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조선


John
19.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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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의 미덕 중 가장 중요한 점은 열대식물 가운데 가장 뛰어는 기후 적응력을 보인다는 점이다...(중략)... [농업세계지도]에 의하면 가장 북쪽에 위치한 벼농사는 훗카이도가 아니라 북위 52도의 후마 근처로 흐르는 아무르강의 오른쪽 지류와 본류가 합류하는 지점이다.(피에르 구루, 쌀과 문명 p55)

 

800px-RiceYield.png

 

애초에 동북3성의 대부분의 지역이 쌀농사 지역으로 연한 그린색으로 색칠되어 있다.

 

Map-of-sampling-sites-dark-red-dots-across-four-typical-Chinese-rice-growing-regions.png

 

이 것은 조금 더 현대적인 중국의 내부자료인데, 아무르강과 송화강 일대가 샘플링 사이트로 지정되었다. 그 외에도 요하(랴오허)와 북경일대까지도 모조리 쌀경작이 이루어지고 있다.

 

 

 

한국사하는 개새끼덜이 가장 곡해하는 부분이 바로 이 부분이다. 그 개새끼덜은 고조선이라고 하는 한반도 중부지방에서 최초의 국가가 생겼다는 신화적인 개소리에 근거해서 만주 청동기문화를 기반으로하는 민족역사라고 할 부분을 강제로 세뇌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더 큰 메인스트림은 쌀농사가 단지 남한으로부터 북쪽으로 전해졌을 뿐이다.

 

그런데, 위의 사진에서 보듯이 정작 북한의 서부지역은 쌀농사가 대단히 안 되는 지역이므고, 함경도와 만주지역을 거의 중앙에서 가르는 만주지역에서 가장 진한 녹색으로 된 지역에서 쌀농사가 잘 되므로 남한에서 함경도지역을 거쳐서 송화강일대로 쌀농사는 전해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행 학자새끼덜은 고구려정통론에 따른 송화강일대의 부여가 더욱 정통이라는 논거를 가지고 만주청동기문화를 한국문화의 기원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그러한 논거에 따라서 고구려도 우리 역사다 이 지랄이나 하는 것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쌀농사의 전파방향으로 간주하자면 중국의 허난성일대의 위의 지도상으로도 쌀을 전혀 짓지 않는 지대가 중간에 있기 때문에 쌀농사는 중국이나 동남아로부터 해상을 통해서 한국으로 전해진 것이다. 그 것이 다시 윗지역으로 전해진 것이다.

 

그러므로 agriculure의 문화적인 종주국은 정작 남쪽에 있는 것이다. 되려 금사에서 북경의 여진계 엘리트들은 그 점을 인정하였다. 그런데 뜬금없이 단군이라는 개같은 것을 근거로 남방북방팽창론을 부인하고, 북방계의 남하론을 전개하는 것이다.

 

그리고, 고구려인들은 오늘날의 조선족과 상당히 정렬되고, 예로부터 쌀농사를 짓던 민족이다. 물론 그들의 상당수가 송화강 한국방언을 구사할 수 있다. 그러나 고구려는 처음부터 다민족국가이며, 쌀농사를 짓는 모두가 한민족에 정렬되는 것도 전혀 아니다. 후대에 20세기에 독립투사들이나 문학가들따위로부터 보고되기로는 만주족계의 지주들이 상당하다고 보고되긴 하였다.

 

요컨데 송화강 일대는 라오족, 타이족, 캄보디아인, 베트남인이 어울려 사는 메콩강과 마찬가지로 다문화이고, 특히 상당수의 남방퉁구스계들이 쌀농사를 받아들였다. 그러므로 고구려는 한국사라는 것은 개소리인 것이다. 오히려 중국의 동북공정이 옳다면 옳은 것이다.

 

송화강은 한강이나 낙동강 따위와는 상대가 되지 않는 대단히 긴 강이다. 그 강을 따라서 여러 민족이 사는 것은 그 강의 규모만큼이나 당연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송화강의 하백의 보지가 해모수를 낳았다는 것 하나라 그 강 일대가 모조리 한국사가 되어야 된다는 우물 안 개구리 새끼덜이 인서울 식민지 학자들인 것이다.

