국패러다임에 대한 이승만정권의 반발적 외교정책으로 본다면 이승만정권의 성격은 완전히 다르게 규정되어야 한단거다.
그러한 정책은?한 편으로는 2차대전이후에 한국민중들에게 불어닥친 일한제국패러다임에 대한 반발인?반일자주노선에 대한 요구를 정권이 수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렇게 볼 때에 이승만은 구일한제국체제로부터 한국을 독자노선으로 가게하려는 외교정책을 사용한 사람으로 볼 수 있고, 그렇게 볼 때에 그의 인사정책에서 친일파가 발견된 것을 가지고 트집잡은 것은 밑에 설명하게지만 그 일한제국패러다임을 부활시킨 자들에 의한 비판이면서 물타기였다고?볼 수 있다는 거다.
그러한 역사적인 비판은 4.19혁명을 계승했다고 하는 군사정권치하의 사가들에 의해서 자행된 것으로써 그들은 단순하게 친일의 굴레를 이승만에게 전가하려 한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비판을 가한자들은 기본적으로 일한제국체제에서 기득권이던 교육현장에서 한가닥하던 새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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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그러한 비판과는 다르게 대외적으로는 오히려 박정희야 말로 구일-한제국체제를 부활시키려 한 사람으로 이해할 수 있으며, 그러한 것은 그의 친일경력으로도 증명이 된다.
그러한 배경을 이해해야지 어째서 일한양국은 일본의 사죄없이도 공식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었는지가 이해가 되단 것이다.

또한 그렇게 볼 때에, 4.19및 5.16은 구일한제국엘리트출신들이 이승만정권동안 단절된 일한제국패러다임의 부활을 꾀하면서 정권을 전복한 것으로?봐야한다.
이 때 그 전위대가 된 것은 학생조직인데, 본디 학생조직이라는 것은 일한제국체제하에서 페이퍼테스트엘리트계급을 양성하는 조직으로써 교육체제에서 선발받은 '선택받은' 새끼들인데, 이승만직후의 사회변화에서는 그러한 기득권이 유지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일자 이 새끼들부터해서 반발을 한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4.19는 혁명이 아니라 반동혁명이고, 그들이 반항한?이유는 이승만의 대일본외교정책에 있고, 일한제국체제하에서 보증된 기득권이 엘리트육성체계로써의 교육체계와 군부들에게 주어지지 않은 것에 대한 반발로 4.19와 5.16은 함께 이해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에 대한 반발로써 군부들과 (관료)엘리트들이 합심해서 집권했을 때 갸들이 가장 먼저 한 일은 한일수교로써, 일본과의 물리적인 관계의 복원은 물론이고, 다시금 일한제국적인 독점자본주의에 한국호의 경제체제를 갈아타게끔하면서 일련의 재정정책으로써 40년대중반이후로 약세였던 대기업집산체제를 국가의 전폭적인 지원하에서 다시금 되살리고, 그 체제내에서 군부들과 엘리트새끼들의 기득권이 구현되게끔 한 것이다.

그리고, 위와 같은 것은 그에 따른 결과물인 것이며, 바로 현대의 한국을 규정짓는 사건이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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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하자면, 반동체제로써의 일한제국으로 비정될 수 있는 것이?있었음. 그 것은 일본, 한국 양국 기득권이 합심해서 창출해낸 구체제의 결정판으로써, 구독일제국이나 영국제국하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났듯이 그 제국하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났고, 자본주의가 싺튼 것은 사실임. 그러나, 한편으로는 독일제국의 프로이센귀족계급이나 융커와 같은?조선귀족이나 도막번출신귀족들, 그리고 갸들과 결부된 독점자본주의의 기업자본가들이 경제를 장악한 코포라티즘 오블리가치(corporatism oligarchy)와 같은 독점자본주의가 일한제국경제체제에서 결정적인 것이었고, 4.19와 5.16은 일한제국을 부활시키려는 엘리트새끼들의 반동혁명으로 봐야하고, 4.19와 관련된 봄항쟁의 결과물이 정치적으로는?묘한 방향으로 귀결되어서?친일과두그룹인 조선귀족자작가문인 윤웅렬계집안 대통령인 윤보선을 실각시키고, 허정-장면(둘 다 비귀족)의 내각의 탄생이라고하는 오히려 한국독자노선에 걸맞는 내각탄생으로 귀결될 것 같으니까?친일파새끼들이 최종적으로 군바리새끼들을 이용해서 걍 대놓고 엎어버린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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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러한 원죄를 쓴 군사정권에서 친일파들이 대거 권력을 다시 쥐는 사태가 1960년대부터 목도되기 시작하고, 그에 대한 반말이 이니까 박정희 이 개새끼가 자신의 원죄를 이승만에게 전가한 것임.

