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조선










이 글작성자의 글을 읽으면 한국인 죄다 찢어죽여버리고 싶은 마음이 들거다.

모든게 날조이며, 한국은 일본한테 모든걸 전파받은 종족이라고 해도 모자랄판임.

 



【종이접기】
한국 : 종이문화재단에 따르면 종이접기 놀이는 삼국시대 무당들의 종이 고깔에서 볼 수 있듯이 일본보다 훨씬 오래 전 우리 선조가 즐겨 온 전통 문화다.

진 실 : 종이접기 놀이가 정확히 어느나라에서 먼저 시작됐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기록물로서 기원을 따지면 일본이 먼저다. 12세기의 시인 후지와라 기요스케(藤原清輔)가 쓴 <기요스케아손슈(清輔朝臣集)>라는 가집을 보면 '종이로 만든 개구리'라는 표현이 등장하고,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종이접기 안내서 <히덴센바즈루오리카타(秘傳千羽鶴折形)>는 1797년에 출판됐다. 반면 삼국시대 무당의 고깔에 대해서는 아무런 사료가 없다. 삼국시대 무당들의 복식마저 제대로 파악 못 하고 있는 실정인데 고깔이 종이인지 천인지, 다른 재료인지 알 길이 없다. 그저 추정일 뿐이다. 종이문화재단의 이러한 날조는 종이접기를 뜻하는 영어, 심지어 프랑스어, 독일어, 에스파냐어, 이탈리아어 등, 전세계 거의 모든 언어로 일본어 발음인 Origami(折り紙)라고 하고 있는 것에 대한 질투심(?) 때문이다. 그러면서 Origami가 아니라 Jongie jupgi로 통일해야 한다 주장하고 있다.

 

 


【오코노미야키】
한국 : 부산의 동래파전이 원조다. 이것을 일제시대(혹은 임진왜란) 때 일본 놈들이 가져갔다.

진실 : 일본인들이 즐겨먹는 철판 요리 오코노미야키(お好み焼き) 는 기원을 더듬어 올라가면 일본 다도의 아버지 센노 리큐(千利休)가 만든 후노야키(麩の焼き)다. 이 후노야키가 다른 지역으로 전파돼 변형되는 과정, 특히 1923년의 간토 대지진과 제2차세계대전으로 식량난을 겪으면서 사실상 오늘날의 형태로 자리잡게 됐다. 현재 동래파전은 동래부사가 음력 3월 3일 임금님께 진상했던 음식이라 홍보하고 있는데 그 동래부사가 누군지, 임금이 누군지는 모른다. 속된 말로 '카더라'다. 부산시에서 인정한 원조 가게인 동래할매파전은 역사가 대략 80년 정도다. 1930년대에 창업했다. 그리고 마지막 동래부사를 지낸 정인학은 1895년까지 재임했다. 따라서 창업자의 할머니나 어머니까지 포함해 길게 잡아야 19세기 중후반이다. 임진왜란 기원설도 말이 안 되는 게 센노 리큐는 왜란 발발 전인 1591년에 사망했다. 덧붙여 조선시대 때 부산에서 한성까지 파발마로 미친듯이 달려도 꼬박 나흘이나 걸렸다. 파전이 뭐 그리 대단한 음식이라고 나흘 이상이나 걸리면서까지 진상했을지 의문이다.

 

 


【왕인】
한국 : 미개한 일본이 문화를 일깨울 수 있었던 데에는 백제 사람인 왕인 박사가 문물을 전파해 준 덕이다.

진 실 : 왕인은 한국과 중국의 사료에 전혀 언급되지 않는 인물이며 일본의 사서인 <고지키(古事記)>와 <니혼쇼키(日本書紀)> 등에서만 언급된다. 그런데 한국인들은 위 두 서적을 판타지 소설이라 비하하고 사료로서 가치도 없는 쓰레기 취급할 때는 언제고 왕인에 대해서는 실존 인물인 것 마냥 자랑스러워 한다. 어쨌든 왕인이 백제인이라는 증거는 없다. 기록에 따르면 중국인으로 여겨진다. 고로 전남 영암의 왕인 박사 유적지는 전부 파렴치한 날조 거짓 상술이다. 또 왕인이 일본으로 갖고 온 문물이래 봐야 <천자문>과 <논어>라는 책인데 웃기게도 <천자문>은 왕인이 일본으로 왔다고 여겨지는 시기로부터 약 200년 후에나 만들어진 책이다. 또 우리나라 교과서를 비롯해 영암군의 왕인 박사 유적지의 소개문을 보면 위의 책 외에도 기술 및 공예 전수, 가요 창시, 황실 스승, 정치 고문 등 다방면에서 일본인들을 계몽시켜 성인(聖人)으로 추방 받았으며 심지어 아스카 문화의 창시자가 됐다고 설명하고 있지만 앞서 말했듯이 일본의 사료에는 천자문과 논어라는 책을 전해 준 것 말고 다른 내용은 일절 없다. 이건 마치 철수하고 영희가 손잡고 갔더라가 다음날 철수와 영희가 쌍둥이를 낳고 동거하고 있더라로 둔갑한 수준이다.

 

 

 


【해동검도와 검도】
한국 : 해동검도는 고국원왕 2년 설봉스님으로부터 무예를 사사 받은 사무랑이라는 고구려 무사 집단이 쓰던 검법이 기원이다. 일본 쪽바리들의 검법인 검도는 친일파 새끼들이 만든 것으로 정통성이 없다.