 

 

송화강의 길이가 1927킬로다. 낙동강 꼴랑 525킬로(=한강은 꼴랑 514킬로)의 4배남짓이다. 한반도 길이가 꼴랑 1178킬로밖에 안 된다고. 제발 씨발 우물 안 개새끼덜 정신이나 차려라.

 

메콩강 4350킬로미터에 비하면 반토막이지만 송화강 엄청 큰 강이다 이거다. 그걸 죄다 한민족이 쳐 먹었다고? 이거 또라이아이가 이 개새끼야.

 

6.gif

 

 

당연한 것이지만 여진족 또한 농경민족이다. 난독증 개새끼덜 때문에 이런 것까지 설명해줘야 되냐 씨발. 

 

여진족들은 요하일대에 나중에 쌀농사를 퍼뜨렸고, 후일에 12세기경에 북경일대에 쌀농사를 퍼뜨렸다. 그러므로, 중국 북부에서는 매우 성공적으로 인구적으로도 팽창할 수 있었다. 오늘날에는 만주족 아이덴티티는 북경중심 한족문화에 integrate 된 것으로 간주된다. 사실 북경의 한족이라는 것이 한어만 구사하게 된 여진족이기 때문에 그들이 기득권이 된 상황에서 북경인과 만주인의 구분은 무의미하다고도 할 수 있다.

반대로 한국계들의 의미가 송화강이 존재하는 지린시나 하얼빈 따위에 그치게 된 이유는 여진족이 먼저 가서 알박았기 때문이다. 결코 고구려의 팽창의 실패가 원인이 아니란거다.

 

상식적인 전개수준에 의해서 고구려가 오히려 신라의 영향을 받았고, 그러한 형태는 후일에 맹가첩목아라는 놈이 함경도의 군벌 이성계에게 신속하는 형태에서도 발견되는 것이다.

 

특히 종교문제에서 그러한 부분이 드러나는데, 신라의 본래의 불교 종단은 당시에는 현대의 태국지역을 모조리 아우르던 캄보디아의 부남왕조로부터 기인하는 법장부에 근간하는 계율불교인 것으로부터 중국의 오랑캐 왕조의 대승불교가 한국불교의 우리지널이라는 개소리는 완전히 날조이다.

 

따라서 한국의 불교가 중국방향에서 마라난타나 고구려로 왔다는 것은 종교계 개새끼덜의 후대의 날조인 것이다.

 

화랑하면 계율, 계율하면 화랑이지 씨발 뭔 개소리를 하냐고. 불교는 허황후와 함께 신라로 들어와서는 백제와 고구려로 퍼졌으나 당시의 선비족들의 침략에 의해서 신라외에는 정착할 수 없었다고 보는 것이 맞는 것이지.

신라의 황룡사도 애초에 계율불교의 성전이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아요. 따라서 대승불교 개새끼덜이 박살낸 거에요. 그러나 해방까지는 산문의 화엄종장들이 있었지만 지금은 조계종 깡패새끼덜이 간판만 그대로이고, 억지 통합이나 하면서 문화말살까지 자행하고 있는 거에요.

 

 

요컨데 고구려인이라는 것은 애초에 송화강일대의 농경민족을 말하는 것이고, 따라서 한민족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한민족은 애초에 대동강 이남에 살던 농경민족으로 속지적으로는 전혀 다른 민족이다.

 

신라가 대동강바로 밑에까지 살았지만 정작 평양개척을 하지 않은 이유는 그 일대는 농사가 잘 안 되서이다. 대동강 일대뿐 아니라 압록강일대도 농사는 잘 안 되는 지역이다. 왜냐면 쌀이 가장 싫어하는 물의 온도가 지나치게 낮기 때문이다. 압록강의 중강진카면 추위이고, 압록강 중류 지역을 지난 물은 너무 차갑기 때문에 그 물로는 농사를 짓지 않거나 지어도 잘 안 되는 거다.

정작 압록강 북쪽의 송화강 일대에서는 쌀농사가 매우 잘 된다.

 

국사.png

 

아직도 이 지랄.

