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조선










 

일본이 조선을 근대화시켜준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니까 일제시대는 옹호해선 안된다는 대다수 한국인들의 논리대로라면 세계 역사에서 일어난 모든 근대화를 부정하고 반대해야 합니다.

 

왜냐?

 

근대화라는 것은 다른게 아니고 부르주아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전면적으로 보장해주는 체제를 만들기 위해서 봉건제를 타파하는 것을 말합니다.

 

따라서 세계 역사에서 일어난 모든 근대화는 부르주아들의 이익을 위해서 일어난거지 순수하게 대다수 사람들을 위한게 아니었기 때문에 근대화 자체를 반대해야 하는군요?

 

영국 청교도 혁명, 프랑스 대혁명, 메이지유신, 신해혁명, 터키의 아타튀르크의 근대화 등등은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되는 거였군요?

 

참고로 조선같은 경우는 500년간의 억상책과 조공수탈 때문에 도무지 상공인계층이 생겨날 수가 없었기 때문에 외국(일본)의 부르주아들이 조선의 근대화 선봉세력까지 대신 떠맡은 차이일뿐

 

나머지 (근대화 과정이나 그 결과로 생겨난 체제 등등) 들은 본질적으로는 서구와 다른 외국들의 근대화랑 전혀 차이가 없습니다.  (신분타파, 노비해방, 법치주의 실현, 각종 구습의 철폐, 민권 보장 등등을 내용으로 하는.)

 

 

 

따라서 일제시대를 포함한 세계의 모든 근대화 자체를 전면 반대하고 부정하던가

 

아니면 일제시대를 포함한 세계의 모든 근대화를 찬성하고 옹호하던가

 

둘 중 하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대다수 한국인들은 이런 기본적인 것들도 모를 정도로 머리가 텅텅 비었고 저능하기 짝이 없습니다.

 

 






  • 이반카Best
    16.10.26

    반미하는 놈들도 머가리 빈놈들이다. 미국아니었으면 남조선 아직도 거지나라였을거다. 까놓고 자본개념이나 민주주의 그런거 미국이 전파해준거 아니냐?

     
  • Tokyo11 나는 국뽕일베충Best
    16.10.26
    국뽕일베충은 꺼져라 가생이나 일베로
  • 이반카
    16.10.26
    야. 나 일본얘기한것도 아니고 스웨덴 복지모델 저격한건데 뭐가 불만이냐? 왜 죽창했냐?

    미국이랑 일본이 남조선 선진화어 도움줬지 스웨덴이
    도움줬냐? 
  • 계획경제 = 빨갱이라는 말도 안되는 미친 헛소리 씨부렸잖아?


    니 말대로 계획경제가 빨갱이 정책이라면 일본이랑, 일제시대의 조선 등등은 전부 빨갱이 체제들이었냐?


    말같은 소리를 씨부려야 들어주던가 하지.


    죽창받을 헛소리를 씨부려놓고 죽창 안받길 바라는게 도둑놈 심보 아니겠냐?

  • 이반카
    16.10.27

    본문에 스웨덴 복지모델 저격한거지 일본얘기했냐?

    스웨덴은 빨갱이 체제 맞다. 빈곤층을 없애고 모두를 중산층으로 만들자는게 말도 안되는 헛꿈꾸는 빨갱이 발상이 아님 뭐냐? 
     
     
  • 계획경제 그 자체가 빨갱이 체제라며?


    이제와서 왜 갑자기 스웨덴만 그렇다고 말을 바꾸냐?


    니 말은 자유방임주의 아니면 싹다 빨갱이 경제라는 소린데


    일본도 계획경제 하고 있고 (경제개발계획 세워서 실행)


    일제시대의 조선도 계획경제체제였는데


    니 논리대로라면 일제시대도 빨갱이 시대였냐?


    지금 일본도 빨갱이 국가냐?


    여기 회원들이 니한테 죽창때리는 이유를 제대로 알아야지 ㅉㅉ

  • 이반카
    16.10.27
    일본은 아니고 미개한 헬센징식 계획경제가 빨갱이라는거다. 합리적이지 못하고 통제만하고 
    노조활동도 한번안한 무고한 시민들 정권에 비판적이라고 죽이고. 박정희는 희대의 개새끼라는거.
  • 니가 씨부린 댓글이 뻔히 있는데 끝없이 말을 요리조리 처 바꾸면서 거짓말하는 개같은 꼬락서니 처봐라.

     

    다음은 니새끼가 쓴 댓글.

     

     

    {{박정희개새끼 못하는건 헬센징 공통분모인가요. 역시 돔조선이네요. 박정희시기에 그 황금기에 세계 경제성장률 이하로 성장한거 알랑가 모르겠네요. 무식한 계획경제를 하여 시장경제를 묶어버리니 제대로 성장할 리 만무하죠. <<자유경제를 택했다면>> 어땠을까요? 아마 지금쯤 미국처럼 풍족하게 살고 있지 않을까요? 엄밀히말하면 자본주의를 부정하고 군부독재를 해 무고한

    시민을 학살했기에 박정희야말로 빨갱이입니다.
     
    박정희때부터 <<신자유주의를 했다면>> 샹활수준 미국하고 짝짝꿍하고 있을텐데 안타깝네요. }}
     
     
    여기서 니새끼는 분명히 <<자유경제를 택했다면>> 도 모자라 <<신자유주의를 했다면>> 라는 말까지 썻다.
     
    자유경제, 신자유주의는 어느 나라 경제가 되었건 규제랑 정부개입 그 자체를 전면 철폐하고 완벽히 100% 자유방임해야한다는 경제사상이고 그 대상에는 나라 지역 등의 일체의 예외를 두지 않는다.
     
    즉 니새끼는 신자유주의 했다면 더 잘살았을거다고 말함으로써 간접적으로 신자유주의는 모두를 잘살게 해주는 경제체제이다 라는 말을 한거고
     
    이것은 사실상 모든 종류의 계획경제를 부정하는 말과 진배없고 따라서 자연스럽게 일본의 계획경제도 반대한 것인데
     
    이제와서 뭐? 한국식 계획경제만 반대했다고?
     
     
    어디서 뻔히 보이는 거짓말을 눈썹 하나 까딱안하고 뻔뻔스럽게 씨부리고 자빠졌냐? 
     
    하긴 니새끼의 그 처참하게 저능하고 무식한 대가리수준으로 거짓말을 그럴듯하게 처 할수는 있었겟냐? ㅋㅋ
     
  • 이반카
    16.10.27

    아니 그당시 조선은 넘 못살아서 성장이 중요할 때였거든. 일본은 잘살았고. 남조선도 레이거노믹스에 발맟춰 신자유주의 했으면 경제성장도 더 되서 지금쯤 국민소득 미국만큼 높았을수도 있다는거지. 유신잔재의 악습도 없을거다. 

     
    빈부격차 수치가 비슷하다면 기왕이면 국민소득 높은게 더 낫지. 국민소득 높으면 아무리 가난해도 생계소득은 보장해줄 여유가 생김. 
  • 또 다시 미친 개소리 지껄이고 자빠지셨는데


    못사는 경제일수록, 급속한 경제발전을 위해서 경제에 대한 정부계획과 정부개입이 필수적인데?


    메이지 유신시절의 일본정부랑 일제시대 초기의 조선총독부가 <급속한 성장을 위해서 계획경제와 경제 전반에 대한 정부통제 및 개입이 필수적이다> 라고 말하고 인정했는데?


    민간시장에 맡겨놓으면 기업들은 절대로 위험하지만 미래에 꼭 필요한 투자를 꺼려서 정부가 개입해야한다고 일본 본국과 총독부 고위 관료층들이 인정했다니까?