진 실 : 해동검도는 무술인 나한일과 김정호가 1980년대 초에 창설했는데 후에 이 두 사람이 법정에서 이권 다툼을 벌일 때 고구려 사무랑이 사용했다던 검술은 사실 일본, 그것도 제2차세계대전 당시 군인들에게 검술을 가르쳤던 나카무라 다이사부로(中村泰三郎) 및 기타 일본 육군의 군도술, 혹은 그것의 영향을 받고 난립했던 60~70년대의 잡다한 한국 검술들을 보고 베낀 것임이 낱낱이 드러난다. 그러면서 대한검도회를 일본 쪽바리라며 비하하고 욕했다. 대한검도회를 중심으로 하는 한국의 검도는 일제시대나 해방 후 일본의 검도를 배운 이들이 도입한 무술이다. 그런데 여기서 또 웃긴 게 해 동검도의 날선 비판에 자신들의 치부(일본의 것)가 공개적으로 드러나게 되자 80년대 이후 본래 일본의 기술이나 예법, 호구 등을 은근슬쩍 검도에 맞지도 않는 <무예도보통지>에 수록된 본국검법 등을 끌어다가 덧칠하는 짓을 벌이고 있다. 그러면서 어느덧 대한검도회의 검도는 일본의 검도가 아니라 본국검법, 더 나아가서는 화랑의 검법으로 둔갑해 있는 실정이다. 본국검법이니 화랑이니 전통이니 운운하기 전에, 일본이 중심이 된 국제검도연맹이나 탈퇴하는 게 먼저가 아닐까 싶다. 또 대한검도회는 1896년 경무청이 도입한 검도를 현대 검도의 효시로 보고 있는데 이 주장의 근거는 다름 아니라 <조선왕조실록>에 나온, 1895년 경무청에서 일하는 순검(巡檢, 오늘날의 형사)이 격검 기구 구입에 319원을 썼다는 기록이다. 대체 격검 기구를 사는 것과 현대 검도의 효시가 어떻게 연결되는지 이해가 안 간다.

 

 


【태권도】
한국 : 대한태권도협회(KTA)와 세계태권도연맹(WTF)은 삼국시대에 택견, 수박이라 불리우던 무술이 오늘날 태권도의 기원이며 특히 백제의 무술은 일본으로 전파돼 일본 무술의 기원이 됐다 설명하고 있다.

진 실 : 택견과 수박은 오늘날 그 형태를 알아볼 수 없다. 특히 발음이 비슷해서 종종 오해를 사고는 하지만 오늘날의 자세나 형태로 알 수 있듯이 택견과 태권도는 전혀 다른 무술이다. 택견인들은 이러한 태권도인들의 후안무치함을 맹렬히 비난하고 있다. 태권도를 처음 전파한 이들은 모두 일제시대, 혹은 해방 후 가라테나 쿵푸 도장에서 무술을 배웠다. 이들 모두 한결 같이 택견을 배웠다고 주장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택견과 비슷한 동작은 전혀 찾아 볼 수 없고 오히려 태권도의 동작은 물론 품새, 승단 제도 등은 가라테와 흡사하다.

 

 


【스모】
한 국 : <환단고기>까지 들먹이며 씨름의 역사를 설명하는 대한씨름협회에 따르면 백제의 씨름 방식이 일본으로 전파됐다는 것이 한일의 일반적 학설이라 설명하고 있다. 직접 언급은 안 했지만 일본의 스모는 백제 씨름이 원조라는 것이다.

진실 : 일본의 스모는 그 마을이나 지방에서 가장 힘세고 덩치 큰 남자를 뽑아 신들 앞에서 힘을 과시함으로써 감사와 예를 올리는 일종의 종교 의식이 기원이다. 스모(相撲)라는 단어는 최소 469년부터 쓰이고 있었고, 두 장사의 힘겨루기를 묘사하는 단어는 더 멀리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또 대한씨름협회는 642년 백제의 사신 앞에서 스모를 한 것이 백제 씨름이 일본에 전해진 증거인 것 마냥 써 놨지만 상식적으로 외국에서 귀한 손님이 오면 그 나라에서는 자신들이 가진 전통의 것, 고유한 것을 보여주려고 애를 쓴다. 다시 말해 미국 대통령이 우리나라를 방문하면 국악과 전통춤을 보여주지, 힙합과 비보잉을 보여주지 않는다는 말이다. 백제 사신 앞에서 스모를 보였다면 그건 스모가 타국에 자랑스럽게 내보일만한 국기(國技)였기 때문일 것이다. 또 일반적 학설 운운했지만 백제의 씨름이나 무술이 일본으로 전래됐다는 증거는 한중일의 사료 어디에도 없다.

 

 


【닌자】
한 국 : 영화 <닌자어쌔신>의 주역을 맡은 가수 겸 배우 비는 미국의 온라인 매체와 가진 인터뷰에서 극중 주인공 라이조(Raizo)는 일본 닌자가 아니라 국제적인 동양인 고아 같은 캐릭터, 한국도 닌자 문화가 있는데 일본과 달리 무예의 한 분파 같은 존재라고 발언했다.

진실 : 어처구니가 없을 뿐이다.

 

 


【일본의 무술】
한국 : 부족시대부터 시작된 한민족의 무술은 고구려, 신라, 백제가 대립하는 삼국시대에 절정을 맞게 된다. 그중 백제는 미개한 일본에 문물을 많이 전해 주면서 무술도 같이 전수해 오늘날 일본 무술의 기원이 됐다.

