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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OO(54) 씨는 오늘도 하루 종일 거리에 있다. 그동안은 외부와 단절된 채, 그의 자아는 사이버 공간과 가상현실에서 존재했지만 (사람들은 그를 히키코모리라고 불렀다) 성난 시위대에 합류하여 그의 존재감을 세상 속에 드러내고 있다.
그가 본래부터 외부와의 단절을 스스로 택한 것은 아니었다. 수십 년의 시간동안 그가 외부와 단절된 까닭은 그가 처한 상황에서부터 야기된 것이었다.
그에게도 한 때 젊은 시절이 있었고 꿈이 있던 시절도 존재했었다. 하지만 공무원 시험에 수년간 도전했지만 낙방했고, 이어 수십 번에 걸쳐 각종 시도하는 일마다 실패하고, 하는 일마다 풀리지 않아 스스로를 사회와 격리시킬 수밖에 없었다.
인간에게 '일'이란 생계유지를 위해서도 중요하지만, 자신의 존재가치를 사회적으로 증명하는 실존적 행위이다. 사회에서 행해야 할 자신의 역할을 찾지 못하는 그의 상황은 한 개인에게 있어서 존재의 의미를 부정당하는 것과 같이 정말로 비극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2020년을 전후로 악화된 경제상황과 고령화되어가는 한국사회에서, 모든 분야에서 급속도로 적체 현상은 갈수록 심화되어갔고, 그가 설 자리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렇게 그는 사회적으로 소외되어갔으며, 다른 사람들로부터 잊혀진 존재가 되었다.
그런데 오늘 그와 같은 처지에 있던 수십 만명의 대규모 인파와 함께 전국 각지에서 각목과 쇠파이프, 화기를 손에 쥔 채 경찰서로 돌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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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OO(72) 씨는 얼마 전 사고 현상에서 기적적으로 구조되었다. 노인이 된 그는 정부에서 지급하는 연금에 그의 삶을 의지하고 있었다. 그는 젊을 때 노동의 대가의 일부를 납세의 의무와 같이 꼬박 꼬박 납부했고, 당연히 홍보하던 것과 같이 노후와 평생을 국가에서 보장해줄 것이라 믿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믿음은 연금 재정고갈로 인해 산산조각이 났고, 연금 개혁법으로 인해 실질 수령액이 대폭 축소되면서 생활고에 시달리게 되었다. 특히나 본인의 노후 뿐만 아니라 슬하의 자식을 부양해야 했던 처지였던지라 위험성을 알면서도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1980년대에 지어진 D아파트로 이사를 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어느 날, 진도 4.0의 지진이 발생했고, 그가 살던 D아파트가 붕괴하여 1500명의 사상자가 발생하는 비극적인 참사가 발생한 것인데, 이러한 대참사는 사실 어찌보면 필연적으로 예정되어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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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OO(41) 씨는 매일 아침마다 5년 전 친구의 말을 들었어야 했다는 후회를 반복하고는 한다.
그가 어렸을 적 한창 초등학교를 다니고 있던 시절, “헬조선”이라는 단어가 생겼으며, “흙수저, 금수저”와 같은 단어 및 “4차 산업혁명”이라는 용어들이 매스컴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당시 가파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경제양극화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고령화사회로 진입하면서 한국 경제의 성장동력은 상실되어 갔는데, 선진국들과 달리 4차 산업혁명에 대한 대비가 제대로 되지 못한 결과로 그가 30대가 되고 난 후의 한국의 산업과 경제의 현주소는 비참해지기 시작했다.
성장동력은 상실되었는데, 위-아래의 양극화는 갈수록 심해졌고, 결국 하루 종일 일만 해도 1인 가구의 생활비조차도 제대로 벌기 힘든 막다른 길에 몰리게 되었다. 30년 전, 일반 노동자의 월 수입은 대략 2~300만원 정도였다고 하는데, 이와 비교해볼 때 물가 수준을 동결하면 실질 임금은 당시의 1/2 수준으로 전락했다.
도저히 먹고 살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는 하위층이 아닌 대한민국에서 평균에 해당되었다고 한다.