    그분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세계적으로 알아주는 동경제국대학 졸업해서 일본과 조선 전체를 먹여살리는데 혁혁한 업적과 공을 세운 엘리트출신들인데 니새끼가 그분들보다 경제를 더 잘안다고 생각하는 과대망상증에 처 빠진건 아니겠지? 


    니새끼 말대로라면 메이지 천황부터 시작해서 이토 히로부미, 데라우치 마사다케 등등의 일본의 엘리트 지배층들이 전부 미친게이들이였냐? 맞으면 맞다 아니면 아니다로 어디 한번 그 역겨운 아가리로 처 씨부려 보라니까?


    하여튼 뇌에 주름하나 없이 깔끔한 수준으로 무식한 정박아새끼가 되도 안한 헛소리로 처 우기는 꼬라지가 참 귀여운 수준으로 한심하고 처량할 뿐. 도대체 왜사냐? 그 무식한 대가리 처 달고 인간이랍시고 살아있는데 부끄럽고 수치스럽지도 않냐?


    너같은 저능한 미친 병신새끼는 그냥 한강다리에서 아름답게 자유낙하 해주는게 인류와 사회를 위한 유일한 지름길인듯 하다.



  • 야 뒤졋니 살아있니?
    16.11.05

    너 요새 갑자기 안 보인다 전번까지도 못하고 학력직업 인증못해서 도망친거냐? ㅋㅋㅋㅋ 빨리 답글이나달어 새키야 

  • MC무현
    17.08.20
    박정희 경제성장률이 어딜봐서 세계평균보다 낮았냐?
    마약하냐?
  • 이반카
    16.10.26

    반미하는 놈들도 머가리 빈놈들이다. 미국아니었으면 남조선 아직도 거지나라였을거다. 까놓고 자본개념이나 민주주의 그런거 미국이 전파해준거 아니냐?

     
  • MC무현
    17.08.20
    추천
  • Tokyo11
    16.10.26
    뭔 개소리야 어차피 한국전쟁으로 나라 개판됐는데 일뽕근대화가 뭔대수야 일뽕아. 이민언제가냐 아직도 한국이냐? 잡솔그만하고 이민이나가 일본에서도 씹덕은 안받아주냐?
  • Tokyo11 나는 국뽕일베충
    16.10.26
    국뽕일베충은 꺼져라 가생이나 일베로
  • MC무현
    17.08.20
    ...
  • 논리도 없고 그저 인신공격질에 욕설밖에 할줄 모르는게 당신같은 반일국뽕들의 주 특기이자 유일하게 할줄 아는 일이죠.


    한국전쟁은 한국인들이 좌익 우익 편갈라서 총질했지 어디 일본이 부추긴겁니까?


    그리고 당신 부모가 당신을 어떻게 가르쳤길래 당신이 이렇게 저능한 장애인으로 살게 됬는지 참으로 안타까울뿐. ㅎㅎ


    님 같은 살 가치도 없는 장애인은 뱃속에 잉태하자마자 낙태를 시켰어야지 왜 낳아서 당신이 이렇게 노숙자만도 못한 쓰레기인생을 살게 만들었데요? ㅎㅎ


    하긴 님 애미가 노숙자들에게 돌려지면서 따먹혀서 낳은게 바로 지금의 님이니 당연한 일이겠지만요 ㅎㅎ



  • Tokyo11
    16.10.28
    난독증있냐 내가 어디다 일본이 부추겼다고 썼냐? 하튼 현실 씹덕 ㅅㅋ들은 지들 판타지 세상에 갇혀 자위하고 살아요. 니가 존나 대단한새키면 찌질하게 이러지 말고 나가서 언론에다 짖거려 임마
  • 한국전쟁으로 다 파괴됬으니 일제시대의 근대화는 무효다 라고 주장하는 것 자체에 이미 한국의 잘못으로 파괴된걸 절대 인정안하고 일본 잘못으로 돌리는 개소리가 교묘하게 깔려있는데 무슨 되도안하고 억지로 처우기는 겁니까? 언어능력 제로세요?

     

    하긴 님 애미의 대가리 수준부터가 장애인 수준이라 그 닳고닳은 썩어문드러져 구더기가 들끓는 더러운 보지구멍이 노숙자들한테 돌려지면서 따먹혔을 정도니 님이 이러는 것도 이상한게 아닙니다. 그런 님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님이 무슨 잘못이 있겠습니까? ㅎㅎ

     

    단지 님 애미를 욕해야 할 뿐이고 님 애미가 쳐죽여버려야할 역겨운 창녀일 뿐이죠. 님 같은 쓰레기인생보다 못한 정박아를 임신했으면 낙태라도 시켜야 할건데 이렇게 낳아서 님이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미친짓하게 만들었으니까요.

     

    지금이라도 님 애미 찾아가서 님 애미의 에이즈 냄새나는 역겹고 추잡한 보지구멍에 시원하게 염산 한그릇 부어서 님 애미의 보지구멍을 님 스스로가 깨끗이 청소해주는걸 강추드릴 뿐입니다 ^^

     

     

  • 뒤져라 뒤져라
    16.11.05
    니 애미가 죽여버려야할 역겨운 창녀다 니 애미 자궁이나 염산으로 청소해라 핵폐기물 찐따새키야
  • john
    16.10.26

    그 니뽄 신토식 파간우상화 때문에 북한에서 김씨우상이 등장해서 이 나라를 전화로 개박살 낸 거 아니냐. 북한에서는 아직도 김씨부자 찬양 안 하면 소싯적에 신사참배 안 한 것들마냥 아오지로 끌어간단다.

     
    일본 것들도 메이지천황때는 영일동맹이나 가쓰라-태프트조약으로 영미계랑 친하다가 쇼와천황 히로히토라는 새끼 말 한 마디에 국시를 바꿔서는 대동아공영권 만든다고 쳐 지랄하고, 미국, 영국과도 척을 지다가 핵 쳐 맞고, 다 박살난거 맥아더 쇼군시대(맥아더쇼군시대를 쿨게이같은 term으로 미군정기라고 하는 것임. 반미하는 새끼들의 정서적 근간이 바로 미군정기에 대한 트라우마적 반발에 있음. 그 정도로 한국이랑 일본새끼들이 미개함.)를 거치면서 정신차려서 다시 재건한게 저거지 지금 저게 뭐 소싯적(전쟁전) 그건 줄 아나.
     
    존나 병신이에요. 어차피 일본이건 한국이건 모두 50년대랑 60년대에 니들 할배들이 재건했어. 병신아. 뭘 씨발 소싯적을 찾냐고 병신이. 
  • 생각이 다르다고 욕설이나 하는 당신같은 저열한 인간쓰레기하고는 대화할 가치도 섞을 말도 없습니다. 그냥  내 글이 님 마음에 안들면 아예 댓글을 달지를 말고 님이 몇번이나 씨부린대로 조용히 사이트를 떠나주시는게 좋을 듯 합니다.


    남의 글에 쌍욕이나 퍼붓는 쓰레기인격가진 미친놈이 뭔 역사 사회를 논할 자격이나 있는지 나 참.