진 실 : 당시 동아시아에는 한국, 일본 뿐만 아니라 중국도 있었다. 그리고 한국의 무술인들은 한국 무술이 모두 자생했다고 주장하는 반면 일본 무술은 모두 한국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일본에서는 일본 무술이 자생하면 안 되는 이유라도 있을까? 오히려 섬이라는 지형 특성 때문에 더욱더 고유성을 갖기 쉬울 텐데. 반대로 한국은 중국과 붙어 있어서 과연 자생한 문화인지 의문이다. 삼국시대 무술 → 일본에 전파 → 일제시대 때 일본 무술이 한국으로 전파 → 고로 일본 무술=한국 무술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오늘날 대부분 무술인들의 논리다. 그러면서 한결 같이 하는 말이 일제시대 때 일본 놈들의 문화 말살 정책 때문에 택견과 같은 전통 무술의 명맥이 끊겼다고 주장한다. 사실일까?


-동아일보. 1928.07.03

 

-동아일보. 1929.01.01

 

 

-동아일보. 1930.02.26

 

-동아일보. 1930.04.03

이 를 보면 알 수 있는 것이 1930년대까지도 택견은 고유의 무술이자 놀이문화로서 잘 전승되고 있었고 인기 운동 중 하나였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체계화되고 세련된 일본의 최신 무술 등에 밀려 젊은이들로부터 서서히 인기를 잃어갔다. 그리고 택견인들이나 여타 무술인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정말 택견이 문화 말살 정책으로 사라졌다면 씨름도 사라졌어야 타당할 것이다. 하지만 씨름은 지금도 온전히 잘 남아 있다. 근대화, 현대화 기회를 놓쳐버린 자신들의 어리석음에 대한 반성이 먼저가 아닐까 싶다.

 

 


【사무라이】
한국 : 일본어로 무사를 뜻하는 사무라이는 순우리말 싸울아비에서, 또는 사무랑에서 유래했다.

진 실 : 고구려 16대 고국원왕 2년 백두산의 설봉선인이 청장년들을 모아 해동검도를 가르쳤는데 이들 중 특히 뛰어난 이를 사무랑(士武郞)이라고 불렀다. 사무랑은 신라의 화랑도보다 훨씬 이전인 미천왕 대에 국가 공인 무사 집단으로 인정을 받게 되며 훗날 광개토대왕의 대륙 정벌, 살수대첩, 안시성 방어전 등의 전투에서도 크게 활약했는데 그중 몇몇 사무랑이 일본으로 건너가 사무라이의 어원이 됐다... 앞서 말했듯이 이건 해동검도 측에서 지어낸 새빨간 거짓말이다. 한편 싸울아비는 삼국시대 때 무사를 뜻하는 순우리말이며 백제인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무술을 전해준 것이 현재의 사무라이라고 가끔 언론 매체 등에서 언급되기도 하고, 또 국어사전에도 등재된 덕에 널리 신뢰를 받고 있지만 이것 역시 새빨간 거짓말이다.

보다시피 배화여고의 교사가 60년대 이전에 창작해 놓은 단어다. 사료에서는 위 단어를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다도】
한국 : 한국은 신라시대 때부터 차를 즐겨 마셨다. 일본의 차와 다도는 바로 신라시대의 문화로부터 전래됐다.

진 실 : 일본이 차를 마시기 시작한 것은 805년 당나라로 유학을 다녀 온 승려 사이초(最澄)가 차 종자를 갖고 온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비슷한 시기 차에 대한 여러 지식을 써놓은 <다경>이라는 당나라의 책이 수입되면서 불교를 중심으로 차 마시는 관습과 예절이 전파됐다. 시간이 많이 흘러 이를 하나의 의식, 하나의 체계, 하나의 교양, 하나의 심신수양법으로 체계화시킨 이가 앞선 오코노미야키에서도 언급한 센노 리큐다. 한국도 선덕여왕 이후 불교를 중심으로 다례라는 차 문화가 널리 전파되기는 했으나 일본과 같이 공통된 체계를 따르는 형식으로 통일된 적은 없었다. 그리고 조선시대 때 숭유억불 정책 때문에 많은 불교 문화가 단절되거나 쇠퇴했는데 다례 역시 마찬가지다. 오늘날 명절의 다른 말로 많이 쓰이는 차례(茶禮)라는 말이 바로 이 다례에서 유래했다. 불교에서 부처님께 차를 공양하는 의식인 차례(다례)가 언제부터인지 조상님들께 절하고 기름진 고기 먹는 날로 변질된 것이다. 또 일본과 중국에서는 평민들도 차를 즐겨마셨다는 기록이 풍부한 반면 한국에는 없다. 왕족, 귀족, 양반, 승려 말고는 즐겨마셨다는 기록이 전무하다. 전체 인구의 10%도 안 되는 이들이 즐긴 음료를 과연 전통 문화에 포함시킬 수 있을는지... 하긴 오늘날 한국인들 중에 자기 조상님이 천민, 평민이라는 이는 하나도 없으니까 어쩌면 양반 문화는 한국인 전체의 전통 문화일지도. 나머지 90%는 어디 갔지? 현재 한국에서 다도, 또는 다례랍시고 학원이나 문화원, 체험장에서 가르치는 예법들은 대부분 1970년대 이귀례 여사가 정립해 놓은 것들이다. 

 




【소바】
한국 : 조선의 승려인 원진이 일본의 도다이사에 방문해 밀가루와 메밀을 2대8로 혼합하는 법을 가르쳐 주고 소바 제조법을 전수해 주었다.