그리고, 그러한 역사적인 비정의 시도들은 기본적으로 언페어하거나 아니면 애초에 2중대 하수인새끼들이 후원받고 쓴 결과물로 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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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가장 큰 판단의 근거는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 즉 오-헝제국과도 같은 일-한제국의 존재를 조선귀족작위와 같은 것으로부터 이해하면서, 뭐 오스트리아황제가 헝가리귀족들한테 지위보장해주는 거랑 똑같은 건디 그렇게 보면 일-한제국이라고 하는 큰 그릇을 봐야하고, 그 큰 그릇으로부터 대내적으로는 친일파들을 재집권시킨다고 욕쳐먹어도 대외적으로는 일본과 다시금 한 그릇에 들어가는 것을 이승만이 거부하잖냐.

그 큰 것을 봐야한다니까. 실제로 이승만은 친일지주정당인?한민당과 일시적으로 손잡기는 했지만, 곧 손을 끊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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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의 도화선이 되었다던 이주열주검 그 개새끼는 실은 존나 꼰대인거다. 그 시절에 고졸이라고하면, 씨발 어딜가서도 갑질할 수 있는 그런 계급으로 여겨졌었지. 검은교복입은 깡패새끼들이 주변 시장상인들한테 얼마나 민폐였는지 아나??

존나 그런 개새끼들이 없어도 그런 개새끼들이 없던 새끼들이 소싯적에 교복입은 새끼들이었다.

뭐 실제 1930년대만해도 고보(=고등학교)나와서 불량써클(=일진)짓하면서, 숫제 깡패나 다름 없던 그 새끼들이 하야시 이런 새끼들 밑에 드가서 깡패, 주먹질하고, 야 이정재, 임화수 이런 새끼들도 당시 기준으로 좀 배워먹은 새끼덜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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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ko.wikipedia.org/wiki/%EC%9D%B4%EC%A0%95%EC%9E%AC_(1917%EB%85%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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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발 이정재 프로필 함 봐라. 부농집 아들출신에 학교는 무려 휘문고다. 그런 개새끼와 같은 새끼가 이주열이었던 것이여.?

씨발 그 새끼 세상바뀐 줄 모르고 어디서 갠세이치다가 울산시장상인들한테 다구리맞고 버려졌나(wasted)보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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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게 뭐다. 지금도 일어나고 있는 일 아니냐. 즉 4.19는 일진새끼들이 일으킨 정변이라고. 그래서, 지방은 좀 덜한데, 서울쪽의 고등학교나오면 씨발 인생이 피곤한거다.

내가 늘 말하잖냐.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고. 난 지금 과거말하는게 아니여. 현재를 말하는거지.

여기서, 한국의 교육정책실패는 존나 끔찍한 문제와 결부되어 있는거야. 이나라의 정체성의 차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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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지금도 어디서 일진짓하다가 뭐 대자본을 쥔 갸들 하수인노릇하다가 은퇴해도 뭐 영화베테랑에 나오는 그 운수업체사장새끼들처럼 그렇게 행사하고 사는거다.?

막말로 용역사장질하고 벤츠몰고 다니는거지. 왜냐면 지금의 사회시스템자체가 금마들이 전복해서 만든거니께.?

이해가 되냐?

그 반동혁명세력이 바로 우리가 현장에서 인지하는 꼰대새끼들인 것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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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4.19, 5.16은 모두 구독일제국의 동프로이센귀족&융커들과 같은 조선의 구체제귀족앙시엥레짐&대기업족벌의 하수인인 일진조폭새끼들과 군바리새끼들이 전위대가 되어서 나라를 전복한 사건들로써 그로써 지금의 조센의 군대내의 봉건성, 학교시스템내에서의 일진새끼들의 만연한?비리, 사학내에서의 선후배위계문화 이와 같은 것들이 모두 그 새끼덜 하수인들로부터 기인한 것이고, 그러하기 때문에 현대의 정권은 제아무리 국민적인 정서와 교감이 있더라도 그와 같은 폐단을 시정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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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씨발 윤일병 죽인새끼 걍 대충 몇 년살고 풀려나는거고, 밀양집단강간사건 그 새끼들 다 잘 살고 있는거다.

둘다 미국이었으면, 특히 후자는 씨발 16살에 깜방에 끌려가서 61살에 풀려났을꺼다. 씨발 새끼말야.?미국의 경우?20세기초만해도 그런 악당들에 대해서 가혹이상의 처우를 했던 것은 아냐?

그 악명높은 알카트라즈가 미국식 정의의 상징이었다고.

