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길거리나 사회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트라우마의 쉐도우복싱으로 나한테 관심 자체가 적다.
<부모>
부모는 분명히 나한테 관심이 제일 많은데 아프게한다
엄마가 자기몸이 부서지면서 나를 분리시켰다
내몸의 일부란걸 확인하기 위해 소유욕으로 속박하거나
일생동안 당해오던 고통을 자식에게 고대로 쏟아부어
트라우마를 자기 레벨로 끌어내려서 자기몸의 일부라는걸 확인하려는 욕구다.
분명 내 몸이 부서지면서 떨어져나간 조각이라는걸 내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했거든.
<친구>
친구로가면 사태는 더 심각해진다
부모는 몸의 일부이기라도 하지
친구는 자기자신과 완전히 일치시키려한다
친구를 이상화해 자기자신을 이상화하려하기 때문이다
결과는 말할 필요가 없다
나보다 못나면 끌어올려주고 나보다 잘나면 우주의 정기를
받을거다 시기 질투의 차원이 아니라 자아분열을 막기위해 무슨짓이든 할거다
그러나
흑/백
옳고/그름은
언제나 하나.
친구>부모>길거리 순으로 자기랑 동기화 시키려 하기보단 서로의 영역을 존중해준다
어찌되었건 이 모든게 자기존재를 확인하려는 쉐도우 복싱
이고
진실은,
사회 부모 친구와 나는 일치, 동기화의 차원이 아닌
모두 성장과정이 다른 개별적 존재이면서 동시에 상대의 기분을 받을수 밖에 없기 때문에 결국 모두 연결되있는 하나이다
모든종류의 고통은 당연하거나 정상적인게 아니다
트라우마 때문이지.
식욕 성욕 수면욕도 고통이야
결국 생존은 죽음에대한 트라우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