경제적 실존이 위협받는 상황 속에서 결혼과 출산은 사치와도 같았고, 대부분의 청년들은 각자도생의 길을 가야 할 수밖에 없었으며, 이로 인해 인구절벽과 노령화는 더욱 더 가속화되는 악순환의 길을 걸었다.
이러한 삶을 버티지 못하고 그의 친구 몇몇은 스스로 생을 마감하기도 했으며, 또 다른 몇몇은 소위 일컫어지던 “탈조선”을 결심하고 떠났다. 그리고 5년 전, 그의 친구들이 다른 나라로 떠나면서 박OO 씨에게도 함께 하고자 할 것을 권유했으나 막연한 두려움에 이를 실행에 옮기지 못한 것이 화근이었다.
이로 인해 마치 조선시대 오가작통법과 같이 남은 자들은 다른 남은 자들을 철저히 감시해야 했고, 한 집이 야반도주를 하면 다른 집들에 더욱 더 무서운 가렴주구가 행해지던 상황과도 비슷했다하며, 남아 있는 나머지가 해외로 도망치지 못하도록 각종 법리적 장치가 신설되고 동원되었다.
특히나 군역의 평등이라는 명목으로 6촌 이내의 친족 중에 미필자가 한 명이라도 있으면 해외로의 자유로운 입출입이 금지되었는데, 대중들은 이러한 병역법 강화에 열광했으나 실은 스스로를 얽매게 하는 족쇄와도 같았다. 이는 면제를 받기 위해서는 초고액의 병원 검사를 반드시 필요로 했기 때문인데, 소위 말하는 ‘금수저’들은 병역의 의무를 실질적으로 지지 않아도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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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OO(45) 씨는 오늘 하루도 그가 살아 있다는 것에 감사해한다.
그를 죽음의 목전에 몰아넣고 있는 것은 몇일 째 계속되고 있는 전시상태를 방불케하는 폭동사태인데, 아이러니하게도 오히려 이는 그가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자 탈출구이기도 하다.
어차피 살아있어도 미래가 없고 아무런 희망이 없다.
그가 매일 죽음의 공포에 맞설 용기를 낼 수 있게 된 것은, 그보다 앞서 먼저 세상을 떠난 자들 때문이다. 극심한 빈부격차로 인해 경제수준에 따라 주거지역의 차이가 극명해졌고, 인간의 탐욕으로 인해 이미 진작에 용도 폐기가 되었어야 할 노후건축물이 붕괴되어 1500명이 사망하는 국가적인 대규모 참사가 발생한 것이다.
단지 자연재해나 ‘운’이 없어서 발생한 사고가 아닌, 인간의 인재(人災)였고 그 원인은 경제적인 측면에서의 양극화에 있다는 것이 너무나도 자명했다. 수십 년에 걸쳐 위태위태하게 지속되던 계층 간 갈등과 긴장상태는 이로부터 폭발했다.
오늘이 아니더라도 머지않은 시점에 본인들도 죽게 될 수 있다는 죽음의 공포 앞에 다수의 국민들이 ‘기득권 계층’을 타파하기 위해 무장봉기를 일으켰고, 국가는 내전상태가 지속 중이다. 어차피 살아도 사는 것 같지가 않은 삶을 더 이상 지속시키기보다는 무장봉기로 최후의 반전을 시도하고자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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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ㅁㅁㅁ는 유혈진압을 선택했다.
그는 성난 시위대에 최후통첩을 한다.
[해산하십시오.
오늘 밤 12시 이후 일체의 시위와 집회를 금지합니다.
대통령의 권한으로 비상계엄을 선포하며, 명령에 따르지 않을 경우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할 수 있다는 점을 고지합니다.]
그러나 이는 역부족이었다. 시위는 갈수록 거세졌고, 결국 최후의 수단으로 군병력을 동원하게 되었다. 하지만 시위대 역시 마찬가지였다. 무장봉기 이외에는 어차피 방법이 없었다. 살아도 사는 것 같지가 않았고,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였다.
이어 군 병력의 일부가 시위대를 따라 반란을 택했고 내전 상태에 본격 돌입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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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좀 상상력을 가미한 각색으로 그렇게 될 것이라 장담 가능한 예측은 아닙니다만,
"소설가는 경험하지 못한 것은 쓰지 않으며, 경험한 대로는 쓰지 않는다"는 말이 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