 

그리고, BC 400년의 철기 문화는 북방철기가 아니라 버마와 윈난성으로부터 유입된 초나라의 호북성 철기가 더욱 메인스트림이지. 그 것이 가야로 온 것이라고 봐야제.

 

다리시.png

 

버마 옆동네인 중국의 윈난성 다리시에는 얼하이호를 중심으로 하는 농경민족들이 예로부터 살고 있는데, 이들은 Minkia라고도 하고 바이족이라고 중국에서는 부른다.

 

출처: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jwkimch&logNo=220636480734

 

다리시.png

 

IMG_5970.jpg

 

한민족과 동형질이다.

 

인종14.jpg

 

당연한거다. 버마에서 갈라진 sino-tibetan들이 한반도까지 왔으니까. 자꾸 착각하는 병신새끼덜이 있는데, 몽골로이드라는 말은 계통상으로는 부정되는 말이다. 위에서 보듯이 시노티베탄이 훨씬 먼저이고, 몽골에서 한반도등으로 진출해온 것이 아니라 되려 중국북부나 한반도에서 몽골로 퍼진 것이다.

 

우리가 몽골을 닮은게 아니라 몽골놈들이 우리를 닮은거라고 씨발. 우리 기원이 외몽골에 있는게 아니라 몽골놈들의 기원이 오히려 중국북부와 한반도에 있단거다.

 

사서상으로는 기원후의 일만 추리자면 돌궐제3제국을 성립시킨 세력들이 서쪽에서 왔지만 모용씨들이 고구려에 복속되면서 교잡이 일어났을 것이라고 짐작하게 한다. 후대에 속지적인 고구려인의 인구가 몽골인구보다 훨씬 많기 때문에(동북3성 1억+허베이성 중앙부 북경일대 2천만 VS 외몽골 300만 ㅈㅈ) 인구팽창의 원리상 시노-티베탄들이 외몽골의 형질에서도 다수가 된 것이다.

 

바이족은 바로 버마에서 붉은 선이 분기가 일어난 직후에 보여지는 지역의 형질이다. 붉은 선이 동남아쪽으로 꺽게 되는 지역의 intha 지역의 인따족은 다리와 그렇게 멀지 않지만 전형적인 동남인의 형질을 보인다.

 

intha-people-who-live-on-and-around-inle-lake-get-around-by-using-CFMA3D.jpg

 

위는 인싸족이다.

 

인레호.png

 

 

바이족이 사는 다리시와 인싸족이 사는 인레호일대의 거리는 서울과 부산정도의 거리밖에 되지 않는 500킬로 정도이다. 그러나 인종형질은 상이하다. 위의 지도에서 보이듯이 인레호의 밑으로는 태국의 치앙라이주가 보인다. 반면에 바이족의 영역은 인종적으로 상이한 중국인들의 땅인 것이다.

 

 

즉 이러한 것이다. 기원전 7만년전에 일어난 윈난성의 산간지대에 의한 단절 때문에 동남아인과 중국인의 형질을 동시에 보이는 미얀마인들은 중국과 태국에서는 다른 형질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후일에 기원전 5~6000년이후에 일어난 쌀농사의 전파는 그닥 지형의 제약을 받지 않고 퍼져나갔다. 그러하기 때문에 바이족과 인싸족은 모두 쌀을 받아들인 것이다. 나아가서 중국과 태국이 모두 쌀을 받아들인 것이다.

 

그리고, 기원전 6세기 경에는 버마문명과 중국이 교역을 시작하였다. 물론 문명간의 교역이다. 동시기에 버마문명의 요소들인 쌀과 돼지, 닭, 철기 이런 선진기술들을 가진 세력이 중국사의 춘추에 언급된다는 것이다. 초장왕이 바로 그 것으로써 중국남부의 쌀농사문명이 슈프리머씨를 가지는 것으로부터 실질적인 중국고대사는 시작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집단은 버마-중국간 교역로상에서 이주한 집단일 가능성이 매우 높고, 따라서 장강유역의 단절된 문명이나 심지어 황화문명이라는 것조차도 실제의 중국고대사의 메인스트림을 대변하지 않는다. 주나 제나 송과 당은 후대에 외삽되었을 것이다.

