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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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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튼 그 순간에 내가 느낀 느낌을 말로 표현하자면 소름끼침, 분노, 두려움..이런 게 복합적으로 섞인 어떤 감정이었어.

그리고 당시 내 머리가 지끈거리는게 막 기말고사가 시작되었다는 거야.

공부에 흥미를 잃은 나로서는 기말고사 준비가 상당히 스트레스를 받는 거였는데

더구나 나는 일정한 점수(3.5)를 맞아야만 장학금이 나오는 어떤 조건을 갖고 있었어..사실 공부만 좀 하면 3.5야 나오지. 그때는 애들이 공부에 목매는 시절도 아니었으니..

그러나 나는 공부에 흥미를 잃고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기말고사를 봐야하느라 스트레스받고 있는데 이런 일을 당하니 기분이 오죽하겠어?

암튼 얘를 데리고 나와서 내가 얘기를 했어. 일단 종이파일에 적어놓은 시에 대한 얘기는 쏙 뺐어. 생각해보니 우연의 일치일수도 있잖아. 내가 아는 시는 워낙에 유명한 영시니까.

솔직히 말이 나오는데 막 떨리더라. 진짜 왜 이런 일을 당해야 하는지 개짜증이 나고..얼굴이 못생겼기에 더욱 짜증이 났다.

지금 생각해보니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서 마녀에게 당해서 할머니가 되는 소녀 캐릭터 있지? 딱 그쯤 되었던 듯. 그냥 흔녀인데 뭐 별다른 매력이 없는 기억할 만한 점이 없는 그런 여자였음.

암튼 그때까지는 내가 이 여자에게 당연히 존댓말을 했는데

그때부터는 반말로 하게 되더라..사실 나는 당시에 이미 꽤 나이가 있어서(20대 중반-후반으로 가는 사이) 얘가 정상적인 나이에 들어왔으면 걔보다는 꽤 연상이었음.

'아니 씨발 너 미친 거 아니야? 내가 커피 갖다놓지 말라고 했지? 왜 내 말 안 듣는거야? 응? 내가 호구로 보여? 씨발 나 커피 안 먹는다니까!'

대략 이런 식으로 말했던 거 같다.

아니 그런데 씨발 이년이 아무 말도 안하네..그냥 눈만 깔고 묵묵하게 듣고만 있는거야. 사실 저러면 여자라면 울음을 확 터뜨리거나 도망가거나 주저앉거나 무슨 반응을 보여야 하는데 그냥 가만히 있는데

도대체 내 말을 듣고 있는건지 마는건지 알 수도 없고 시험준비가 워낙에 바빠서

'야 그만 됐고. 만약에 너 계속해서 이러면 진짜 가만 안둔다' 이러고 일단 상황을 정리했음.

그러고 나서..그날 시험공부를 하면서도 걔를 멀리서 살폈어요. 안 그러겠어? 그런데 그냥 조용히 있더라고. 화장실 갖다올때마다 혹시 내 자리에 커피가 놓여져있는지 살폈으나 다행이 그런 일은 없었음.

애들 사이에서는 소문이 나서 '와..형 여자 생겼다면서요! 축하해요.' 뭐 이러고 난리가 났음.

암튼 그날 시험공부를 끝마치고..밤 한 열시까지인가 열한시까지인가..아무튼 기말고사 시즌이니까 도서관은 뭐 발디딜 틈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붐볐지 뭐. 그래서 늦은 시간에 걸어가도 사람들이 꽤 많더라고. 

 

당시에 내가 살고 있는 집이 정문에서 걸어서 한 15분 정도 걸렸어. 이상하게 대학교들은 거의 다 산에 있어서 이 학교도 산에 있었으니 거의 내리막길이었음. 그러다가 코너를 딱 돌면 나타나는 집인데

사실 이 집은 같은 학번 형이 있는데 그 형이 빌린 집이었음. 시골집임. 엄청 싸게 빌린 집인데 웃기게도 방이 4칸이야. 집은 뭐 쓰러지기 전의 폐가 수준..보다는 약간 더 좋은 정도..일단 바닥에 보일러가 잘 안들어오는 그런 집이었다.

그냥 놔두면 이런 집은 반드시 허물어져 버리니까 형에게 싸게 빌려준 거지..더 망가지지 말으라고.