요즘같으면 뭐 씨발 이어도에 죄다 보내서, 이어도 간척사업 앵벌이로 시키면 되긋다. 뭐 그러다가 파도에 쓸려가면 걍 뒈지는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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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존나게 뿌리깊게 경찰은 일진을 처벌하지 않는다는 관행이 있는거다. 씨발 그래서 넌 쳐맞고, 강도짓이 분명한 빵셔짓 당해도 어디가서 신고도 못하는겨. 미국같으면 돈을 실제 뺐겼는데도, 교실현장에의 위계확립을 통한 지속적인 협박과 폭행으로 신고자체를 못하게끔 훼방을 놨다 그러면 씨발 걍 바로 범단수괴, 조직범죄및 폭력사주로?간주해서 같은 폭력을 저질러도 1급형으로 씨발 인생개좃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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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내에서 일어나는 내림빵폭력역시 법대로 하면 폭력사주로써 단지 지시만 한 병장새끼가 개독박쓸 수도 있고, 심지어는 그와 관련한 지시를 '요즘 부대군기가 안 좋은거 같다'정도의 의사로써 간접적으로 의사표시를 했다하더라도 모두 폭력사주로 간주되어서 장교새끼들도 죄다 영창앤 강제전역 혹은 진급누락정도가 된다.

그런데, 적반하장으로는 이나라 군은 아주 합법적으로 관심사병을 지정을 할 수 있어? ㅋㅋㅋㅋㅋㅋ

존나 웃긴 나라지. 넌지시 이름을 거론하는?폭력사주는 미국식대로라면 불법이어야하는데 불법이 아님에 더해서, 관심사병지정은 합법이라는 좃같은 나라야. 걍 대놓고 이름을 거론할 수 있는거지.

그게 모두 갸들이 역사적인 승자라서 그렇다는거다.?적어도 그러한 프로세스들이 도출될 수 밖에 없었던 사회변화가 1960년대에 있었다는 것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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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본다면 뭐 씨발 교육현장의 실패를 단순히 대입전형정책과 결부시키려는 사고가 얼마나 제한적인 접근법인지 알겠냐?

혹은 눈가리고 아웅하는 병영내 악습근절시도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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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엽시인이 말했듯이 껍데기는 가라는거다. 그 이주열때에 고보나오고, 이정재 이런 새끼들이 본고사 잘 봐서 서울대 드갔으면, 예의 그 경기고-서울대라인같은 꼰대들의 상징과도 같은 진골코스가 되는거고, 본고사 실패해서 걍 깡패된거다.

뭐 그래서 강남에 성매매업소 존나게 많은데, 진짜 단속은 절대 안 이루어지고, 강남은 강북을 성적으로 착취하는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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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는 뭐다? 경찰이랑 시공무원이랑 조폭이랑 죄다 한통속 선후배사이인데, 될게 되긋냐?

되려 갸들이랑 룸떡으로 ㅋㄷㅋㄷ 이러면서 강북년 가스나 씨발 약주입해서 개꽐라만들고 보지씹창내면서 역시나 빵셔개새끼들은 이렇게 털어줘야 되. 아비로 털고, 딸년도 털고, 주기적으로 털어줘야지 씨발 기어오르지를 않는다니까. 이러면서 고삐리때부터 서로 재벌3세?물주돈으로?일진놀이 하던 그 새끼들이 정신승리하는 그게 한국이라는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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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바로 계급화되었을 때, 강남계급 무조건 기호1번 개새끼들이라는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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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육헬윤회
    15.10.26
    아, 씨발 존나 신선하다. 존나 전복적인 관점이다.
    625 직전에 농지개혁할 때 땅 빼앗긴 니 말대로 재향지주 귀족새끼들한테 사학 하나씩 물려줘서 달랬다고 알고 있는데,
    니가 제시한 틀을 보니 존나 그럴싸 하다.