 

되려 초를 바탕으로 월과 오가 분화되고, 사천성을 거쳐갔지만 동진하지 않고 조금 더 북진한 집단이 진과 한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https://pub.chosun.com/client/news/viw.asp?cate=C05&nNewsNumb=20141216258&nidx=16259

 

애초에 사천성이 역사가 허난성이나 북경일대보다 더 길다는 썰도 있다. 나는 이게 더 정통이라고 본다.

 

그러므로 초한지에서 유방을 오지로 보냈다는 기록조차 단지 유방의 업적을 과장하기 위한 거짓일 것이다. 되려 항우는 유방이 스스로 황제위를 넘겨준 것이나 다름없는만큼 그에 맞는 독톡한 대우를 해 주었다. 어쩌면 유방과 항우는 같은 민족이라는 교집합을 가지고 선조들의 땅이면서 가장 많은 인구가 거주하는 사천성으로 보내준 것이다.

물론 그 것은 다른 의미로는 산만디 넘어로 보내줬으니까 그동네에서 정착하고는 요쪽으로는 넘어오지 마 이런 의미도 되었겠지만 말이다.

 

쓰촨 성은 중국의 23개 성 중에서 인구가 가장 많다충칭을 포함하면 1억이 넘는 인구가 거주하니 웬만한 나라 하나와 맞먹고도 우위를 차지할 수 있다크기 또한 우리나라의 다섯 배나 되며 가장 많은 종류의 소수민족이 거주하는 지역이기도 하다역사적으로도 한 고조 유방의 근거지가 되었던 곳이기에 삼국시대 한 왕실의 후손인 유비는 이곳에 촉한이라는 나라를 세우고 삼국정립의 한 발이 되었던 곳이다실크로드로부터 전해지는 서역의 문화와 설산을 넘어들어오는 티베트 지역의 문화를 받아 가장 먼저 불교가 유입된 지역이고그 이전에 도교의 본거지격이었던 온갖 전설과 로망이 가득 찬 땅이기도 하다.
 
하지만 고대 역사상에는 그 험난한 지역적 고립성 때문인지 기재된 바가 별로 없는데, 2000년에 부동산 개발을 위해 토지를 개간하던 중 고대 문물이 발견되어 화제가 되었다더 놀라운 사실은 그 유물들이 고대 은허 유적의 것을 앞선다는 믿기 힘든 사실이었다인류 4대 문명 발상지에 쓰촨 지역을 추가해야 한다는 말까지 나왔으니 역사책을 새로 편찬해야 할 판국이 되어 버린 것이다네 개의 큰 강이 교차하는 곳이라 하여 사천이라 하였으니 인류문명의 발상지로 5대 강 유역이 될지도 모를 일인데그만큼 미지의 땅이었다는 말이다.
 
 
되려 느낌을 살리자면 사천성은 당시에도 양대 패권 국가인 진과 초의 영역이었으므로 역사가 오래된 것은 자명한 것이다. 되려 당시에는 산시성이나 허난성이나 허베이성의 황하일대가 되려 진나라인이나 초나라인들에게는 생소한 지역이었을 것이라고 봐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황하문명 기원설 자체를 부인하고, 그 것은 후대의 선비족 지배자들의 편향된 기술이나 외삽으로 간주할 수 있다.
더 나아가서 보자면 속지적인 고구려인들의 하나인 거란족들이 후일에 카이펑을 털어버리고는 북경일대로 가서 정착함으로써 지금의 북경시대가 열릴 기반을 마련하였다.
송은 그들이 차지한 지역인 연운16주를 끝내 수복하지 못하였고, 따라서 후대에는 북경일대가 중국의 지배중심지가 된 것이다.
 
위나라의 카이펑이나 정저우나 쉬창(=허창) 중심시대는 북위가 성립한 386년부터 946년에 결정적인 타격을 받은 뒤에 북송이 천도한 1127년까지의 시기에만 성립한 패러다임이므로 해당지역의 황하문명이 중국의 근본문명이라고 묘사되는 상황자체가 문제가 있는 것이다.
 