진 실 : 우선 이 주장이 최초 언급된 자료는 일본의 음식 전문가이자 수필가인 모토야마 데키슈(本山荻舟)의 사후 생전의 글을 정리해 1958년에 편찬한 <음식사전>이다. '一説には江戸の初期に朝鮮の僧元珍が南都東大寺に来て、ツナギに小麦粉を入れることを教えた(일설에는 에도 초기에 조선의 승려 원진이 난토의 도다이사에 와서 메밀을 찰지게 할 때 밀가루 넣은 법을 가르쳤다)'. 출처 같은 것은 없다. '일설에는~'이라는 문장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냥 카더라다. 우리나라는 일본 측에서 한국과 관련된 역사적 사실에 대해 주장을 하면 이를 검증하기 위해 노력한다. 하면 이것도 검증할 필요가 있지 않겠는가. 에도 초기면 1600년대 초다. 즉 임진왜란이 끝난 직후다. 이 당시 일본을 간 승려로는 사명대사가 유명하다. 불교를 억압하던 조선 측에서 사명대사를 보낸 이유는 일본이 불교를 숭상하는 국가이다보니 이를 이용해 왜란 당시 납치된 조선인들을 데려오기 위함이다. 따라서 만일 바다를 건넌 승려가 있다면 그는 조선에서도 유명한 고승이어야 할 텐데 한일 양쪽의 사료에 원진(元珍)이라는 이름은 없다. 또 조선통신사의 행렬 중 한 명이었을 거라는 주장도 있으나 그럴 가능성 역시 없다. 왜냐면 통신사의 방문지에 도다이사가 있는 난토(나라 시의 옛 지명)는 없기 때문이다. 배를 타고 해안을 따라 오사카까지 이동한 후 다시 강을 타고 교토로 이동, 교토에서부터 에도를 갈 때 비로소 육로를 이용한다. 나라는 오사카의 옆에 있지만 교토와는 방향이 반대다. 따라서 조선의 승려가 도다이사를 방문하기란 현실적으로 어렵다. 하지만 우리나라 언론들은 '어? 일본인이 그랬단 말야?' 라며 아무런 검증 없이 엉터리 기사를 남발하고 있는 실정이다. 언제부터 일본을 그렇게 신뢰했다고. 반대로 원진이라는 일본의 승려가 조선의 불국사에 들러 잔치국수 면발 뽑는 법을 전수해줬다는 기사가 일본에서 나왔다면 어땠을까? 그래도 곧이 곧대로 믿고 기사를 썼을까?
 

 



【두부】
한국 : 한국에서 전통 두부 만드는 기업과 음식 전문가들의 말에 따르면 일본의 두부는 한국에서 유래했다. 임진왜란 때 왜놈들이 끌고간 조선인들 중 박호인이라는 두부 장인이 있었는데 그가 전수해 준 두부가 현재 일본의 두부다.

진 실 : 일본의 사료에 두부라는 이름이 처음 등장하는 것은 헤이안 시대 말이다. 그런데 오늘날의 한자인 豆腐(토후)가 아니라 발음만 같은 唐府(토후)라고 쓰여 있는 것으로 보아 오래 전 당나라에서 전래된 것으로 여겨진다. 한국에 두부가 언제 전래됐는지는 모르나 원조가 중국이라는 것은 누구도 부정하지 않고 있다. 두부라는 명칭이 사료에 처음 언급되는 것은 고려 말의 유학자 이색이 쓴 <목은집>에서다. 그래서 길게는 삼국시대 짧게는 고려시대 때 중국에서 전래된 것으로 얼추 추정하고 있다. 박호인이라는 이가 일본의 고치 현으로 끌려와 살면서 현지인에게 전해 준 두부라는 것은 일반 두부가 아니라 가시키리(樫豆腐)라고 부르는 도토리묵이다. 일본의 가시키리와 도토리묵은 보기만 했을 때에는 구분이 힘들 정도로 비슷하다. 하지만 EBS 다큐 프라임을 비롯해 한국에는 마치 한국산 두부처럼 겉이 단단한 두부 전체를 조선인이 전래해 준 것처럼 날조된 정보가 만연해 있다. 겉이 단단한 두부는 가타토후(堅豆腐)라고 하여 임진왜란 훨씬 전부터 존재, 아니 중국에서 전래될 때부터 원래 그렇게 단단했다. 마치 지금의 중국과 한국산 두부처럼. 고치 현에 속한 도사 시라는 곳에서 만드는 도사토후(土佐豆腐)가 이런 가타토후의 일종인데, 가시키리가 조선에서 전래된 음식이라는 것은 일본에도 잘 알려져 있지만 도사토후가 조선에서 전래된 음식이라는 말은 전혀 없다. 현재 가타토후는 튀김용으로, 일반적인 일본산 두부는 수분이 많고 연해서 그냥 먹기에 좋다. 

 

 

 

【된장과 간장】
한국 : 일본의 된장과 간장은 삼국시대 때 한국이 전수해 준 것이다.