    질문 두개만 하자.
    1. 유럽 놈들이 15세기 인도에서 본 건 북인도식 카스트냐 남인도식 카스트냐? 그 때 이미 도시화가 진행 된 거냐?
    2. 이승만이는 특별히 사람들을 많이 죽였잖냐? 전쟁을 제외하고서라도. 그건 니가 말한 탈 일-한 제국 성향에 맞추자면 어떻게 해석해야 하냐? 이승만이 국제정세에서 엇나간 건 어떤 지향성 보다는 그냥 정신이상, 혹는 세상 물정 몰라서라고 판단하는 게 더 합리적이지 않나?
  • John
    15.10.26
    1. 정확하게는 18세기가 되겄다. 인도에 처음 들어간 것은 16세기의 포르투갈이다. 그러므로, 16세기부터 인도는 도시화와 근대화가 일어났다고 봐야한다.
    그러다가, 포르투갈은 17세기에 스페인지배와 내부항쟁때문에 해외에 신경 쓸 여력이 없었고, 18세기에 영국이 인도에 들어가는데 북인도식 카스트와 남인도식 카스트라는 것은 이 때에 영국인에 의해서 보고된 것이여.
    그런데,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냐면, 우즈베키스탄계 북방계정복집단이 남하해서 무굴제국을 성립시킨다. 그래서, 18세기에 영국인들이 당도했을 때는 북부에는 북방계지배계급통치와 근대화가 결부된 카스트형태가 있고, 여전히 농경이 대세인 낙후된 남부에는 기사와도 같은 보호계급인 크샤트리아와 농노간의 남부식 카스트가 있더라는거야.

    인도의 도시화라는 것보다는 그렇게 18세기에 인도의 현상들이 영국인들에게 관찰되고 나서, 19세기가 되면 기번등의 역사가들은 19세기에는 청조와 영국의 교역이 활발해지면서 관찰된 현상등에 입각해서 이러한 결론을 내리게 되는데, 인도나 중국, 그리고 내 생각에는 한국등에서는 북방계용병집단에 의한 정복이 상시적어서 그들에 의한 지배체제로써의 despotism에 입각한 전제적 지배체제가 뿌리깊게 용입되어 있더란거지. 카스트또한 그러한 것의 결과물이고, 중국의 사대부라는 것도 대체적으로는 화북지역에서 한족과 결합한 이민족의 혼혈들이 전제주의에서 제시한 타이틀이나 관직등에 근거해서 족벌을 형성시킨 것에 기인한다.

    그리고, 중국의 화폐제는 명대말에 이미 일조편법(시행시기는 16세기말)으로 모든 세금을 돈으로 내는 제도가 정착되었고, 이미 인도보다 더 극동인 명대에 이미 중국은 어느정도는 도시화되어 있었다. 자 이 때, 일조편법의 과세기준인 은화가 서양세력에 의해서 일본이나 신대륙에서 날라지는 것임을 이해하자.
    인도는 명보다 빨랐고, 20세기가 될 때까지 인도, 중국 모두다 도시화되어 있는 지역은 유럽식의 유려한 도시가 존재하는 반면, 농촌수준은 20세기중반까지도 청대말인 양극사회였다.
    그런데, 다시 그 것이 인도의 경우 북부가 대체적으로 진보되어 있었고, 남부는 낙후되어 있더란거다.
    그리고, 여기서 인도사회 2천년의 신분제라고 하는 카스트제도의 양상은 실은 시대적인 조류를 잘 반영하는 신분제라는 것이지.
    뭐 남부의 농촌에서는 그 의미는 찬드라굽타(BC 4세기인물)의 정복때나 빅토리아여왕치하때나 그게 그거였겠지만.


    2. 이승만자체가 탈일한제국적인 사고가 있었다고 보기는 힘들지. 애초에 일한제국이라는 용어자체가 내가 이제서야 만들낸 것데 그러한 개념이 있었냐?
    당시에는 반일이라고 봤었고, 그런데 반일이라기보다는 이승만정권하에서의 그 것은 탈일에 가깝지. 그 것을 일한제국이라는 용어를 통해서 내가 말하려고 하는 것이고.
    그런데, 이승만의 탈일은 뭐 이 것은 청와대내비사들을 알지못하는 이상 가정에 불과한 것인데, 일단 표면적으로는 이승만은 철학을 가진 탈일을 했다기 보다는 포퓰리스트로써 전후사회한국내에서 팽배한 반일(=실지로는 탈일)정서를 받아들여서 그 것을 외교정책면에서 공식화했다 그런 정도로 이해하는게 타당할 거 같다.

    그렇게 본다면 이승만에게 친일파라고 하는 것은 과도한 비판이고, 실제 이승만집권당대에는 이승만이 친일파라고 하는 관점은 미약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배계급이 친일파라는 말이 본격적으로 나온 것은 3공화국의 박정희, 윤보선대선때부터였고, 그런데, 그 시점부터 이승만을 친일파등용의 원흉으로 지목하는 논거가 판을 친 것으로 알고 있고, 그 것에는 군바리새끼들과 안기부새끼들의 물타기작업이었을 가능성을 열어둬야한다.
    즉 애초에 박정희 지가 꿀리니까 죽은 이승만 물귀신한겨.

    전에도 피력한바인데, 한국의 헌법적 법통이 4.19정신에 귀결한다면, 이승만은 이나라의 국부가 아니라 대한제국과 일제강점기와 4.19혁명이후 신공화국사이에 존재한 별도의 국가의 수장이 되는거지.