  • 너는숨쉴 자격이없음
    16.11.05
    니놈은 숨쉴 자격이 없는것같은데 산소오염시키지말고 숨부터 쉬는걸 멈추는게 어때?
  • MC무현
    17.08.20
    논리적인 반박을 하면 그 주장을 조목조목 따져서 니 의견을 관철해야지
    그냥 무시하고 정신슨리하면 제 삼자 입장에서는 너가 비논리적으로 보임
  • mikehonda
    17.08.22
    논의는 필요 없다.
    사실을 담담하게 보여주는 것만으로 좋다
  • mikehonda
    17.08.25

    伊藤博文が奴隷解放を行っていない場合には、あなたは小作人として水田で鍬を持っていたことでしょう。

     
    今日の韓国の繁栄は、韓国国民の皆さんの絶え間ない努力と勤勉の結果です。それと同時に、日本の韓国に対する経済協力が、これらの発展に貢献したということは、韓国ではよく知られていない事実がないでしょうか。

    例えば京釜高速道路の建設、浦項総合製鉄拡充事業、ソウル地下鉄1号線の建設、ソウル江南の開発を可能にした昭陽湖建設事業は、日本の経済協力が貢献した事業です。現在の韓国の経済発展に大きく貢献して韓国人の皆さんの身近なところで役立っている、これらの事業に、日本の援助が使用されたという事実に驚かれる方もおられるでしょう。

    韓国が先進工業国の一員となった今日では、韓国に対する日本のODA供与は、1999年の技術協力を最後に終了しました。現在、韓国では悲願祖国を卒業して、むしろODA供与国と 活躍しています。途上国への援助政策について、日本と韓国の間で意見交換や協力が活発に行われるようにされたことを、私たちは大いに歓迎しています。
  • mikehonda
    17.08.25
    일본 측 기업 한국 측 기업 기술 제휴 내용

    파나소닉 亜南 전기 칼라 TV, 오디오 제품에 대한 기술
    일본 빅터 금성사 VHS 방식 VTR의 특허 및 제조 기술
    일본 빅터 삼성 전자 VHS 방식 VTR의 특허 및 제조 기술
    도시바 한국 전자 TV · 오디오 용 바이폴라 IC 설계 및 제조에 관한 기술 및 두 기술의 수용 파견
    샤프 삼성 반도체 IC 제조 기술
    쿠보타 철공 에산 산업 상하수도 용 · 중 · 대형 밸브의 제조 기술
    고바야시 고세 쟈리아 화장품에 대한 제조 기술
    얀마 디젤 쌍용 중공업 중 · 대형 선박용 디젤 엔진에 관한 기술
    도시바 금성 통신 X 선 진단 장치, 초음파 진단 장치에 관한 기술
    캐논 롯데 산업 고성능 건식 복사기에 관한 기술
    소니 현대 전자 VTR의 제조 기술
    히타치 조선 한국 중공업 선박용 엔진 제조에 관한 기술
    日本精糖 제일 제당 제당 공장의 자동화에 관한 기술
  • mikehonda
    17.08.25
    日本で韓国へのODA 1

    「援助内容 "措置"日付 "措置"援助額」

    韓国鉄道施設改良事業1966-06-08 39.6億円
    韓国漢江鉄橋復旧事業1966-06-17 3.6億円
    韓国建設機械改良事業1966-07-20 23.4億円
    韓国水力干拓と浚渫事業1966-07-20 11.88億円
    韓国海運振興事業1966-07-27 32.43億円
    韓国の中小企業と機械工業育成事業1966-07-27 54.0億円
    韓国鉄道施設改良事業(2)1967-03-23 33.65億円
    韓国の輸送と荷役機械改良事業1967-06-27 9.35億円
    韓国光州市上水道事業1967-07-11 6.05億円
    韓国地域電話事業拡大1967-07-11 3.60億円
    韓国大田市上水道事業1967-07-11 5.90億円
    韓国産業機械工場拡張事業1967-07-31 10.80億円
    韓国昭陽江ダム建設事業1967-08-07 3.96億円
    韓国の中小企業と機械工業育成事業1967-08-07 26.69億円
    韓国の高速道路建設事業1968-06-26 10.80億円
    韓国地域電話事業拡大1968-10-30 6.48億円
    韓国昭陽江ダム建設事業1968-12-28 46.98億円
    韓国の高速道路建設事業1969-04-14 18.00億円
    韓国農水産振興事業1969-06-19 8.92億円

    日本で韓国へのODA 2

    「援助内容 "措置"日付 "措置"援助額」

    韓国泳動火力発電所建設事業1969-09-01 6.41億円
    韓国清州市上水道事業1969-12-04 3.24億円
    韓国南海大橋建設事業1969-12-04 7.88億円
    韓国昭陽江ダム建設事業1970-02-04 27.01億円
    韓国地域電話事業拡大1970-06-25 5.17億円
    韓国総合製鉄事業1971-07-16 28.80億円浦項総合製鉄(株)
    韓国ソウル地下鉄建設や鉄道の電気事業1972-04-10 272.40億円
    韓国総合製鉄事業1972-05-01 107.49億円浦項総合製鉄(株)
    韓国商品次官商品次官など1972-09-18 77.00億円、大韓民国政府
    韓国総合製鉄事業1973-01-16 10.87億円浦項総合製鉄(株)
    韓国通信設備拡張事業1973-04-23 62.00億円
    韓国漢江流域洪水予警見施設事業1973-07-20 4.62億円
    韓国商品借款1974-05-13 77.00億円、大韓民国政府
    韓国浦項総合製鉄所の拡充事業1974-05-22 127.88億円
    韓国ホールの多目的ダム建設事業1974-12-26 118.80億円
    韓国農業総合開発事業1974-12-26 194.40億円
    韓国浦項総合製鉄所の拡充事業1975-07-30 2.25億円
    韓国北坪項建設事業1976-03-31 124.20億円
    韓国忠清北道線回復線化事業1976-11-26 43.00億円
    韓国通信設備拡張事業1976-11-26 66.00億円

    日本で韓国へのODA 3

    「援助内容 "措置"日付 "措置"援助額」

    韓国農業振興計画1977-06-10 126.00億円
    韓国超高圧送電線建設事業1977-11-28 40.00億円
    韓国忠清南道B多目的ダム建設事業1978-01-20 140.00億円
    韓国農業振興計画1978-01-31 60.00億円
    韓国の医療施設の拡充事業1978-12-25 70.00億円
    韓国農業総合開発事業1978-12-25 140.00億円韓国電力(株)
    韓国の教育施設の拡充事業1980-01-18 100.00億円
    韓国国公立医療や保健機関の近代化事業1980-01-18 40.00億円
    韓国の都市下水処理施設の建設事業1980-01-18 50.00億円の建設部、大邱市大田市、全州市
    韓国の教育施設(基礎科学分野)の拡充事業1981-02-27 60.00億円
    韓国の民間地域病院の医療機器の拡充事業1981-02-27 130.00億円
    韓国の医療機器の拡充事業(ソウル大学小児病院)1983-10-11 54.00億円
    韓国下水処理場建設事業(ソウルタンチョン)1983-10-11 115.00億円
    韓国の地方上水道拡張事業(釜山、ソウル、真珠)1983-10-11 78.00億円
    韓国陜川多目的ダム建設事業1983-10-11 204.00億円
    韓国ソウル上水道施設の現代化事業1984-08-08 29.00億円
    韓国下水処理場建設事業(ソウル中新郎)1984-08-08 167.00億円
    韓国下水処理場建設事業(釜山)1984-08-08 63.00億円
    韓国気象施設の現代化事業1984-08-08 42.00億円
    日本で韓国へのODA 4

    「援助内容 "措置"日付 "措置"援助額」

    韓国国立衛生研究所安全性研究センター事業1984-08-08 24.00億円
    韓国住岩多目的ダム建設事業1984-08-08 111.00億円
    韓国大田市上水道拡張事業の社会的サービス1984-08-08 22.00億円
    韓国の都市廃棄物処理施設の建設事業1984-08-08 4.00億円大邱市城南市
    韓国農業水産試験研究施設の現代化事業1984-08-08 33.00億円
    韓国の医療施設の拡充事業1985-12-20 123.00億円
    韓国下水処理場建設事業(釜山長林)1985-12-20 92.60億円
    韓国下水処理場建設事業(光州)1985-12-20 75.60億円
    韓国下水処理場建設事業(チュンチョン)1985-12-20 32.80億円
    韓国化学研究用・計量標準研究機材補強事業1985-12-20 27.00億円
    韓国の教育施設の拡充事業1985-12-20 152.00億円
    韓国総合海洋調査船建造事業1985-12-20 41.00億円
    韓国の教育施設の拡充事業1987-08-18 129.11億円文教、国立科学館
    韓国の中小企業近代化事業1987-08-18 77.50億円
    韓国農業機械化事業1987-08-18 77.50億円、全国農業協同組合中央会
    韓国の廃棄物処理施設の建設事業1987-08-18 53.72億円大邱市城南市
    韓国酪農施設改善事業1987-08-18 38.75億円、ソウル牛乳協同組合
    韓国臨む多目的ダム建設事業1987-08-18 69.75億円
    韓国蔚山市都市開発事業(鉄道部門)1988-06-22 44.40億円
    韓国栄山江3-1地球防潮堤事業1988-06-22 44.40億円