진 실 : 한국 쪽 주장에 대한 사료 근거는 전무하다. 그냥 일본보다 먼저 만들어 먹었으니 일본에 전수해 준 것이 당연하다는 입장이다. 한국 쪽에서 된(간)장을 전통 자생 음식이라고 주장하는 근거는 <삼국지 위지동이전>에서 고구려를 소개할 때 나오는 '藏釀(장양)'이라는 단어 때문이다. 그런데 웃긴 게 이 하나의 단어를 놓고 된간장 관련인과 전통주 관련인의 말이 서로 다르다. 된간장 관련인은 '된(간)장 담그기', 전통주 관련인은 '술빚기'로 해석하고 있다. 장양(藏釀)은 발효 식품에 대한 총칭이다. 따라서 정확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다. 현재 학계에는 대부분 술빚기로 해석하고 있다. 또 <신당서>를 보면 발해의 책성(柵城)이라는 곳에서 만드는 장(醬)이 유명하다고 언급했는데 이 역시 된장인지 간장인지 알 길이 없다. 장(醬)은 염장 발효 음식에 대한 총칭이다. 동아시아의 대두 원산지는 현재의 만주 지방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된간장 관련인들은 고구려(한국)의 자생 음식이라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고구려인들이 최초로 대두로 된(간)장을 만들어 먹었다는 것을 입증할 자료는 하나도 없다. 장(醬)이라는 단어는 기원전 춘추전국시대에 쓰여진 <주례>에서 처음 언급되며 또 만주의 대두가 중국 본토로 전래된 것도 이 시기다. 따라서 중국인이 된장을 개발했을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게 아니다. 기원전부터 염장 발효 음식을 즐겨 만들어 먹었다는 점에서 오히려 더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겠다. 일본의 염장 및 발효 음식 기원은 유물을 통해 기원전 2~3세기까지 거슬러 올라 간다. 자생인지 전래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런데도 무턱대고 한국이 원조란다.

 

 

 


【단무지】
한국 : 일본에서 다쿠안(다깡)이라고 부르는 단무지는 고구려(또는 조선)의 승려 택암이 일본으로 건너가 전수해 준 반찬이다. 이는 일본에서 지은 <고승대덕전>에도 언급된 사실이다.

진 실 : 택암(沢庵)을 일본어로 읽으면 다쿠안이다. 한국인들도 즐겨먹는 일본 음식 다쿠안은 본디 다쿠안즈케(沢庵漬け)라고 하며 에도 시대의 고승 다쿠안이 처음 만들었다 해서 '다쿠안의 절임(沢庵漬け)'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한국에서 사료 증거랍시고 언급한 <고승대덕전(高僧大德傳)>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책이다. 아마 다쿠안이 한반도에서 온 사람이라는 것을 들킨 후 분개한 일본인들이 태워버렸나 보다. 다쿠안 스님은 1573년 일본 효고 현에서 태어났으며 아버지나 조상이 한국에서 건너왔다는 증거는 없다. 그래서 어떤 인간들은 고구려가 아니라 조선시대 인물, 또 어떤 인간들은 임진왜란 때 왜군을 따라 조선을 방문한 일본 승려 등이라 주장하기도 하는데 임진왜란 당시 그는 다른 큰스님 밑에서 불경 공부를 하고 다른 절로 거처를 옮기는 등의 행적만 나올 뿐이다. 당시 조선이나 고구려에 택암이라는 스님이 있었다는 사료 역시도 없다.

 

 

 


【김과 김밥】
한 국 : 김밥 사업으로 가장 유명한 종로김밥 측의 말에 따르면 김밥이 한국 음식인지, 일본 음식인지 판단하기는 어렵지만 우리가 김을 삼국시대부터 먹었고 일본은 김을 1800년대부터 먹기 시작했으니 김밥이 우리 음식이라는 주장도 터무니 없지는 않다는 입장이다.

진 실 : 종로김밥 측은 일본의 여러 김밥류 음식(마키)들을 언급하며 한국의 김밥과 어떻게 다른지 세세히 설명하고 있지만 김 먹는 시대에 대해서는 크게 오류를 범하고 있다. 일본에서 식품으로 김에 대한 언급은 702년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다이호 율령을 실시할 때 각 지방의 조공품 목록에 김(海苔)이 있었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이 율령이 반포된 2월 6일을 김의 날로 제정하고 있다. 또 일제시대 때부터 한국의 김밥이 일본의 김밥(후토마키)과 다르다고 주장할 때 꼭 언급하는 것이 식초와 참기름이다. 한국 김밥은 참기름으로, 일본 김밥은 식초로 간을 하기 때문에 다르다는 주장이다. 과연 그럴까?

 




보 다시피 70년대까지 김밥의 밥을 간할 때 쓰는 주재료는 식초였다. 바로 일본식이다. 심지어 김밥을 자를 때에도 참기름이 아니라 식초를 쓰라고 권한다. 그러다가 70년대 말부터 식초 대신 참기름을 사용하는 조리법이 신문 등에 소개된다. 따라서 일제시대, 혹은 그 이전부터 일본의 김밥과 달리 참기름으로 밥을 간했다는 한국의 전통(?) 김밥의 존재 여부에 대해서는 의심이 들 수밖에 없다.

 

 


【도슈사이 샤라쿠】
한국 : 일본의 전설적 화가 샤라쿠는 사실 정조의 밀명을 받고 일본으로 간 김홍도다.

진 실 : 위 주장을 한 이는 이화여대를 나온 한국일보 기자 출신이자 재야사학자인 포스코 인재개발원의 이영희 교수다. 도슈샤이 샤라쿠(東洲斎写楽)는 1794년부터 1795년까지 열 달이라는 극히 짧은 기간 동안 140점 이상의 우키요에(일본의 전통 판화) 작품을 쏟아내고 소리소문 없이 사라진 인물이다. 그 정체가 누군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도 의견이 분분하다. 가부키 배우들을 모델로 한 작품이 많아 업계 관련자로 보는 설이 강하다. 1990년대 말에 <시사저널>을 통해 기고한 이 교수의 주장은 사실일까?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1794년 당시 김홍도는 충북 지역에서 현감을 지내고 있었고 특히나 그 전년에 가뭄이 심하여 구휼을 하느라 함부로 자리를 비울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더구나 민심도 제대로 수습 못하고 백성들을 모질게 다스린 탓에 원성이 자자하여 1795년 파직을 당하고 만다. 그런데 정조의 밀명을 받고 일본으로 간다? 이런 억지 때문인지 어떤 이는 김홍도가 아니라 신윤복이다! 라며 <색, 샤라쿠>라는 소설까지 쓰기도 했다.