    그거를 자이레와 콩고로 말하렬 했던거고.
    그런데 그 것은 그만큼 이승만이 친일파와 관계가 원활하지 못했다는 것도 되지 않냐 싶다. 애초에 일본과의 교류자체를 닫고 있는데, 불만이 얼마나 컸겠냐고.

    나아가서 한국의 반일정서라는 것도 이승만정권하에서 실지로 존재한 탈일정책하에서 형성된 인지로써 일한제국내에서 일어난 전쟁을 전적으로 일본인들의 책임으로 보는 관점과 탈일이 아닌 친일의 관점에서 일한제국의 일원으로써 중국과 미국과의 전쟁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사람들이 후일 그들의 정치적 입지와 도덕적 우위를 위해서 주장하는 반일 이렇게 두가지로 나눠서 생각해야 된다.
  • John
    15.10.26

    아 글고 50년대의 신생국가의 대세는 자원민족주의같은 반제운동이 대세였고, 이승만의 정책이 당대기준으로 국제정세에 엇나갔다고 볼 수 없다.
    그렇게 보는 사람들은 90년대의 신자유주의득세이후의 관변학자들이겠지.

  • 육헬윤회
    15.10.26
    댓글들 존나 땡큐. 공부 좀 해 볼게.
  • 아프니까 헬조선이다
    15.10.26
    권력 로비 정 인맥으로 법이랑 도덕따위는 무시하면서 유지되온 나라다 기대할게있나
    헬조선 권력자들과 금수저들의 낙하산 짜고치기 덮으려고 퍼뜨리는 되도않되는 기사들
    그새끼들의 새끼들이 태어나서 좋은부모랑 부모인맥을 가진 노력밖에 안한 새끼들이 노오오력은 해봤니 이러는 좆같은나라
  • 일단 답글을 달아 주셔셔 감사하구요^^, 분석이?대부분 타당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제 생각하고는 좀 다른 부분이 조금 있네요.

    일단 비슷하게 생각한 부분에 대해 말하자면, 구한말 쥬인님계보가 일제합병을 통해 근대계급을 형성해?일종의 앙시엥레짐을 형성하여 오늘날까지 내려오며 노비들을 착취하고 있다고 본 부분이에요.

    이러한 사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일제의 조선정책을 알아야하는데, 일제의 조선합병정책은 다른 지역을 합병할 때랑 매우 달랐다는사실이지요.

    그 예로 들 수 있는건 많은데...
    먼저 조선귀족, 왕공족제도를 먼저 그 예로 들 수있고.
    두번째로는 당시 일본제국의 무역 정책이며, 세번째로는 조선지역의 상공업 진흥과, 1946년에 계획되었던 조선인에 다한 제한적인 투표권 부여 계획이었죠.

    먼저 조선귀족 ,왕공족제도는 구한말 쥬인님들중 일부에게 귀족작위를 줌으로서 일제 지배계급으로 편입하기 위한 수단이었고, 왕공족제도의 경우 조선왕족에게 일제 황족에 준한 대우를 해 주기 위해 설립된 제도지요. 이를 통해 조선의 구 지배충들을 일본의 근대계급사회에 편입하였어요.

    일제의 경제 정책의 경우,?당시 만철 등 일본제국의 경제기관에 관련된 서적들을 확인해보면, 일제시대때 조선 식민지는 본토로 취급되어 관세를 물지 않고 일본열도로 물건을 수출할 수 있는 혜택이 있었습니다. 본국 산업정책의 영향을 받은 것은 덤으로, 만주와 같은 다른 식민지들이 외국으로 간주되나, 일본군의 통치하에 있었던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죠. 이를 볼 때 경제적 관점에서는 사실상 본토에 준한 취급을 받았다는 걸 알 수 있죠.

    2차세계대전 개전을 계획한 야마모토 이소로쿠등 당시 일본군부는, 진주만 기습 등을 통해 미국을 공격한 뒤 조기 강화를 통해 미국과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였었는데, 그 당시 일본이 강화조건으로 생각했던 안에도 조선은 절대 포기할 수 없다고 간주하기도 하였죠.

    1946년 조선인에 대한 투표권 계획은 실제조선총독부에서 계획되었던 것으로 당대 일본제국이 단계적으로 조선을 완전 병합하려고 했다는 것으로 볼 수 있죠. 사실상 당대의 일본제국은 일-한제국의 의도를 강하게 가지고 있었어요.