    日本で韓国へのODA 5

    「援助内容 "措置"日付 "措置"援助額」

    韓国下水処理場建設事業(済州・清酒)1988-06-22 41.59億円
    韓国の教育施設の拡充事業1988-06-22 5920億円
    韓国研究所施設の拡充事業1988-06-22 26.79億円韓国遺伝子工学、機械、電子通信、化学研究所
    韓国私立大学付属病院施設の拡充事業1988-06-22 56.24億円梨よ女子大、中央大、漢陽大、高麗大、東亜大
    韓国大田上水道拡張事業1989-08-22 14.34億円
    韓国の中小企業近代化事業1989-08-22 62.00億円、国民銀行
    韓国ソウル地下鉄建設事業1990-10-31 720.00億円
    韓国の医療機器の拡充事業(ソウル大学病院)1990-10-31 43.20億円
    韓国水産・商船学校の練習船の機器の拡充事業1990-10-31 21.60億円
    韓国の中小企業近代化事業1990-10-31 115.20億円
    韓国肉加工施設の拡充事業1990-10-31 17.28億円、畜産業協同組合中央会
    韓国配合飼料工場の建設事業1990-10-31 54.14億円、畜産業協同組合中央会
    韓国酪農施設改善事業1990-10-31 24.48億円、畜産業協同組合中央会

    ※単位・金銭はすべて、日韓基本条約締結後のサポートが開始された
    1966年当時のもの

  • deadlock
    16.10.26
    ㅈ센징이니까..

    아무리 일제가 미개했다거 해도 ㅈ센징에겐 발끝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이지
  • 갈로우
    17.08.19
    역시 일뽕다운 착각이다 ㅋㅋ

    근대화 좋다 고맙다 
    거기서 끝

    근대화는 고마운데 나머지 부작용이나 그런거는 용납이 불가능하다는거야
    모르겠냐 무슨뜻인지
    니들이 필요해서 근대화했지
    그래 고맙다
    그래서 뭐? ㅋㅋㅋ 어쩌라고

    아 꼬우면 또 침략해서 뺏어가던가

    찬성 옹호같은 소리를 뭐하러 하냐
    한국에 사는 조쉔징들이 싫다잖아 뭔 말이 더 필요하냐

    넘의 나라는 넘의 나라일 뿐이다 
    빼먹을거는 빼먹고
    아닌거는 아니고
    취사선택해서 내가 잘살면 그만이지

    무슨놈의 옹호고 나발이고 ㅋㅋ 뭔 의미가있냐

    짝사랑은 혼자해라
    밤꽃냄새풍기지말고




  • 둠헬
    17.08.19
    근대화한거 일차로 연합군이 뜯어갈 수 있는건 다뜯어가고 이차로 한국전쟁으로 다날려 먹고 쓰레기만 남았는데 뭘 감사해 ㅅㅂ ㅋㅋ전쟁에서 이기든가 그럼 져놓고 지랄임
  • 왓따
    17.08.20
    옹호/반대를 가리기 보다는 그냥 역사는 역사로 놔두면 되는겁니다. "일본치하 하에 여러가지 근대화가 진행되었다"라고 하면 끝나는 일인데, 이걸 무리하게 잘잘못을 가리겠다고 나서니까 문제죠.

    애당초 일본 주도하의 근대화는 여러가지로 부작용도 많았고, 특정 조직의 특정 의도를 위한 사회 인프라 구축이 주가 되는 양상이였습니다. 일본인 중심의 소작농업이라던지, 값싼 노동력만을 활용하는 식민지 경제 등을 위해 특정 부분만 변모한거죠. 덕분에 사회문화적 근대화는 아예 진행되지도 못했습니다. (애당초 일본부터 실상 전근대 사회였어서...). 결국 일제치하에서 근대화가 이루어진 부분은 일부분이고, 전 사회적 근대화는 해방 이후로 보며, 경우에 따라서는 60대까지도 근대화 시대라고도 칩니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일본 근대화"가 굳이 "옹호"할 만한 대상인가는 생각해볼만한 문제죠.

  • mikehonda
    17.08.21
    ノビ制度は1894年甲午改革で廃止されるまで継続されたが、最終的には両班の反対によって失敗している。
    当時は奴婢(奴隷)が約43%、良民(サンミン)が約50%、残りの約70%は、「両班」(ヤンパン)という人でした。
    韓半島で実質的に奴隷制度が廃止されたのは、日韓併合の前年1909年である。この年に韓国統監府は戸籍制度を導入することで、人間とは見なされなかった性を待たずにえ層にも性を可能にした。
    その後、彼らの子供が学校に通うことができるよう身分解放に反発する両班は激しい抗議デモを行ったが、身分に関係なく、教育の機会を提供すると考え、日本政府によってすぐに鎮圧された。
  • 노인
    17.08.23
    그 후 일제시대 때도 '머슴'이라는 노예가 여전히 존재하다 한국전쟁 이후 노예제도가 완전히 사라졌다
     
    -참고자료-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alsn76&logNo=40204143285&referrerCode=0&searchKeyword=%EB%85%B8%EC%98%88&proxyReferer=http%3A%2F%2Fm.blog.naver.com%2FPostSearchList.nhn%3FblogId%3Dalsn76%26searchText%3D%25EB%2585%25B8%25EC%2598%2588

  • mikehonda
    17.08.21
    まず李朝は農民の土地所有などということは全く保証されていないことです。封建社会では、ヨーロッパでもそうだったが、現代的な意味での土地の所有権というのは、明確ではないでしょう。事実何重にも権利が重なることがあります。日本の地祖改正して、土地の私的所有を認めて、現代的な意味での土地の所有権という慨念を確立したのですが、日本が韓国でしようとしたのもまさにこれです。つまり、朝鮮総督府の最大の成果の一つは、土地の所有権を認めたということです。すなわち、農民に耕作する各土地の所有権を公権力が保証したというんですよ。これは大きな功績です。その数は裏腹に言っているのです。明らかに、その過程で様々な混乱があったものであり、不平不満も出てきたのです。
  • 헬조선 노예
    17.08.21
    mikehonda님 헬포인트 10 획득하셨습니다. 헬조선에서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
  • 노인
    17.08.23
    조선 총독부가 조선인들에게 소유권이라는 개념을 만들어 주었지
  • mikehonda
    17.08.23

    너는 중요한 점을 알아 차렸다.

    토지의 소유권은 정부 사무실에서 토지의 등록을 관리함으로써 확립되었다.
    이것으로 "두 팀의 토지 강도"가 사라졌습니다.

    한반도의 땅에 대한 "일본 황제"의 습격은 "일본 황제의 강간"중 하나로 간주됩니다. 일본인들은 작은 언덕을 올라 주변을 둘러 보며 땅을보고 가능한 한 빨리 노다를 도적질했다고 종종 말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아마 두 팀의 "토지 강도"협회로부터 일본인에 대한 거짓 주장이었을 것이다.