당시 내가 경제적 사정이 안 좋아서 나는 이 집 한 칸에 무슨 보증금이며 월세도 없이 그냥 들어왔어..그냥 더부살이한거지..근데 그때는 뭐 다 그려려니 했어.

분명히 당시 내려오는 길에 사람들이 꽤 있었는데 어느 순간 기분이 쌔..한 거야. 그래서 돌아보니 아니 그년이!

이 때부터는 그 년이 되는거야..그 년이 한 20미터 정도 뒤에서 따로오고 있는 거야..사람들이 꽤 많이 걸어내려오고 있는데 그 틈새로 내가 돌아보니까 싹 숨는데 그게 숨는다고 숨겨지나?

와..씨발 근데 내일이 시험이에요. 얘랑 한바탕하면 시험을 볼 수 있겠어? 없겠어? 그래서 존나게 달렸지? 여자라서 그런지 역시 쫒아오지는 못하더라. 집에 들어와서 문 걸어잠그고..

아 씨발 내 인생 왜 그러냐..한탄하면서 공부를 했어..이게 학점도 큰 과목이라 공부안하면 그냥 좃되는 거였거든.

 그러고나서 다음날 시험을 보러갔는데..

아 글쎄 이 씨발년이 이제 우리과 강의실 근처에서 얼쩡거리는 거에요. 여기가 도서관이랑 꽤 멀거든. 그러니까 우리과와 우리 과 비스무레한 과 단독건물이라 다른 과 애들..예를 들어서 영문과 애들은 아예 들어올 일도 없는 건물인데

얘가 복도에서 어슬렁거리더니 내가 오니까 싹 피하더라.

와..진짜 열받는데..시험이 정말 너무 중요하더라. 밤새워서 cramming한 지식이 날아가버리면 안되잖아? 그래서 참고 강의실로 들어왔는데 애들 사이에서는 벌써 소문이 쫙 퍼져서 나만 보면 모두 웃고 난리가 아님.

솔직히 존나게 억울하더라고. 사실 내가 같은 과 여학생을 좋아한 적도 있고 그런 거 애들도 아는데 왠 이상한 애가 알짱거리니까 애들은 신이 났고

나는 뭐 애들에게 무슨 변명을 하려해도 워낙에 시험이 급하고 그러잖아? 그래서 시험을 치고 당장 쫒아나가 요절을 낼 생각으로 나갔는데 아니 얘가 없더라고.

그렇다면 또 도서관에 있겠지 뭐..하고 도서관으로 갔음. 뭐 다른 애들도 다음 날 또 시험이 있으니 다 도서관으로 갔지 뭐.

 

아..근데 없더라?

그 종이파일도 없어지고 자리가 텅 빔..

이게 왠 일인가? 싶어서 두리번거리는데 안 보이더라고.

사실 내가 신입생 때 영문과 애들하고 소개팅을 한 적이 한 번 있었어.

근데 그쪽이 사실 영문과 애들이 좀 있었거든..당시 내가 소개팅한 애는 이미 대학원생이 되어서 나타나지 않았고

걔를 통해서 안면을 좀 익힌 애와 우연히 만나서

내가 슬쩍 운을 띄움. 영문과에서 종이파일로 사방을 막고 공부하는 여자애 혹시 몇 학번이냐? 이렇게 물어봤거든.

근데 얘가 잘 모르겠다고 하더라고..

영문과라고 해야 한 학번에 40명씩이니까 사실 다 알 수 있는 거는 아닌데 아무튼 본인은 모르겠다는거야.

하긴 160명 되는 애들 다 아는 애들이 어디 있겠냐? 무슨 학생회장도 그건 어렵지. 존재감없이 그냥 다니는 애들도 분명 있거든?

암튼 어쨌거나 얘가 정리만 되면 되는 거니까 뭐 나는 다시 시험공부를 했어.

아..그런데 밤이 되니까 얘가 다시 나타난거야. 나도 우연히 고개를 들어서 출구쪽을 봤다가 걔를 딱 봐버림. 나도 당황해서 바로 고개를 숙였다. 정말 다시는 부딪치고 싶지는 않았어. 그래도 엄청 신경이 쓰이긴 했지. 하지만 시험도 벅찬데 정말 저런 것에게..신경쓰고 싶지는 않았고..

그날 밤 아마 그때도 열 두시쯤 슬슬 집으로 걸어내려가고 있었지..

(3편에서 계속..낚아서 미안하다. 사실 일 때문에 그럼. 오늘은 완결하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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