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조선


육헬윤회
15.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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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5년 전부터 동갑내기 친구들이 본격적으로 결혼하기 시작했다. 첫 커플은 CC였기 때문에 그냥 해 왔듯이 이름을 불렀는데, 그 다음 커플부터 친구의 부인을 뭐라고 불러야 할 지 애매해지기 시작했다. 흔히 제수씨라고 부르는 것 같던데, 弟嫂란 말 그대로 동생의 아내라는 뜻이다. 그 반대말은 형수다. 친구 부인을 제수씨라 부른다면, 그 친구를 아랫사람으로 깔고 본다는 소리지 않는가? 한 편에서는 한국어에 가족을 칭하는 명사들이 무지무시하게 세분되어 있다고 하면서, 정작 친구의 부인을 칭하는 단어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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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 뿐만이 아니다. 한국어에는 동등한 개인 대 개인으로 타인을 부르는 방법이 없다. 오직 친구 사이에만 서로 이름이나 별명을 부르는 것이 용인된다. 이러듯 오랫동안 쌓인 신뢰를 바탕으로 하지 않는 관계, 잘 모르는 순수한 개인 사이에서 동등한 상대를 부르는 일반적인 호칭이 존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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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을 부르면 어떨까? 일단, 초면인 사람은 이름을 모른다. 일단 안면을 깐다고 해도 이름을 부르면 안 된다. 이름은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부를 때만 쓸 수 있다. 누구누구 씨 라고 뒤에 씨를 붙이면 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비꼬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특히나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부르면. 요즘에 뜨고 있는 것은 누구누구 님이라고 부르는 건데, 님이라는 호칭은 원래 90년대 중반 넷상에서 아이디나 닉 뒤에 붙였던 것이다. 이름 뒤에 붙이려는 시도는 한 번 실패했다가, 요즘 다시 부활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오프라인에서는 어색할뿐더러, “님아” 등의 용법에서 보듯이 이미 상당히 멸칭화 되었다. 여기서 어떤 경향을 볼 수 있는데, 어떤 호칭을 붙이든, 시간이 가면 열화되는 경향이다. 또 다른 한국어스피어인 북한에서는 동무라는 말이 쓰인다고 한다. 남한에서는 받아들여지기 힘들뿐더러, 통일이 되고 나면 즉시 북한 출신에 대한 스테레오타잎이 되면서 멸칭으로 열화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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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 되면 어렴풋이 알게 될 것이다. 한국어에는 존대 아니면 하대 밖에 없다. 한국어로 보는 세상에는 나보다 윗님, 나보다 아랫놈 밖에 없다. 전근대사회 어디에 신분제도가 없었겠냐만, 신분의 상하관계가 이렇게까지 노골적으로, 언어 본질적인 측면에까지 스며든 경우가 또 어디 있을까? (어쩌면 일본어?) 한국어에서는 화자와 청자 사이의 상하관계가 결정되지 않으면, 문장을 종료할 수 조차 없다! 일본어처럼 문장을 명료하게 마무리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이는 정상적인 어법으로 간주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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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한국어 대화는 사회적 권력관계를 확인하는 과정이다. 사회적 위치를 확인하는 잡업은 감정의 본질적인 부분에 직접적으로 연관되어있기 때문에, 대화를 통한 정서의 교류, 지식의 전달, 논리의 추적과 같은 언어 자체의 본질적인 부분이 쉽게 간과되거나, 정치적 의도에 따라 무시된다. 대화 안에 오고 가는 정보가 없는 것은 가능해도, 상하관계가 정해지지 않을 수는 없는 것이 한국어이다. 거짓말을 하는 것은 용인 받아도, 존대법을 실수하면 사회적으로 매장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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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한국인은 친구들 사이가 아니라면, 말하는 상황을 회피한다. 침묵은 금이다는 개소리의 참 뜻이 여기에 있는 것이라는 의심이 강하게 든다. 이런 언어의 특징이 사회를 어떻게 열화시키는지 생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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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회의가 무가치해진다. 의견의 경중이 발화자의 상하관계에 종속되는 시스템에서는, 회의라는 요식행위, 행위예술을 할 이유가 없어진다. 그냥 알파한국인의 의중을 추인하는 쇼를 하면 된다. 회의를 통해 결정된 사안이 공정한 토론을 거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 결정 사안을 이행하는 힘은 자발적 참여가 아니라 강요된 동원이 된다. 사회는 아무런 활력이 없이도 돌아는 가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이것이 좀 더 극단적으로 가면, 신격화된 지도자의 독단적인 결정을 최선의 결정이라고 믿어버리는 상황이 오게 된다. 한국어를 쓰면, 사람도 열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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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는 지식의 전달이 안 된다. 문서를 통해 전달되지 않는 지식이 있다. 많다. 그리고 그 중 상당수는 알든 모르든 고부가가치 지식이다. 낮은 지위의 사람이 높은 지위의 사람에게 배워야 할 지식에 대하여 충분히 질문할 수 있고, 한국어는 그런 문법을 지원한다. 그런데 상하의 위계가 있기 때문에 꼬치꼬치 상세한 질문으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들어가기 힘들다. 실재 고부가가치를 가진 지식은, 수준 높은 질문을 통해서만 전달이 가능하기 때문에, 한국어로는 고부가가치의 지식이 전수되기 힘들다. 전수 받는 사람이 수동적일 때 또한 마찬가지이다. 선임자의 지식전수는 강압적이고 자존심을 무시하는 방법으로 발화되기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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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는 세대간의 단절이다. 한국어로 하는 연장자와의 대화는 항상 피곤하다. 서로 대화하지 않는 사람들 사이에 인간적인 유대가 형성될 리가 없다. 그래서 비슷한 또래끼리만 대화하면서, 끼리끼리 물고 빤다. 이 간극을 파고 드는 것이, 세대론이다. 서로 대화하지 않는 양자를 이간질 시키는 것은 아주 쉽다. 한국사회에서 세대간의 단절 문제가 이렇듯 심각하게 불거진 데에는, 세대를 가로지르는 인간적 유대가 언어적 장벽에 의해 가로막혀 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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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는 지극히 비민주적인 언어이다. 상하를 나눌 뿐, 동격의 다른 것을 상정조차 하지 않는다. 꼰대들은 한국어가 양산해 낸 아주 극적인 마스터피스들이다. 한국어는 그들의 무식과 무지를 효과적으로 숨기는 데에 도움을 줄 뿐만 아니라, 그 권위에 도전하는 자들을 폐륜 프레임에 엮어 매장시키기에 최적화된 언어이다. 그 속에서 경험은 전수되지 못하고 소멸한다. 그리고 그 다음 세대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도록 강요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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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은 끔찍한 살풍경일 뿐이다. 그것은 단지 비참할 뿐이다. 사람을 비참하게 만드는 self-sustain한 구조를 지옥이 아니라 조선이라 구분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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