    "한국 상황"(1874)에서 Daura 박사는 두 팀의 실제 상황을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있다. "양 팀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하고 오만한 계급이다. 농부들에게 강도에 가까운 방식으로 들판과 집을 살 때, 대부분의 경우 그들은 지불하지 않고 지불 할 것이고, 후견인 (주지사) 이 강도 행위. "

    전쟁이 끝난 후에 일본인들이 한반도에 있다고 말한 토지의 약탈은이 두 그룹으로 구성된 모델로 모델로 구성된다. 처음에는 일본이 합법적 인 국가입니다. 전쟁 후 한국의 지식인들은 분명히이 전제를 잊어 버린 것 같다.

  • 왓따
    17.08.25

    近代の農業は資本主義化が特徴だ。土地の所有権は植民地経済の構築にも必要なことなので中立。

  • mikehonda
    17.08.26
    土地の所有権の確立は、国家の近代化戦略の第一歩である。あなたはアマゾンの原住民のが良かったと言っているか 朝鮮時代には両班が山に登っ果てしなく広がる土地は自分のものだと奪っていった。
    もうそんなことはできない。
     

    全体の耕地面積の日本人所有耕地面積の割合(1928年(1928年)末)

     

    全羅北道14.7%

    全羅南道9.0%

    黄海道6.0%

    慶南5.6%

    忠南5.0%

    京畿道3.3%← "小作料は、各家庭の規模に応じて40%から60%に達した」

    慶北1.9%← "小作料過大て細民生活いよいよ困難」

    平安北道1.5%

    平安南道1.0%

    咸鏡南道0.7%

  • 왓따
    17.08.26
    日本による植民地経済の構築に必要なのでそれが「朝鮮を近代化した」とは言えるが、それが「いいこと」だ言うのは曖昧なものになる。これは植民主義の全般の問題になる。
  • mikehonda
    17.08.26
    土地の所有権の確立は社会の近代化の第一歩である。資本主義に不可欠な要素でもある。
    >これは、植民地主義の全般の問題になる。
    何の意味か?
  • 왓따
    17.08.27
    ヨーロッパによりアフリカの文明化の場合、その強制的方法によって現地の固有文化が破壊され、言語も英語とかフランス語を使っている。ごの状況でアフリカ人がヨーロッパ人に対して感謝することは出来ない。

    朝鮮も日本による民族抹殺政策に大きな反感を持っているため、日本による(部分的)近代化に感謝の心はほとんど持っていない。
  • mikehonda
    17.08.27
    あなたは、日本がヨーロッパと韓国をアフリカと同一視しようとしますが、完全に異なっていることを知っています。
    韓国人は、人口の95%以上が奴隷のように生きていて、貧困と不当に苦しんだ事実を変えることはできない。日本は公然と韓国を近代化した。
    事後韓国人は独立政府が韓国政府の総裁と戦っている偽造された民族の政治政策とファンタジーを教えることに満足する。
    実際には、1943年に日本軍のための特別なボランティアの兵士に6300人の志願者を採用したのは、その数が50万倍に達する30万人以上でした。
    戦争中242341人の韓国兵士と軍が米国、英国、中国と戦った。

    そのような事実は、記録に残っているので、変更することができません。
  • mikehonda
    17.08.21
    この施策は、明らかに朝鮮の近代化に役立つされています。実際に隠田というのが多くを見つけることで、所有者不明の土地は、明らかに総督府のものとなったことはあるが、その割合は極めて微々たるものです。
    山本有造氏の「日本の植民地経済史研究」(名古屋大学出版会刊)によると、これらの理由から、総督府に提出された上地は約12万の情報も定められた期間に申告しなかったり、所有権を証明する書類がないため、受理された土地は、2万7000町歩で合計14万7000町歩になります。1922年(大正11年)当時、朝鮮で全体軽ば債券は450万の情報のため、土地調査して総督府が受理した土地は、全体の耕地の3%ということです。参考に同年の日本の農業者所有の土地面積は17万5000町歩、東洋拓殖株式会社は、国策会社の所有出れば債券は8万町歩で合計25万5000町歩です。これ全体の耕地面積の5.7%にしかなりません。
  • 노인
    17.08.23
    사실 일본이 한국을 지배해도 별 이득이 없었다는 거
    처음에 적자였다가 나중에 겨겨우 소득이 올라갔다고 합니다 
    일본이 여러 국가를 식민지 삼으면서 가장 효과적으로 근대화에 성공한 나라가 있다면 '만주국'이라고 생각한다 
    자원이 풍부해서 식민지 때 일본이 이득얻는 데 공로가 되었지 

    http://blog.naver.com/dreamofkgr/20198637579

    http://blog.naver.com/dreamofkgr/20198654554

    http://blog.naver.com/dreamofkgr/20198700713

  • mikehonda
    17.08.21
    新規保険契約件数
    例えば、1935年
     
    内地人(列島の日本人)が45,433人
    朝鮮人(朝鮮系日本人)が193,117人である。
     
    合併以前は95%程度が奴隷のような生活をしていた朝鮮渡し頃には、経済的に豊かになっているんだ。
     
    출처; 조선 총독부 통계 연보. 쇼와 10 년 page 272
    http://dl.ndl.go.jp/search/searchResult?featureCode=all&searchWord=%E6%9C%9D%E9%AE%AE%E7%B7%8F%E7%9D%A3%E5%BA%9C%E7%B5%B1%E8%A8%88%E5%B9%B4%E5%A0%B1&viewRestricted=0&viewRestricted=3?
     
    保険加入者.jpg

     

  • 헬조선 노예
    17.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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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ikehonda
    17.08.21

    ヘル朝鮮奴隷

     

    I do not know what merit is.

  • 왓따
    17.08.25

    経済的豊かさと本資料の連関性は低いと判断する。実際、1930年までは朝鮮の農業生産性はあんまり増加しない。そしてあの時代の統計は問題が多いので僕らアマチュアでは正確に分析することは難しい。

  • 헬조선 노예
    17.08.25
    왓따님 헬포인트 5 획득하셨습니다. 헬조선에서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
  • mikehonda
    17.08.26
    矛盾が多く書かれた文。
    アマチュア正確分析することは難しいと言いながら統計は問題が多いとはどのような意味である。
    私提示した朝鮮総督府統計年表は、朝鮮時代の唯一の信頼できるデータである。
    あなたは具体的には、その問題を指摘することができますか?
    また、>実際、1930年までは朝鮮の農業生産性はあんまり増加しない。
    질문이지만, 몇 %의 증가합니까?
  • 왓따
    17.08.26
    자료를 제시하더라도 해독시 주의점이 많다는 의미.

    일단 1920년대까지는 사회 인프라 재구축으로 인하여 부정확한 자료가 많음. 그 이후 자료의 신뢰도는 문제 없는 것으로 보임. 실제 인터넷에서 검색해보면 한일 학자들이 1930년대 자료에 의존하는 경향이 뚜렷함.

    그리고 당시 자료를 분석할 때 현대적 문맥에서 분석하면 틀린 결론이 나올 수 있음. 식민지 정책은 경제발전의 방향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광범위하게 발전하는 현대사회의 기준으로 식민지 사회 자료를 분석하면 오류가 생김. 또한 당시 통계는 정책적 관심사안 위주로 작성되어 사회상을 통계만으로 파악하기에는 자료가 부족함. 기록과 통계의 인프라가 완성된 현대에서는 자료부족의 문제가 없음.