 

 


【일본 황실】
한국 : 아키히토 천황이 자신은 백제인의 후손이라고 직접 발언했다. 고로 현재 일본의 황실과 황족들은 모두 한국인들이라고 할 수 있겠다.

진 실 : 다음은 아키히토 천황의 발언 내용이다. '私自身としては、桓武天皇の生母が百済の武寧王の子孫であると続日本紀に記されていることに韓国とのゆかりを感じています(간무 천황의 생모가 백제 무령왕의 자손이라고 쇼쿠니혼기에 쓰여 있는 고로 저 자신은 한국과의 인연을 느끼고 있습니다' 아키히토 천황이 언급한 <쇼쿠니혼기>는 일본의 사서(고시키, 니혼쇼키와 함께 판타지 소설이라 놀려대는)이며 '간무 천황(737~806)의 황태후(~790)는 성이 야마토 씨(和氏)이다. ...중략... 황태후의 선조는 백제 무령왕(462~523)의 아들 순타태자(~514)가 낳았다' 라고 쓰여 있다. 일본 천황이 이 발언을 한 때는 2002 한일 월드컵이 열리기 1년 전이다. 한국인과 일본인은 옛부터 서로 왕래하는 사이이니 화합해 월드컵을 잘 치뤄보자는 의미에서 있는 족보 없는 족보 뒤적여 사돈의 팔촌처럼 연결 고리를 만든 것이다. 별로 친하지도 않은 이가 어느날 갑자기 찾아와 우리 외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가 너랑 같은 조상 분이니 이제 우리 친하게 지내자라고 한다면 당신은 어떤 기분이 들겠는가. 그리고 무엇보다 한국은 백제 왕실의 정통을 계승하는 국가가 아니다. 마치 현재 스페인 왕가는 부르봉 왕가 혈통이니 스페인 왕족들은 프랑스인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하등 다를 바 없다.
 

 



【군대 문화】
한국 : 자기보다 나이가 어리거나 지위가 낮은 이를 군기라는 이름으로 폭행, 차별하고 괴롭히는 것은 일제시대 때 일본군들이 한국인에게 심어주고 간 잔재다.

진 실 : 고려시대 말에 창설된 최고의 국가 교육기관인 성균관을 중심으로 조선시대 말까지 전해져 내려 온 500년 역사의 유구한 전통 풍습이 있었으니, 바로 면신례(免新禮)와 허참례(許參禮)라는 것이다. 면신례와 허참례는 쉽게 말해 오늘날의 신고식이자 조직 문화이다. 선배들이 명령을 내리면 신입은 그 내용이 어떠한 것이든 절대 복종하며 따라야 한다. 이를 수행하지 못할시 가혹한 구타와 정신적 괴롭힘, 차후 조직에서의 대우, 승진, 인간 관계까지 모든 것이 박살나고 만다. 이뿐만이 아니다. 신입은 부임 초기 선배들을 위해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융숭한 식사 대접과 금전 제공을 해야만 했다. 또 군대를 다녀 온 남자라면 잘 알 테지만 신임 소위가 비록 계급은 높을지라도 상사나 원사에게 함부로 말을 놓고 명령하지 못하는 것처럼 조선시대 때도 직급이 어떻든 품계가 어떻든 해당 부서에서 오래 일한 놈이 왕이었다. 함부로 굴었다간 왕따가 돼 공기 취급을 받기 일쑤였다. 오늘날에도 대학 새내기들이 MT 때 과음으로 사망했다는 뉴스가 간혹 들리는데 조선시대에도 가혹한 신고식을 치루는 과정에서 죽은 이들이 참으로 많았다. 생각해 보라. 조선시대는 신생아 사망률도 높고 부계 사회라서 아들이 참으로 귀한 대접을 받았다. 더구나 관직에 나가거나 성균관에 들어오는 이들은 양반집 자제들이 대부분이다. 따라서 면신례와 허참례로 아들을 잃은 명문 사대부는 분에 못 이겨 임금께 여러 번 상소를 올리고 고관대작들끼리 모여 악습을 없애려고 노력도 해봤으나 죄다 허사였다. 역대 임금들도 발본색원하고자 형벌로 다스려도 보았으나 소용 없었다. 어명도 무시하고 윗대가리들이 노는데 아랫놈들이라고 가만히 있을 리가 있겠는가. 조선시대의 관직 사회 전체가 이랬다. 하물며 민간 사회는 어떠했을지 상상이 갈 것이다. 구타와 가혹한 신고식, 왕따가 일본군의 악습? 일제강점기 때 전국민이 강제 입대라도 했나? 아니면 중국, 미국이랑 싸우기 바쁜 일본군들이 조선 땅에 죽치고 앉아 있기라도 했다는 건가? 자신들 스스로가 파악하고 진단하고 반성해야 할 결점까지 그저 전가의 보도 마냥 일제 탓으로 돌리며 쉬쉬하는 작태야 말로 오늘날까지도 한국 사회에서 경직된 상하 관계, 구타, 왕따, 얼차려, 군대식 권위주의가 사라지지 않는 진짜 이유일 것이다.
 