    1945년 패전직후 일본지배층과 연합하였었던 조선귀족 등 지배계급은, 미군정의 일본지배층 복권과 함께 상당수 복권되어 정부 통치를 맡게 되었으나.
    이들이 일선에 드러나게 되면 일제에 반발하는 노예들의 불만이 있을 터이므로 미군정은 소위 친미파이자 독립운동가로 알려진 이승만을 대통령으로 세우고 사실상 미군정 휘하에 있는 국가로 통치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한국전쟁등이 진행되면서 이승만의 정책은 미국이 의도한 것과는 다르다는 게 들어났으며 이를 제어하기 위해 미국은 상당히 공을 들여야만 하였습니다. 사실 이승만정부는 반일반공 기조를 유지하면서도 민족주의적 관점을 버리지 않았었어요.

    이승만 정부의 친일파문제의 경우 사실이나, 제 생각에는 당시 정부의 절대다수를 차지하였던 자들이 구한말부터 내려오는 구체제 지배계급인데다, 이승만도 본질을 따지고 보면 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기때문에 연정이 구성 될 수 있었다고 생각되어요. 사실 따지고보면 이승만도 구한말 지배계급 출신이죠. 구한말 지배충에서 친일파로 전향한자들과 공통분모가 상당히 많아요. 그러나 이승만의 민족주의적 관점으로 인해 내부적으로는 갈등이 상당하였던편.

    이승만(및 후속 정부)에 대한 미국의 불만 + 이승만(및 후속 정부)의 민족주의적 관점에 불만을 가지고 있던 극우친일세력이 쿠데타를 일으킨게 바로 5.16이에요. 이들은 당연히 이들과 동일계급이었던 일본 지배층과 자연스럽게 수교를 진행하였으며, 국민들을 납득시키기 위해서는 구실이 필요했으므로 6억 달러의 원조+차관을 가지고 온 것이죠.

    사실 이 돈의 상당부분은 위안부, 강제노역자 등의 보상과 생계를 위해 쓰여져야 할 돈이었으나, 박정희 등 친일지배충들이 전부 삥땅치고 빼돌렸어요. 사실 오늘날 한국정부가 위안부 보상 책임이 전적으로 일본에 있다고 하는 건 지들이 돈을 삥땅쳤다는 사실을 숨기기 위한 소리. 헬조선은 알면 알수록 정신병에 걸리죠.

    이무튼?이 군사정부가 민주화 등 여러 형태의 변화를 겪고, 오늘날의 보수정부로 이어지면서 구한말부터 이어지는 지배충의 계보를 형성하고 있으며, 구한말에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이 나라의 악습이 젼혀 바뀌질 않는 까닭인거죠.

  • 이조상전들이 일본평민에게도 상전이었긴하나, 헝가리와는 좀 다른듯한. 이조상전들은 자치를 포기했다고 봐야. 능력도 의지도 없던. 아무튼 일한제국이라는 개념이 국뽕마약사관보다는 타당한.
  • 한일병합의 경우 한쪽이 식민지로 합병된것으로, 일본황실과 조선왕공족으로 2개의 왕가가 존재하였으며, 한쪽의 주권이 완전히 무시되는 형태로 국가 자체가 하나의 국가가 된 것이구요.

    오스트리아 - 헝가리 제국의 경우 동군연합으로, 오스트리아 왕실 = 헝가리 왕실이며 왕실은 하나이나, 국가자체는 2개의 독립국이었어요.
    두 개의 차이점이 명확히 드러나는 경우를 볼 수 있는 사례를 따져보면, 마리아 테레지아 여왕을 보면 알 수 있어요.

    한일병합의 경우 법률이나 여러 가지 시스템이 동일한 하나의 국가이기 때문에, 일본 천황은 별도의 절차 없이 조선의 지배권도 자연히 가지게 되었어요.

    반면에 오스트리아 황제가 헝가리 왕이 되어 헝가리를 통치하기 위해서는 헝가리 왕위계승법에 따라 별도로 왕위를 계승하여야 했으며, 그 외의?일부 지역도 법이 달라 각각?지역의 왕위계승법에 따라야 했어요.
    당시 신성로마제국의?경우 살리카법을 따랐기 때문에, 여성은 황제가?될 수 없었어요. 따라서 오스트리아 황위계승권자인 마리아 테레지아는 신성로마제국의 여제는?될 수 없었지요. 대신 여제의 남편이 신성로마제국 황제?자리에 올랐었습니다.