  • mikehonda
    17.08.26
    朝鮮総督府統計年表は、当時、世界的に見ても信頼できる包括的な統計資料である。(初期データの一部不合理な部分があることは知っている)
    抽象的な批判することはありますが、具体的に問題点を指摘することができない人は、単に中傷しているだけだ。
    あなたは具体的には、例えば、問題点を指摘しなければならない。
    韓国人が書いた論文もOKですが、当時は文献に引用した一次資料を明記してくれ。
  • 왓따
    17.08.26

    あなたがUPした資料もほとんど1930年代のもの。その前の資料は一貫性が足りていると評価されている。その原因は言った通りインプラの不在と不足によるもので、物理的限界に近いし、総督府のせいではない。政府システムの構築を簡単なことだと認識しているそうだが、莫大な作業だ。数年で終わらせるものではない。

     
    ちなみにこの時構築された日本による現代的管理インプラは韓国戦争前まで連合軍が活用した。ほとんど破壊されるはあとの話だが、生き残った官僚を中心に新しく構築したのが現代の韓国政府である。日本のDNAが混ざっているのは事実。
     

    追加:資料はこんあもんかな https://m.blog.naver.com/vingoho/100065439823 

  • mikehonda
    17.08.26
    >ほとんど破壊されるはあとの話だが、
    韓国人はよく、植民地時代のインフラストラクチャは、韓国戦争でほとんど破壊されたと言うが、何%が破壊されたのだろうか?
    この韓国人の認識は一種の都市伝説だと思う。北朝鮮軍が自分たちの占領地の財産を無暗に破壊道理はない。ソウルも14%の破壊と聞いたている。
    その証拠に、ソウル駅と朝鮮総督府は残っていて、日帝時代の下水管が破損している記事を見たことがある。
    一方、韓国人が言う「日本の戦後復興は韓国戦争のおかげ」も正しくない。
    韓国戦争に関する特殊になっている金額は、三年間で10億ドルと呼ばれる。
    これは、実際に当時の日本のGDPの0.6%に相当する。
    現代の金額に換算すると、日本のGDPが約18兆7800億円だった時代に年間1200億円の需要だった。このように数字で説明すると、この本質をよく知ることができる。
  • mikehonda
    17.08.21
    朝鮮総督府時代に朝鮮人は有史以来初めて民主主義の根幹としての選挙権と被選挙権を獲得した。
    下の写真は、1933年5月に韓半島で開かれた道議会議員選挙の当選者のリストです。81%が朝鮮人が占めている。1933年5月11日の朝日新聞南鮮版に掲載された。
     
    日本の国会審議で
    https://www.youtube.com/watch?v=ra7Dj51AniI&t=92s
     
     
    0d8919888b288d4f9f146d3b12f9eba7.jpg

     

  • 왓따
    17.08.25
    だが朝鮮人に対する差別は健在だった。僕の祖父も一様委員に選出されたことが在ったと聞いたが、主に日本人と親日派だと聞く。個人的にはこの差別こそが当時日本の前近代的意識を示して居ると思う。
  • mikehonda
    17.08.26
    選挙権と被選挙権を持っていた朝鮮人は親日派なのか?
    当時の村(面)の村長は、すべて朝鮮人だった。住民に近い行政や警察も朝鮮人が行っていた。すべてが親日派であったことになる。
     
    あなたに質問ですが、当時の親日派ではなかった朝鮮人は、どのような人々であったか。
    あなたは私の質問に答えることができますか?
    95%以上の奴隷から解放された朝鮮人なのか?
     
    倒産寸前の会社の従業員と支援側の会社の従業員の給料が違って当然だ。さらに、両方の能力の差は非常に大きい。失業乞食のような生活をするよりも、給与があることが良いこと。
  • 왓따
    17.08.26
    住民に近い行政や警察も朝鮮人が行っていた。すべてが親日派であったことになる
    実際それが歴史の痛いところだ。いろいろ高圧的状況だったのもあるが、いわゆる「反民族」行為を自発的に行った朝鮮人が多い。しかも日本人よりも過酷な人も多かったそうだ。

    >倒産寸前の会社の従業員と支援側の会社の従業員の給料が違って当然だ。さらに、両方の能力の差は非常に大きい。失業乞食のような生活をするよりも、給与があることが良いこと。

    その認識が問題。会社の能力は社員個人の能力の総合では無く、運営する管理者の能力が大きく反映される。国も同じく、朝鮮王家の無能で国際情勢に遅れて国が破滅した。そもそも集団と個人を一体に見る観点は市民の概念に反すること。また、差別による社会不安定はいろいろコストが高い。

    ちなみに、差別に依存する植民主義は矛盾することが多く、効率と発展を犠牲にして片理さを求めるため、ほかの国も植民地の維持に失敗した。
  • mikehonda
    17.08.26

    住民に近い行政や警察も朝鮮人が行っていた。すべてが親日派であったことになる

    当時の日本人の人口の割合は、1.5〜2.5%程度である。地方と日本人を見ることも少なかっただろう。
    米国のネイティブアメリカンの人口比率は0.8%とのことから、アメリカ人の一生の中に、ネイティブアメリカン会ったことがない人は、たくさんいるだろう。同様に、日本人に会ったことがない朝鮮人もたくさんいただろう。現在韓国人が認識が欠如している。
    そして当時の治安は低い犯罪率や警察官数の少なさから、現在の日本のそれよりもよい。
    日本人は最初から韓国語を話すことができなかったため、統治は韓国人に任されていた。
    当時朝鮮人はほとんどの人が、いわゆる親日派だったのだ。
     
    ところで、皆さんはあなたに質問ですが、親日派ではなかった人はいたのか?あったとするどんな人か?
     
    >会社の能力は社員個人の能力の総合では無く、運営する管理者の能力が大きく反映される。国も同じく、朝鮮王家の無能で国際情勢に遅れて国が破滅した。そもそも集団と個人を一体に見る観点は市民の概念に反すること。また、差別による社会不安定はいろいろコストが高い。
     
    当時朝鮮人の大部分は、奴隷のような生活をしていたと想像することができる。
    しかし、朝鮮人は法的には日本人と同じ権利を持っていた。これは、世界の植民地の歴史では、特異な例はある。差別ではなく、能力の差があったと想像できる。
    たとえば、現在の韓国人がアフリカ未開国を経済援助したという。韓国人の農業入植者は、アフリカで小作農をするのではなく、農業指導員になります。当然給与の差が生じることになる。これは能力に応じた差であり、差別ではない。
  • mikehonda
    17.08.22
    朝鮮総督府ポリシーのリスト
    項目···合併時(1910)→終戦時(1945)
    教育の普及...土民の状態→小学校5213校、生徒数238万人、就学率61%
    耕地面積... 246万の情報→449万情報
    ノン面積... 84万情報→162万情報(1928)
    収穫(米の生産量)...約1万席→2,000万石(1930)
    日本のコメ輸出... 11万石→760万石(1928)
    鉄道...韓日暫定合同兆管に沿って、日本の鉄道敷設権獲得(1894)を契機に増えた3827km
    人口···1313万人→2512万人(1944)
    煮物...禿山→30年間で5億9千万個
  • 노인
    17.08.23
    일본 내에서는 이보다 더 늘어났다는 거
    그래봤자 여전히 위계 질서가 존재하였고 신분제 차별은 여전했다 
    Korean Peninsula에서 노예제가 완전히 없어진 계기가 한국 전쟁 이후라고 합니다
    그제서야 사람들이 실리를 추구하게 되었다고 
  • mikehonda
    17.08.23
    それが日本国内今同じ。特に戦争は大地主の娘と一般農家倅が結婚するわけではない。ただし、法律的に平等は重要だ。支柱が永楽こともあり、小作農が支柱になることも法的には可能である。
  • mikehonda
    17.08.22
    >日本人中心の小作農産業とか、www
    朝鮮総督府の財政を支援財源は、朝鮮国内の税金などの取入だけでは十分ではなく、いくつかの債券によって維持され、その債権の98%は、日本の金融市場でのもの。また、日本政府からの財政補充金の図である。個人所得税が朝鮮に導入されたのは、1934年であり、この時の税率はないの半分。その後、徐々に格差が縮小したが、まだ内陸より低速。


    30町歩以上の日本人地主と朝鮮人地主の割合(1930年(1930年)現在)