나아가서 황하하류인 허난상의 산둥반도따위로부터 한국문명으로의 영향이 일어났다는 주장 또한 그릇된 것이다. 그러하므로 황해도의 구월산이나 평양이나 강화도 따위를 근거로 한 고대문명은 존재치 않는 것이다. 특히 평양이 가장 더러운 외삽이고, 가장 두번째 그림에서 연한 녹색으로 표시되는 오늘날에도 쌀농사가 잘 안 되는 지역으로써 이미 사서상으로도 함경도의 동북일대의 흑토가 있는 평야보다 농업생산성이 떨어지는 지역이 서북일대로써 평양에서 한국 문명이 기원했을 가능성은 극히 낮다.
 
 
한무제의 평양정복은 단지 오랑캐를 아우르는 매너로 해석해야지 확대해석해서는 안 될 것이다. 논농사의 경향상 당연히 한인 문명의 시작은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의 삼한일대에서만 시작된 것이다.
고조선이라는 것은 평양의 오랑캐세력에 대한 잠정적 명칭일 뿐이고, 대부분의 고조선 기사들은 후대에 살을 붙여서 외삽된 곡해로 보인다.
 
그리고 가장 본질적인 질문은 애초에 복수의 지역인들이 받아들이고 있던 설화나 구전보다 단 한명의 엘리트 사가의 편향적인 기술이 신빙성이 있겠냐는 것이다.
 
한민족의 문명은 캄보디아의 부남왕조에서 기인하면 불교종단의 계열까지도 태국지역과 일치하는데 아직도 거짓말이나 할테냐?
김해지역의 구전설화가 오히려 신빙성이 있는 것이고, 나머지 논거는 모조리 후대의 외삽으로 간주해야 한다.
 
그리고 실제로도 삼국사기 따위는 조선조 중종 때에나 완질이 발간된 엉터리인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가장 큰 결함은 기존의 관점은 쌀농사 농경민족인 한민족을 전혀 엉뚱한 쪽에 결부시키곤 한다는 것이다. 한국인과 몽골인은 역사적으로는 전혀 무관한 유전적으로나 비슷한 상이한 민족이고, 단지 몽골인들과 여진족들이나 몽골인들과 야쿠트족들의 어휘교환 따위가 발견되듯이 한국인들과도 어휘교환이 아주 조금 일어났을 뿐이다. 그러나 그 것이 몽골인들로부터 직접 전해진 것인지 동북3성인들을 통해서 전해진 것인지조차 연구는 없는 것이다.
 
한국어 사용자들과 가장 어휘교환을 많이 한 것은 여진족이지만 그들은 청나라 때에 정작 여진어조차 버리고 중국의 주류로 행사하려 들었기 때문에 만주어는 거의 사멸하고 정작 동북3성 한국어를 쓰는 조선족이 쉽게 인지되는 것이다.
 
한민족을 끊임없이 북방으로 결부시키려는 실질적인 동기는 몽골계 지배계급으로 보인다. 그에 따라서 고구려 또한 비정주인으로 묘사되는 것이다. 그러나 고구려인들도 농경민족이고, 다만 맹가첩목아 따위로부터도 보이듯이 씨족근간의 군사집단들은 안보관계의 지정학에 따라서 수시로 근거지를 옮겨다녔다.
 
맹가첩목아라는 놈이랑 취락을 같이 쓰는 놈들이라는게 끽해야 523호 7200명 꼴랑 이 놈들끼리 같이 다니면서 깡패짓 좀 하면서 300만 건주여진의 주류 인싸라고 우기고 댕기는거다.
당연히 다른 부족 추장들은 그딴거 인정 안 해주지. 그러니까 수 좀 쓴게 조선왕한테 관직 좀 받고, 명나라 황제한테도 관직 받고 고 지랄이나 카는 거에요.
7200명 부족민으로 100만이 넘는 인구집단의 대표성을 가질 수 있어? 택도 없지. 지금의 딱 아프리카 추장세력들이 하는 짓이지.
 
그게 고구려라는 거다. 그게 한민족이랑 딱히 정렬된다고? ㅋㅋㅋㅋ 에라이. 되려 광개토라는 놈도 신라매금과의 관계를 존나게 과시해놓은 돌에 새겨서 빼도 박도 못할 기록유산만 전해질 뿐이지.





  • 헬조선 노예
    19.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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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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