  • 이조상전들은 자치를 포기했다고 봐야. 능력도 의지도 없던.
  • 사르나뜨
    15.10.27
    와 님 쫌 짱임. 진짜 내공 쩌심. 시바 도대체 얼매나 공부하신거임? 저번에 쓴글 보니 30대 내또래쯤되보이던데 나느 명함도 못내밀것네. 님 독서량 수준이 얼마이심? 지적능력 함양할만한 도구로서 추천할만한 책같은것은 없으심? 몸은 탈조선 안되니께 마음이라도 잠깐씩 탈조선해보게 ㅋ
  • 아 욕좀 쓰지마라 .새키야
  • 질롯
    15.10.27
    확실히 많이 아시는건 누가 보아도 알겠는데, 역사학과 출신인 저로서는 (뭐 역사공부는 열심히 안했지만) 말 그대로 생전 처음 보는 단어와 개념들이 난무하외다. 좀 온건하게 평해보자면, "기본적으로 틀린 생각은 아닌데, 좀 너무 과하게 나갔다" 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일제가 조선을 완전병합하려고 했다는 사실만으로 일제시기 - 우리에겐 '일제강점기'이지만 저들에게는 '대일본제국' 시기 - 를 '일한제국'으로 네이밍하는건 좀... 과하지 않을까요? 조선귀족들은 리아트리스님의 말처럼 '편입'되었다 정도로 말하는게 적절하겠지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 대한 내용도 리아트리스님이 잘 설명해주셨네요. 아무튼, 무엇보다도 지들이 아니라는데~

    이승만의 인생사가 그러하듯, 우리나라 또한 마찬가지였던게, 미개한반도미개한망국미개한인민해방전선 님의 말이 정답인듯 싶어요. "이조상전들은 자치를 포기했다고 봐야. 능력도 의지도 없던." 그렇기 때문에 한일합방이 스무스하게 진행되었고, 일제도 뭐 딱히 심하게 할 필요가 없었겠지요. 하지만 그건 우리를 '일한제국'의 동등한 구성원으로 인정해 주었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 수뇌부 자신이 자치를 포기했거든요. 구한말 지배계급이든, 이승만이든, 그저 자기들의 권력과 부귀영화만 지속되면 만사 O.K.니까. 일본은 그렇기때문에 일-한 연합 제국이 아니라 우리를 완전한 '일본'의 일부로 만들려는 계획에 있어서 지배계급의 별다른 저항을 받지 않았던 것이구요.

    이승만 정권과 박정희 정권에 대한 분석도 전체적으로는 동의하는 바이지만, 이승만에게 너무 면죄부를 주시는 듯... 헬반도 5천년사에서 어떤 놈이 가장 나쁜 놈이냐라고 한다면 단연 북괴돼지 김일성이지만, 해방 후 남한에서 가장 나쁜놈을 뽑는다면..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세 놈 중 (츠키야마 악귀히로는 동급? 한단계 아래?) 누구일지 전 아직도 모르겠네요. 이승만은, 그의 모든 악행들에 더불어, 이 주제에 관련된 것으로만 말한다면, 친일파 청산을 하지 않았고, 오히려 반민특위를 해체했습니다. 그게 이승만 개인의 의지였는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봅니다. 모든 자리에는 그에 상응하는 책임이 주어지는 것이고,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그 책임을 완수하지 못했다면, 오히려 역행하고 망쳐놓았다면, 욕을 쳐먹어야죠. 애초에 그 자리에 앉지를 말아야죠.

    조금 더 설명해본다면, 아무리 구한말-대한제국-일제강점기-해방후 이승만정권-박정희정권으로 이어지는 라인이 실은 그나물그밥이라고 해도, 어째튼 해방후 친일파숙청을 형식적으로라도 반드시 이루어졌어야 했는데, 그 모든 친일파들이 고스란히 살아남아 오히려 일제시대보다도 더 성장(자기들 위의 일본인 상관들의 자리가 몽땅 비었으니까!)하도록 만든 데 있어서 이승만 정권과 그 개인의 책임을 결코 면제해줄 수 없다라고 말하는게 맞지 않을까 합니다. 다만 위에 언급했던대로 이승만 정권과 박정희 정권에 대한 설명은 기본적으로 옳습니다. 그러니까 박정희 정권은 이승만 정권보다도 더욱 극렬히 친일적이었다라고 말하면 충분하지 않을까 합니다.

    사실 해방이 되자마자 모든 친일파들이 1) '이제는 우리 세상이 왔다'라고 기뻐 외쳤겠습니까, 2) '아 이제 X됐구나' 라고 탄식햇겠습니까. 해방 직후에는 일단 살아남는게 목표였지요. 하지만, 곧 모든 친일파들이 1) 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이승만 정권 하에서 말이죠. 세부적인 사정이 어떻게 전개되든 이승만 정권과 박정희 정권 모두 친일정권입니다. 다만 이승만 때는 우선 살아남기 -> 6.25와 전후 원조경제로 절대적인 미국 영향하에서 이승만 개인의 장기집권과 그로 인한 국내문제등이 있었고, 박정희 때는 보다 노골적이고 격렬하게 대놓고 친일을 한 것일 따름이겠지요. 어째튼, 출신이야 이승만은 친미파고 박정희는 친일파였겠지만............. 문제는 광복 직후부터 친일파=친미파( + =반공)였기 때문에..