    人員の比率日本人地主= 17.2%朝鮮人地主= 82.8%
    面積比日本人地主= 38.8%朝鮮人地主= 61.2%

    支柱の数は朝鮮人の方が圧倒的に多く面積も朝鮮人地主の面積が多いので、日本人地主の下で働く
    朝鮮小作人より朝鮮人地主の下で働く朝鮮人小作人が多いです。

    小作争議件数

    1933年朝鮮人地主の小作争議= 1,584件(80.2%)
    日本人地主の小作争議= 379件(19.2%)
    1934年朝鮮人地主の小作争議= 6,360件(84.3%)
    日本人地主の小作争議= 1,178件(15.6%)
    1935年朝鮮人地主の小作争議= 22,810件(88.3%)
    日本人地主の小作争議= 2,997件(11.6%)
    1936年朝鮮人地主の小作争議= 28,008件(93.4%)
    日本人地主の小作争議= 1,948件(6.5%)

    全体の耕地面積の日本人所有耕地面積の割合(1928年(1928年)末)

    全羅北道14.7%
    全羅南道9.0%
    黄海道6.0%
    慶南5.6%
    忠南5.0%
    京畿道3.3%← "小作料は、各家庭の規模に応じて40%から60%に達した」
    慶北1.9%← "小作料過大て細民生活いよいよ困難」
    平安北道1.5%
    平安南道1.0%
    咸鏡南道0.7%
  • 왓따
    17.08.25
    当時地主のほどんどが朝鮮人ではあるが、500町歩以上の巨大地主は日本人の数が朝鮮人のそれを圧倒する。

    小作争議件数は全く関係のないデータ。1930年代の地主は経済的状況が悪化することにより小作料を滞納したことが多い。そのデータは逆に当時の朝鮮人地主の没落を示している。他のデータによると同時期日本人地主は増加した。
  • mikehonda
    17.08.26
    下のデータは、500町歩以上の割合も含んでいる。
    圧倒?、具体的に数字を挙げなさい。
     
    データ
    30町歩以上の日本人地主と朝鮮人地主の割合(1930年(1930年)現在)
     
    人員の比率日本人地主= 17.2%朝鮮人地主= 82.8%
    面積比日本人地主= 38.8%朝鮮人地主= 61.2%
  • 왓따
    17.08.26
    昔読んだ本から出た資料だが、今はもっていない。김용섭 「일제강점기의 농업문제와 그 타개방안」
  • mikehonda
    17.08.22
    >社会文化的近代化は全く行われてもなかったwww
    教育制度の整備と識字[編集]
    朝鮮では1895年甲午改革で近代教育制度が開始されたが、1906年の時点でも小学校が全国で40未満[32]であり、両班の子弟寺子屋という私塾で漢籍の教育あった。
    初代統監に就任した伊藤博文は、この状況についての帝国の官僚に「あなたがたは、いったい何をしてきたのか」と叱責学校建設を改革の最優先とした[32]。伊藤が推進した学校建設事業は、合併後の朝鮮総督府によって継続された朝鮮の各種学校は、1940年代には1000個を超えた[32]。
    朝鮮総督府は朝鮮人による自主的な教育については、境界制御を行いながら、[33]教育内容の整備を進め、日本語、韓国語をはじめ、算数、日本社の造船会社(造船会社は「朝鮮身上」という名前で教育されていた[34 ])、受信(修身)などの教育を公立学校を中心に展開した。
  • 왓따
    17.08.25

    僕の基準はあくまで西洋に在って、当時日本は内部的にも前近代的問題を抱えているため、他の国を真面に近代化することはそもそも不可能だとゆう意味だった。この観点では韓国の近代化は朝鮮帝国から始まって1960年代に「完了」したと見るのが正しい。変人だと思っても構わんが、この件に対しては中立にあると認識して欲しい。

  • mikehonda
    17.08.26

    >僕の基準はあくまで西洋に在って、当時日本は内部的にも前近代的問題を抱えているため、

    西洋とは大きな範囲である。どの国の植民地を意味するか?アジアとアフリカのどの国である。それとも、インドか?
    内部的にも前近代的な問題は、具体的に何を意味するか?
  • 왓따
    17.08.26
    日本の近代化は物質方面に傾いていて、国民個人が市民としてのmodernさを獲得できなかった。これが未だに日本社会の問題じゃないのかが僕の考えだが。

    おすすめの本:https://www.amazon.com/Japan-Reinterpretation-Patrick-Smith/dp/0679745114
  • mikehonda
    17.08.26
    本紹介とは何である。もしあなたがこの本を読んでいるなら、国民個人が市民としてのmodernを獲得できなかった。例書いてあるのだ。
    それは何?内部的にも前近代的な問題は、具体的に何を意味するか
    市民としてのmodernとはどんなものがありますか?
  • 왓따
    17.08.27
    臣民から国民と市民までの社会変化の話だが、こんな所でそこまで説明する筋合いは流石にないだろ。これ書いたら論文になるわ。
  • mikehonda
    17.08.27
    >臣民から国民と市民までの社会変化の話だ
    논문은 필요 없다. 읽을 생각도 없다. 구체적으로 예를 들면 그것 뿐이다.
    당신은 WW2 전에 일본의 입헌 제도, 법치, 정당 제도, 자유 민권 운동 등에 대해 아무것도 공부 한 적이있는 そだう.
  • mikehonda
    17.08.23

    >社会文化的近代化はまったく行われていてもでした.www

    朝鮮総督府は朝鮮人にお風呂に体をきれいに維持する排泄物は道端にしていないこと、ゴミは道に捨てたことなど、人間としての基本的なことを教えた。
    伝染病対策をしたこともあって、その結果、人口は、合併当時と比較すると、1945年には2倍に増加している。
     
    당시 교과서
    img_4.jpg

     

  • 노인
    17.08.23

    근데 문제는 해방이후에 겨겨우 문맹률 퇴치했다는 거(미군정 덕택이었다고 한다)

     일제 시대 때도 신분제 관념이 여전히 존재하고 위계질서 또한 심했다고 합니다 
  • mikehonda
    17.08.23
     

    老人は死ななければなら買う 3時間前 0

    ところで問題は、解放後に籾殻やっと文盲率退治したという巨大(米軍政のおかげであったという)

     日帝時代にも身分制観念がまだ存在して位階秩序も芯したそうです 

     
     
    Show me specific concrete measures by US military government you say
  • 노인
    17.08.23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alsn76&logNo=220206267896&proxyReferer=&proxyReferer=http%3A%2F%2Fblog.naver.com%2Falsn76%2F220206267896

    미군정의 토지개혁 - 그나마도 평등 의식을 갖게 해주었다는 평가
  • 노인
    17.08.23
    미군정의 한글 교육 효과
    IMG_1164.JPG

     

    이 때 '한글 위주'의 '가로쓰기' 교육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어
    해방 직후 80%를 육박하던 문맹률은
    50년대 후반 28%로 떨어지게 된다.
     
    그리고 50년대의 교육혁명이
    결실을 보게 되는 시기가, 바로 60년대 이후였다.
     
     
    어떻게 보면 미군정은 일본 보다 더 효과적인 교육을 했었을 것입니다 
  • mikehonda
    17.08.23
    縦または横かどうかは、文盲率とは関係ないことです
    >解放直後の80%を迫った文盲率は50年代後半28%に落ちることになる。
     
    教育は、主に学校で実施する。あなたが言っているのは、光復節15年後に28%となった。
    15年の学校教育に100%が文字を読めるようになった。平均寿命が50歳で、人口の15/50が文字を読むことができようになった解放直後の80%だったと、0.3X100 %+ 0.7X20%= 44%となります。
    그러면 장님 비율은 100-44 = 56 %이지만
    文盲率は50年代後半28%に落ちると言っているが、大人も学校で文字を学んでいたのか?
    또는 첫 번째 80 %가 잘못하고 있는지?
  • mikehonda
    17.08.23

    TO:  老人は死ななければなら買う

    文盲率は50年代後半28%に落ちると言っているが、大人も学校で文字を学んでいたのか?
    または、最初の80%が間違っているのか?
    28%が間違っているのか?
     