 

 


【욱일기】
한국 : 일본 군국주의를 상징하는 욱일기는 사실 대한민국의 군기(군대용 기)를 베낀 모조품이다.

진실 :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3103101032330017002 이 링크를 보고 직접 판단하시라. 좋겠다. 욱일기의 원조가 한국이라서. 이제는 우리가 앞장서서 욱일기를 휘날려야겠군.

 

 


【기모노】
한국 : 일본의 기모노는 삼국시대에 전래된 것이다.

진 실 : 일본도 사람이 사는 관계로 그들만의 옷을 만들어 입었다. 그리고 중국과 교류를 시작하면서 크게 영향을 받았다. 7세기 일본의 관복은 수나라의 디자인과 체계를 모방했으며 8세기에는 당나라의 한푸(漢服)로부터 크게 영향을 받으면서 점차 오늘날의 독자적인 형태로 자리를 잡았다. 일본 사서에도 수당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고 버젓이 쓰여 있다. 하지만 당시 한국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다. 한국인들의 논리는 이거다. 우리 우수한 한민족이 입던 한복(韓服)도 중국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따라서 미개한 일본 놈들이 제손으로 옷을 만들어 입을리 만무하다. 삼국시대 때, 특히 백제가 많은 영향을 줬을 것이다. 고로 일본의 기모노는 한국이 원조다, 라는 식의 논리다.

 

 


【벚나무】
한국 : 경남 진해시가 주관하는 군항제에 대한 소개문을 보면 왕벚나무의 원산지는 제주도라면서 진해시에 심어진 벚나무는 왕벚나무라고 강조하고 있다.

진 실 : 일제강점기 때 일본이 진해를 군항으로 만들면서 일본인 거주 구역에 일본산 대표 벚나무 품종인 소메이요시노를 엄청나게 많이 심었다. 그러나 해방 후 반일 감정과 식민 지배에 대한 분풀이로 이들 벚나무가 거의 다 잘려 나간다. 이승만은 벚나무를 싫어했지만 새로이 정권을 잡은 박정희는 벚나무를 무척이나 좋아했는데 1962년 무렵부터 일본의 벚나무(소메이요시노)는 제주도에서 자생하는 왕벚나무가 기원이라는 뉴스가 당시의 신문 언론 등을 통해 대대적으로 보도된다.

위 뉴스는 사실 1932년 일본의 식물학자 고이즈미 겐이치(小泉源一) 가 내놓은 학설이 근거다. 이어 한국 정부는 왕벚나무를 천연기념물로 지정하고 일본으로부터 수천 그루의 소메이요시노를 사들여 진해와 제주도를 비롯 전국 각지에 다시 심는다. 이때부터 한국인들은 일본 벚나무=제주도 벚나무라 믿으며 우월감에 사로잡힌다. '일본 네놈들이 좋다며 즐기는 벚나무는 사실 우리 한국이 원산지지롱~' 한일 학계에서는 이 문제를 놓고 여러 번 격돌했다. DNA 조사 기법이 도입된 1990년대 이후 일본이 우위를 점하게 되자 공정성과 정확성을 기하고자 2007년 미국 농무부에 DNA 검사를 의뢰한 결과 일본의 소메이요시노와 제주도의 왕벚나무는 다른 종으로 결론난다. http://www.ars.usda.gov/research/publications/publications.htm?SEQ_NO_115=205306 쉽게 말해 한국인들은 일본인이 심은 일본 벚나무를 힘들여 베어내고 일본인의 엉터리 학설에 속아 다시 일본에게 돈 주고 일본 벚나무를 사서 힘들여 심는, 참으로 한심하고 어리석은 짓을 저지른 것이다. 진해에 제주산 왕벚나무라고 팻말이 걸린 녀석들, 아니 진해에 있는 벚나무 모두 일본산이다. 상식적으로 소메이요시노는 1700년대부터 인간에 의해 인위적으로 교잡돼 만들어진 관상 목적의 재배종이고 제주도의 왕벚나무는 그곳에서만 자라는 자생종(1908년 프랑스인 신부 타케(Émile Joseph Taquet)가 발견하고 1912년 독일인 식물학자 쾨네(Bernhard Adalbert Emil Koehne)가 신종이라며 학계에 공식 발표)이라 서로 섞일 일이 없다. 그런데 한국 언론과 학자들은 '에이~ 일본 놈들이 우리 벚나무가 아름다우니 훔쳐갔겠지~' '왜구 놈들이 노략질하면서 몇 그루 파갔겠지~' '자생지가 없으니 일본 게 아니지~(당연하지만 재배종이니 자생지가 있을 턱이 있나)'라며 막연한 추측으로 국민들을 속여왔다. 문제는 이게 아니다. 벚나무는 자가불화합성이라는 특성 때문에 자연에서 다른 종과 쉽게 교잡해 버리는 성질이 있다. 소메이요시노를 왕창 수입해다가 전국적으로 심어 버린 탓에 과연 현재의 왕벚나무가 1908년의 왕벚나무와 DNA상으로 얼마나 같을지 아무도 모르는 상황이다. 덧붙여 소메이요시노의 공식 학명은 Prunus yedoensis Matsum인데 여기서 yedoensis(에도엔시스)는 에도(도쿄의 옛 지명)를 가리킨다. 교잡시키고 대량으로 재배한 곳이 에도이기 때문이다. 왕벚나무도 1962년부터 2007년 이전까지는 일본 학자의 엉터리 학설을 근거 삼아 공식적으로 소메이요시노와 동일한 학명을 사용해 왔으나 DNA 검사로 별종이라 밝혀진 이후부터는 학명조차 잃게 됐다. 또 쾨네가 붙여 준 Prunus yedoensis var. nudiflora도 사용하기 어렵다. 현재 왕벚나무의 공식 학명은 없는 상태다. 이런 상황인데도 정부와 지방 단체, 학계, 언론은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고 때문에 대부분의 국민들은 일본 벚나무는 한국이 원산지라고 굳게 믿고 있다.