    이주열 열사에 관한 주장은... 음... 주장을 입증하실 근거가 더 있으신건지요? 전 뭐 아는게 없어서 조심스럽게 말하지만.. 이건 어찌보면 명예훼손 고소 각인데 ㄷㄷㄷ... 이정재와 이주열이 같은 고등학생이었다는 게 이정재=이주열 뭐 이건 좀 너무 나갔습니다. '그놈이 그놈'이라는 견지에서라면 저도 다르지 않은 생각이긴 합니다만.. 이건 확실한 근거가 없으시다면 좀 많~이 나가셨지 않알까요? 이주열이 울산시장상인들한테 '다구리'맞고 버려졌다면 최루탄도 상인들이 이주열 열사 시신에 박아넣은겁니까?? 그러니까.. 뭐, 근거가 있으시냐는거지요 그냥 추측이신거면... 정말 과하게 나가신거 아닐까요?

    이후 문단도 논리가 약합니다. 현재 헬조선의 이 엿같은 상황은 "이주열 같은" '꼰대'들의 탓으로 돌릴 수도 있겠지만, 우리나라가 계속해서 독재국가였고 권위주의적인 사회 기조를 전혀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좀더 일반적으로 설명하는게 더욱 적절하겠네요. 뭐, 그얘기가 그얘기긴 한데, 친일파가 청산되지 않아서라고 말할 수도 있고, 그보다 더 좋은 단어로 '기득권'을 사용해도 될 테고... 암튼 거기에 난데없이 이주열 열사가 끼어들어서 놀랐습니다.

    그리고, 4.19와 5.16을 같은 선상에 놓고 보는 견해...는 제가 간략히 언급했던 것처럼 다룰 수가 없겠네요. 이건 한국사의 틀을 뒤흔드는 발언임이 확실하니까요. 제 수준에서는 뭐라 말을 못하겠습니다. 분명히 님의 분석이 일리가 있음을 인정합니다만.. 음~ 뭐랄까 너무 혁명적인 발언이어서일까요? 제 생각에는 5.16은 박정희 개인의 쿠데타에 기득권이 동의한 '반동혁명'이 맞겠고, 이들이 새로운 '반동혁명'을 일으킨 이유는 '4.19와 이후의 전개가 그들의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았기 때문이겠지요? 님의 설명과 일치하는 부분이겠습니다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4.19와 5.16은 동일한 위계를 차지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로서는 4.19와 5.16은 오히려 프랑스 대혁명과 테르미도르 반동과 같은 관계로 보는게 더 적절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물론 프랑스 대혁명이 온전히 순수한 혁명이었겠습니까? 부르주아지들의 사주와 암약이 분명히 있었겠지요. 그렇지만 전체적으로는 세상을 바꾸어보자는 의지가 사람들 사이에 분명한 공감대를 형성하였습니다. 뒤에서 브루주아지들이 어떤 짓을 벌이던지, 어떤 놈들이 어떤 권력 투쟁을 벌이던지 말이죠. 열달(테르미도르) 반동은 이와는 분명히 다른 성격의 정변이었습니다. 열달반동은 기본적으로는 혁명 말기의 진흙탕 권력싸움의 연장선일 따름이었지만, 그 결과는 프랑스 혁명을 종식시키는 것이었습니다. 4.19와 5.16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아무리 개판5분전이고 뒤에서 친일파들이 별 짓을 꾸미고 했어도 어째튼 4.19는 '혁명'의 정신이 있었고, 5.16은 그것을 끝장냈다고 생각합니다. 대중...또는 민중들이요? 어쩔 수 없죠, 뒤에서 조종하는데로 움직이는 수밖에요. 그들이 진정으로 주체적이었던 때가 역사에서 과연 있었겠는가 하는 것은 또다른 토론거리로 남겨두지만, 어째튼 이들을 완전히 무시하고 역사를 논할 수는 없어요. 슬프지만.ㅠ
  • 지나가다
    15.10.31
    419도 일종의 반동혁명이었다는거..신선하네. 이승만이는 그냥 조선왕조 고종의 후예라고 스스로를 생각하는 자에 불과했다는 생각이 듦. 친일파 청산 안한 거야 자기 세력 확대를 위한 것일 뿐. 일본이 너무 좋아서 친일파를 끌어들인건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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