    もし答えられない場合は、あなたが読んだ記事や資料が間違っています。その資料の一次統計データは何になっている。もし参考文献もない記事や資料であれば、小説と変わらない。
     
    당신은 소설을 읽고, 나에게 설명하고있는 것이다. 그리고 당신의 역사 인식은 허구 다
  • 노인
    17.08.23
    일제 시기만 해도 학교 안다니는 자는 여전히 많았고 문맹률도 높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실제로 일제시대 살아온 한국 할머니, 할아버지들 중 학교를 제대로 다닌 경우가 여전히 적구요
    허구로 보이기 보다는 일제 시대에 여전히 '전 근대적인 사고'는 그대로 있었다는 증거
    한국에서 노예가 완전히 사라진 계기가 한국 전쟁 이후에요 
    한국전쟁 이후 그제서야 실리를 추구하게 되었습니다 
  • mikehonda
    17.08.23
    私の質問に答えてください。
    文盲率は50年代後半28%に落ちると言っているが、大人も学校で文字を学んでいたのか?
    または、最初の80%が間違っているのか?
    28%が間違っているのか?

    そして>文盲率も高かったです。
    そのデータは、数年から数%であったのですか?
    推定もOK答えてください。
  • 노인
    17.08.23
    http://yskh03241110.tistory.com/m/1658
    이에 해당되는 가장 좋은 근거 자료
    -일제 이전 이후의 문맹률 비교-
  • mikehonda
    17.08.23
    URL 감사합니다.
    그러나이 문헌을 읽을 아니라
    어떤 데이터의 어디에 맹인 율이 써있는 방법을 보여주십시오.
  • 노인
    17.08.23

    IMG_1187.PNG

     

    IMG_1188.PNG

     

    문맹률 자료 

  • mikehonda
    17.08.23
    私は韓国語を読むことができませんが、表の間違いは指摘します。
    これは先ほどの私の質問と関係あるので、また、あなたは答えることができないですね。
    1945 78%
    1948 41%

    3年の間に37%減少しているが、国民の37%が、文字の読み書きが学んだのですか?

    あなたは文盲率の上昇のメカニズムを理解していますか?
    例えば、
    奴隷の人口の割合が95%と高く、文盲率が約100%、平均寿命60歳の国があったとします。
    初等教育は、すべての児童が入学して、すべての児童が読み書きできるようになった30年後の文盲率はどのくらいですか?
    答えは50%です。
  • 노인
    17.08.23
    글을 보니 통계에 대해 공부 많이 하신 분인듯
    50% 이야기 보니 확률론이 생각 남
  • mikehonda
    17.08.23
    3年の間に37%減少しているが、国民の37%が、文字の読み書きが学んだのですか?
     
    あなたが提示した表で韓国人に比べて、台湾の方が視覚障害者の率が低いですね。
    なぜなのか知ることができますか?
    台湾義務教育は1898年に開始されているから
  • 노인
    17.08.23

    민족별 학교 취학률 자료

    IMG_1193.PNG

     

    Orange- 조선인 

    -pink- 일본인 

    Blue- 대만인 

     

     

     
  • mikehonda
    17.08.23
    表を見せてくれのはありがたいが、韓国文学はエラーがあります。(その誤りは意識的なものが多いです)
    このテーブルの基本となる資料を提供してください。
     
    朝鮮総督府統計年報1938年版P.262ページを読みました。
    そこには、公立小学校入学人数があります。
    1938年度入学者数は317,019となっています。
     
    あなたの表は、23%程度となっています。もしこの値が公立小学校就学率とすると、この表には、間違っています。
  • 노인
    17.08.23

     

    오류를 지적해 주셨군요

    학교는 늘어나는데 경쟁률이 있었다고 합니다

     

    1. 늘어나는 학교 수

    IMG_1202.JPG

     

     
     
    Red - 학급수
    Purple - 학교수 
     
    2. 학교 입학 경쟁률 
    IMG_1201.PNG

     

    IMG_1201.PNG경쟁률은 상업, 농업 > 공업 > 고등 보통 순으로, 상공업 중시 풍조를 알 수 있다
  • mikehonda
    17.08.24
    トピックを邪魔しないでください。
    そして、その質問に答えてください。
  • 노인
    17.08.23
    해방 이후에도 노예제도, 그에 입각한 위계질서가 심했었습니다 (일본, 중국만 비교해보아도)
    일제 시대 평등 의식을 심어줄려고 했지만 그게 쉽지 않았던 거죠
  • mikehonda
    17.08.23

    TO: 老人は死ななければなら買う

     
    あなたが言うことは間違っています。
    あなたが読んでいる韓国の資料が間違ってからです。
    1)15年の学校教育に100%が文字を読むことができるようになった。平均寿命が50歳の人口の15/50が文字を読むことができるようになった解放直後の80%であった0.3X100%+ 0.7X20%= 44%となります。
    その後、ブラインド率は100-44 = 56%である
     
    2)>文盲率も高かった。
    今、朝鮮総督府統計年報1938年版P.262ページを読みました。
    そこには、公立小学校入学人数があります。
    1938年度入学者数は317,019となっています。当時の人口を2000万人、平均寿命が50歳になると、この年齢層の人口は2000万人/ 50 = 40万人です。
    317,019 / 400,000 = 0.7925.79%の児童が小学校に入学しており、この児童は読み書きができたことです。
     
    그래서 당신이 말하는 "문맹률도 높았습니다."잘못입니다.
     
    就学人数.jpg

     

  • 노인
    17.08.23
    단순히 학교 입학률 가지고 문맹률이 퇴치 되었다는 건 말도 안됩니다 
    조선인의 학구열에 비해 학교 입학 경쟁이 심했고 이승만 전 대통령처럼 필수적인 의무 교육으로 하여금 누구나 학교 다니게 해준 거도 아닙니다(통계 보면 실감 가실 것입니다)
    여기 자료 대로 실질적으로 해방이후에 훨씬 효과를 본 것이 많으며 세계사에서도 유래가 없었던 거였죠
    http://yskh03241110.tistory.com/m/1658
  • mikehonda
    17.08.23
    당신은 몇 번이나 내 질문에 대답한다.
    1)15年の学校教育に100%が文字を読むことができるようになった。平均寿命が50歳の人口の15/50が文字を読むことができるようになった解放直後の80%であった0.3X100%+ 0.7X20%= 44%となります。
    その後、ブラインド率は100-44 = 56%である
  • mikehonda
    17.08.23
    당신은 문맹률 상승 메커니즘을 이해하고 있습니까?
    예를 들어,
    노예 인구 비율이 95 %로 높고, 문맹률이 약 100 %, 평균 수명 60 세 나라가 있었다고합니다.
    초등 교육은 모든 아동이 입학하고 모든 아동이 읽고 쓸 수있게되었다하면 30 년 후 문맹률은 얼마나됩니까?
    대답은 50 %입니다.
  • 노인
    17.08.23

    IMG_1195.PNG

     

    -일제 시절 학생수의 증가-

    국가 정책으로 강력한 보통학교 보급을 펼친 1930년대보다

    1922년을 전후로 학생수의 증가폭이 더 큰 것은

    학생수의 증가가 일제의 교육 정책이 아닌

    조선인의 교육 수요 때문이란 것을 증명한다

  • mikehonda
    17.08.23
    화제를 돌리지 마십시오.
    지금 장님 비율 이야기를하고 있습니다.

    질문에 대한 답변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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