 

 

 

 

 

우리나라의 원조설, 기원설들을 보면 대부분 옛날 일본에 A라는 것이 있다. 그런데 당시 한국에도 A가 있거나 A와 비슷한 B라는 것이 있다. 고로 일본의 A는 한국에서 기원한 것이다, 라는 식의 논리다. 아무런 직접 증거도 없이. 그냥. 누차 얘기하지만 동아시아에는 한국과 일본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중국이라는 초강대국이 존재했다. 한국이 중국에 조공을 바치며 문물을 전수 받았듯 일본 역시도 중국에 조공을 바치며 문물을 전수 받았다. 또 일본의 권위도 없는 일부 관계자가 한 엉터리 발언을 마치 일본인 전체가 인정한 진실인양 인용해 사실을 왜곡하는 것 역시 주의해야 한다. 만일 반대의 상황이었다면 어땠을까? 여러 전문가들이 검증에 검증을 하고, 거기에 특유의 아전인수식 해석과 민족주의 사관을 첨부해 어떻게든 한국에 유리하도록 해석했을 것이다.

우 리 역사관을 보면 고대 일본과의 관계에서 문물을 전수해 준 우리나라를 마치 매우 발달된 선진 문화국처럼 포장하고 있지만 우리 문화 역시 중국으로부터 비롯된 것임을 알아야 한다. 그런데 중국인들이 이러한 점을 들먹이면 '그래도 한국은 한국 나름의 독자 문화를 일궜다'며 애써 정신 승리하는 데 반해 일본 역시 나름의 독자 문화를 일군 것에 대해서는 '역사 날조', '열등감'이라고 폄훼해 버린다. 과연 누가 누구에게 열등감을 드러내고 날조를 하는 것일까?

짜 장면을 중국의 것이라고 하면 한국인들은 크게 화를 낸다. 한복을 중국의 것이라고 하면 한국인들은 크게 화를 낸다. 한지를 중국의 것이라고 하면 한국인들은 크게 화를 낸다. 그렇다면 왜 한국인들은 일본인들에게는 정반대로 행동하는 걸까? 우리 스스로 떳떳해야 상대를 비판할 수 있고 다른 이들의 공감도 살 수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한다.

 

출처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berial666&logNo=220437382593

 






  • blazing
    16.05.19
    에휴...헬조선엔 제대로 된 검법(싸우는 법)조차 남아있지 않아요...얼마나 조상놈들이 무능하고 병신같았는지...심지어 헬조선에 국궁이 남아있는 이유는 일제강점기 시절에 일제가 국민건강유지 및 전투력 강화를 목적으로 여자들에겐 나기나타 배울것을 강조하고, 남자들에겐 검도와 유도를, 한국인들에게도 국궁을 할 것을 강조하여 교육하였기 때문에 남아있는거라고 합니다. 일본의 검술과 유도도 헬조선에 많이 남아있는 이유도 다 이때문이고 말이지요.
  • deadlock
    16.05.19
    거지 같이 사는 인갠딥단에다가 사관학 교조차 없이 무관이 되어야 하는게 조센인데.

    제대로된게 있었겠 습니까??

    애초에 검술 따위도 존제하지 않았다고 봐야 됩니다.

    그냥 단순한 수련용 교본이 풍월로 존재할 뿐인거죠.


  • 아비규환
    16.05.19
    정통성도 민족성도 정체성도 없는 나라임. 
    이런나라에서 초딩때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문화는 뭐가 있을까요? 여러분?

    하면 끽해야 불고기. 김치. 태권도. 무궁화 .

    시발 지금도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문화라고 불릴 수 있는게 뭐가있을까하고 생각해보면 도무지 떠오르지가 않는다. 케이팝도 시발 언론이 존나게 띄워주는거지 미국유럽애들이 자기들꺼 음악하두 듣다듣다 심심해서 듣는게 케이퐙인데 껄껄껄. 그냥 걸그룹 성상품화한걸 좋다고 빨아젯기는 거 보면 노답. 


  • 미친 죄센징 말살좀
    16.05.19
    블로그 넘어가보니 죄센징들 또 출처타령하면서 빼애애액 대던데 미친새끼들 ㅉㅉ

    아니 씨팔 글 안에 이미 출처가 되는 사료가 다 적어져있으니 의심하거나 반박하려면 지가 그 사료 구해다 읽으면 그만인데 그게 귀찮으니 출처 지랄하면서 글이 왜곡되었다하네
  • 부끄러운줄을 알아야하는.
  • joy
    16.05.19
  • 지나가다
    16.05.26
    부끄러운줄 알아야 하지만 역사를 조작하는 것은 어느 나라 마찬가지라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자랑할만한 문화유산이 없으면 지금부터라도 만들고 만들어지고 있는 문화유산을 잘 보존하려고 생각하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지금 자랑할 것이 없다고 한탄하지 말고 자랑할만한 것을 만들어서 후손에게 물려줄 생각을 하는 것이 더 생산적인 방향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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